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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업과 스리섬, 사라지는 로맨스에 대해.

남자, 솔직히 말해서 섹스 말고는 필요 없잖아요?

On August 20, 2013

누군가의 언니, 누군가의 동생인 여성 작가들이 소소한 화두를 크지 않은 목소리로 풀어놓는다. 이 주에는 [로맨스가 필요해]의 정현정 작가가 ‘알파걸의 사랑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 <나의 PS파트너>에서 윤정은 현승과 오랜 시간 동안 전화로만 만나다 결국 사랑에 빠진다.

지난달 12일 <뉴욕 타임스>에 흥미로운 칼럼이 하나 실렸다. 미국 여대생들의 새로운 섹스 라이프에 관한 이야기다.
요즘 아이비리그에는 ‘나 지금 기숙산데 잠깐 와서 하고 갈래?’라는 문자를 보내 가볍게 성욕을 해결하는 여대생들이 늘고 있다는 내용. 이런 행위를 ‘훅업’(hook-up)이라고 한다는데, 과연 미국만 해당될까? 한국에도 새로운 성 풍속도가 생겼다.

각종 포르노 사이트에 ‘스리섬’(Threesome)에 끼워 달라며 줄 서 있던 ‘초대남’들 사이에 ‘초대녀’가 등장한 것. ‘스리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여자와 부담 없이 훅업을 즐기는 여자들의 공통점은 뭘까? 로맨스로의 발전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남자는 섹스, 여자는 로맨스’라는 오랜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이런 현상들은 왜 생기는 것일까?
남성에게 부양의 의무를 짐 지우지 않고, 스스로의 능력 개발을 최우선으로 치는 엘리트 집단 ‘알파걸’의 탄생도 한몫했을 것이다. 미국에선 이미 대학과 대학원생의 60%가 여성이고, 15개의 주요 직종 중 12개에서 여성의 고용 비율이 남성을 상회하고 있다. 또한 2012년 한국의 혼외 출생자는 1만 명을 넘어섰다. 왜? 결혼 자체를 기피하고 유럽식 동거 출산이나 자발적으로 싱글맘을 선택하는 여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작년에 나온 저서 『남성의 종말』을 쓴 언론인 해나 로진에 따르면 여성이 훅업 문화를 통해 얻는 것은 ‘시간’이다. 그녀들은 훅업을 통해 커리어를 쌓을 시간을 뺏기지 않으면서 손쉽게 섹스를 즐긴다는 얘기. 드라마를 쓰면서 취재하게 된 A가 그랬다. 그녀는 원 나이트를 적극적으로 즐겼는데, 한 모텔을 정해 놓고 꾸준히 만나는 섹스 파트너도 있었다. 그녀도 한때 연인도 있었고, 사랑이라고 믿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몇 번의 연애 실패를 통해 깨달았다고 했다. 연애는 ‘돈 낭비’, ‘시간 낭비’, ‘감정 낭비’일 뿐이라는 걸!
연애의 최종 목적지는 잘해 봐야 ‘결혼’인데, 그 결혼이라는 게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이라는 것을 주변의 지인들을 통해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온통 낭비와 소모전이 전부인 연애 감정에 투자하느니, 섹스만 즐기고 남은 에너지와 시간을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겠다는 것이 그녀의 철학이었다.

또 다른 알파걸인 내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 1의 주인공 선우인영(조여정役)은 연인과 헤어지고 친구들에게 하소연한다. “내가 그 남자와 사귈 시간에 자기 계발을 했어 봐! 그럼 벌써 우리나라 최연소 총지배인이 되고도 남았을 거야!” 또 다른 등장인물인 박서연(최여진役)도 일이 바빠지자 남자 친구의 전화를 받지 않으며 친구들에게 말한다. “이렇게 바쁜데 적당히 만나줘야 되고, 적당히 전화해 줘야 되고, 밥은 먹었는지 걱정해야 되는 연애가 너무 피곤하다”고. 그녀는 ‘그냥 만나고 싶을 때 만나고, 헤어지고 싶을 때 헤어지는’ 연애를 소망한다. 그런 연애가 바로 훅업 아닌가? 물론 고지식한 잔소리꾼인 나는 그녀들을 드라마로 쓰면서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연애마저도 생산성이 있어야 되는 거니? 사랑이 그렇게 계산적이어도 되는 거니?’

비슷한 질문을 현실에서 A에게도 했다. 모텔 대실 시간인 3시간 동안 만나는 그 남자와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냐고.
그녀는 나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꼭 사랑이어야 해요?” 나는 겉으로는 ‘그렇긴 하네요’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너 잘났다!’라고 비아냥거렸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섹스가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잖아?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내내 어떤 질문 하나가 내 마음을 쿡쿡 찔렀다. 인간이 언제부터 섹스와 사랑을 동일시하게 되었던가, 하는 질문.

동굴 시대의 인간들은 우리보다 훨씬 간단한 내면을 가졌고, 그때의 섹스는 지금보다 훨씬 간단했다. 남자는 섹스를 통해 ‘자식’을 얻었고, 여자는 섹스를 통해 ‘식량’을 얻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그 시대의 섹스는 사랑의 행위가 아니라 일종의 ‘거래’였다. 우리가 꿈꾸는 낭만적 사랑은 근대의 발명품일 뿐이고, 근대 이전의 섹스도 동굴 시대의 섹스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A를 이해 못할 이유도 없었지만, 내 속의 잔소리꾼 언니는 또 나를 쿡쿡 찌른다. ‘그래도 섹스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행위잖아!’ 나는 알파걸 A의 성생활과 아이비리그 여대생들의 훅업을 변호하려는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생명을 탄생시킬 목적이 없는 섹스는 나쁜 섹스인가?’

인간은 이미 생명 탄생과 상관없는 섹스를 더 많이 하고 있고, 피임약은 버젓이 합법적으로 팔린다. 어쩌면 훅업이나 원 나이트같이 섹스를 오로지 본능으로 소비하는 여성들의 등장도 ‘피임의 발달’ 때문일지 모른다. 여성에게 섹스는 양날의 검과 같다. 한쪽은 쾌락, 한쪽은 임신의 가능성. 그런데 피임 도구의 발달로 임신과 섹스의 분리가 간편해지면서 섹스가 주는 쾌락이 훨씬 커졌고, 더 이상 정조를 강요하지 않으며 여성의 성욕을 인정하는 시대의 흐름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이성적으로 그들의 섹스 라이프를 비난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A는 내게 말했다. “남자, 솔직히 말해서 섹스 말고는 필요 없잖아요?” 남자가 없으면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시대도 아니니 나로서야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녀들은 섹스 말고 다른 것은 어디서 얻을까?

EDITOR : 박세회
PHOTO : CJ 엔터테인먼트

발행 : 2013년 12호

누군가의 언니, 누군가의 동생인 여성 작가들이 소소한 화두를 크지 않은 목소리로 풀어놓는다. 이 주에는 [로맨스가 필요해]의 정현정 작가가 ‘알파걸의 사랑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Credit Info

2013년 08월 02호

2013년 08월 02호(총권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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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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