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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그의 정신세계.

기차에 올라탄 괴물

On August 13, 2013

언제나 독특한 상상력과 재기 넘치는 취향으로 가득 찼던 그의 머릿속은 [설국열차]를 통해 더욱 팽창했을 것이다. [설국열차]를 보며 가장 궁금했을, 그 두뇌를 가진 남자를 만났다.

봉준호 감독은 수시로 아이패드를 열었다. 영화에 대해 물을 때마다, 이미지를 찾아 보여주는 그의 모습이 장난감을 쟁여둔 아이 같았다. <설국열차>를 만드는 동안 그는 요리에 집착하며 지냈고, 하나의 요리를 만들 때마다 사진을 찍어두었다고 했다.
언제나 독특한 상상력과 재기 넘치는 취향으로 가득 찼던 그의 머릿속은 <설국열차>를 통해 더욱 팽창했을 것이다.
<설국열차>를 보며 가장 궁금했을, 그 두뇌를 가진 남자를 만났다.

시사회 이후에 나온 리뷰를 보고 계신가요?
영화가 좋다는 평가만 보고 있습니다(웃음). 좀 삐딱하다 싶으면 휙휙 넘겨버렸어요.

인상적인 평가가 있었다면요?
다 재밌었던 것 같아요. 하나는 트위터에서 본 건데, “시사회에서 <설국열차>를 보고 집에 가는 길인데, 지하철에서 나도 모르게 자꾸 앞쪽 칸으로 가고 있다”라고 썼더라고요(웃음).

<설국열차>의 기차는 2014년부터 출발합니다. 만약 1년 후, 감독님이 이 기차를 타신다면 어느 칸에서 무엇을 하며 17년의 세월을 보낼까요?
저도 그런 상상을 많이 해봤어요. 우리는 실제 그 세트에서 일도 했으니까. 세트를 돌아보면서 생각했던 게, 만화책이랑 DVD만 가지고 타면 한 6개월은 버티지 않을까 싶었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만 있다면 말이에요. 수영도 하고, 수족관도 보고, 온실 칸에서 낮잠도 자다가, 사케 마시면서 회도 먹고(웃음).

만약 꼬리 칸에 탔다면요?
이틀도 못 버티지 않을까요? 악취만 없다면 버틸 수 있을 텐데(웃음). 일단은 이런 기차를 타고 있다면, 가보지 못한 칸이 있어야 버틸 것 같아요. 만약 모든 칸을 다 가본다면, 그래서 더 이상 가볼 칸이 없다면 정말 우울할 것 같아요. 영화 속에서 꼬리 칸 사람들이 버티는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일 거예요. 앞으로 가고야 말겠다는 열망이 없었다면, 17년씩이나 갇혀 지내지 못했겠죠.

<설국열차>의 인물들은 대부분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에요. 어쩌면 감독님이 갖고 있는 욕망의 발현은 아닐까 싶었어요.
학교 다닐 때는 학교에 다니기가 싫었고, 군대에서는 나가고 싶었죠. 지금은 영화계를 떠나고 싶은 건가(웃음)?
사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겠죠. 그러면서도 동시에 얌전하게 순응해서 달짝지근하게 적응하고 싶을 테고.

감독님은 적응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 저도 두 가지가 다 있어요. 옛날에 박종원 감독님(<영원한 제국>,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연출)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영화감독은 새로운 과제와 임무에 맞닥뜨리며 사는 게 제일 힘들다고. 재밌는 한편, 버거울 때가 있다고요.
제가 벗어나고 싶었던 건, 글쎄요. 그런 건 있네요. 제가 만든 영화들에서 비슷한 레퍼런스를 찾아보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옆집 강아지 죽이는 영화(<플란다스의 개>)를 누가 찍겠어요. 첫 단추부터 이상했던 거죠. 범인이 아예 잡히지 않는 스릴러 영화도 있고(<살인의 추억>), 백주의 한강에서 나오는 괴물도 있고(<괴물>). 다 이상한 영화들이에요. 그렇게 남들과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구는 있었어요.

지금처럼 전작들을 연결지어 놓고 볼 때, <설국열차>와 가장 크게 연결되는 부분은 ‘헛소동’인 거 같아요. 예전 인터뷰에서도 ‘헛소동’에 끌린다고 하신 적이 있었죠.
그러네요. <설국열차>는 어쩌면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이나, 혁명이나, 탈출이나, 과연 진짜는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일 거예요. 허무한 좌절에 부딪힐 수밖에 없으니까.

<설국열차>를 만들면서 좌절하거나 절망한 적이 있었나요?
하루하루가 절망이었죠. 이걸 어떻게 찍지? 매일 고민했어요. 어쨌든 연출은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설국열차>는 계속 칸을 바꿔서 전진만 하는 영화예요. 배우들이 워낙 많으니까 다양하게 보이는 거지, 사실 공간 자체가 실질적인 공포였죠. 그래서 횃불 전투나 터널의 암흑, 이런 걸 가지고 극복하려고 했어요. 김지운 감독님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만들 때 정말 죽는 줄 알았대요. 영화 초반에 있던 기차 내부 장면은 어떻게 찍을지 고통스러웠다고. 그런데 전 2시간 내내 하는 거잖아요. 오기를 더 불태웠죠.

공간의 느낌이 가장 잘 살았던 장면은 성화 봉송 신이었어요. 이 장면의 감흥을 <마더>에서도 느꼈던 것 같아요. 혜자가 어렵게 획득한 증거인 골프채를 들고 비를 맞으며 위풍당당하게 걸어가는 장면요. 그때의 당당함, 자신감, 힘의 느낌이 비슷했어요.
촉감은 다르지만, 생각해 보니 많이 비슷하네요. 저는 기차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계획이었어요. 기차가 코너를 돌 때는 활처럼 휘니까, 어떤 칸과 또 어떤 칸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마주 볼 수 있을 거다. 이런 모습을 웨스턴 영화처럼 찍어보면 어떨까. 그 성화 봉송 장면의 경우는 만약 맨 뒤 칸에 중요한 무언가를 놓고 오면 어떻게 될까를 상상하다가 나온 장면이에요.
다시 가서 가져오는 건 힘드니까, 사람들끼리 릴레이를 하지는 않을까? 그러다가 횃불이 여러 사람에 의해 옮겨지면서 불이 많아지는 걸 상상했는데, 이거다 싶었죠. 찍을 때도 많이 흥분됐던 장면이에요.

2012년의 어느 인터뷰에서는 <설국열차>를 찍는 동안 “영화를 그만두면 뭘 할 수 있을까?”를 자주 생각했다고 했어요. 왜 그랬던 거예요?
이제 나이가 마흔다섯이라 그런 건지(웃음). 임권택 감독님이 들으시면 ‘뭔 소리를 하는 거냐’고 욕을 하시겠죠. 체코에 있을 때 가끔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내가 영화가 아니라, 다른 걸 해도 잘할 수 있는 게 몇 개는 있을 텐데.
영화에 삐쳤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나만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는 나를 안 좋아해, 이런 거요(웃음). 꼭 영화학도들이 많이 하는 유아적인 투정이죠.

마음의 위안이 될 만한 게 있었을까요?
숙소에서 요리를 많이 했어요(웃음). 한인 마트에서 장도 보고, 정육점에서 고기랑 소시지도 사서 이것저것 해먹었어요.
나중에는 정말 요리에 집착하게 되더라고요. 촬영장에 있을 때도 ‘오늘은 장을 어떻게 봐서 들어갈까?’ 이런 궁리만 했어요.
생전 처음 겪어보는 정신적인 공황이었던 것 같아요. 객지 생활을 10개월 넘게 해서 그런 건지 몰라도.

봉준호 감독의 요리책을 내도 재밌겠네요.
사진은 다 찍어놓았어요(웃음). 맛은 별로지만 비주얼은 다 좋아요. 최악의 조건에서 최소한의 재료로 만드는 요리니까, 돈이 없는 유학생들을 위한 서바이벌 쿠킹 북 정도가 되겠네요(웃음). 심지어 요리를 계속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동치미 같은 것도 만들게 됐어요. 완전 실패했죠. 사진으로 보면 그럴 듯하지만.

만약 영화를 그만둔다면 뭘 하고 싶으세요?
만화가?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으니까요. 보는 것도, 그리는 것도.

소설가인 김영하 작가님이 감독님과 같은 잠실고 동문이라고 하시던데요. 그때 잠실고 뒤에 개천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자기는 <괴물>의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었대요. 그 이야기를 듣고는 봉준호 감독님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궁금했어요.
성내천이라고 한강에 합류하는 지점인데, 물도 더럽고 거품도 둥둥 떠 있었죠(웃음). 어렸을 때, 뭐… 변태 학생이었어요.
크게 드러나는 건 없었는데, 음… 바퀴벌레를 키워본 적은 있었어요.

바퀴벌레요?
잠실의 어느 한 아파트에 살았죠. 한 10년 정도. 그런데 그곳이 바퀴벌레가 많이 나오기로 악명이 높은 아파트였어요.
제가 쥐는 잡아도 바퀴벌레는 못 잡아요. 사람들은 대부분 바퀴벌레를 휴지나 책으로 쳐서 잡는데, 저는 그게 너무 싫었죠.
벌레 몸이 터지니까. 그래서 제가 바퀴벌레를 잡는 방법은 유리병으로 덮는 거였어요. 유리병 끝으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변기에 탈탈 털어서 버리는 거죠. 그런데 가끔은 털어버리는 것도 싫었어요.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그 유리병 속의 바퀴벌레를 보고 있는 거죠. 어떻게 이토록 끔찍한 피조물이 생겼을까, 와! 이러면서(웃음).

20대 때는 대학에서 ‘KP’란 조직을 만들어 놀았다면서요?
아니, 어디서 그런 흉악한 과거를 들으셨어요? KP가 무엇의 약자인 줄 아셨나요?

몰라서 물어보려고 했어요.
‘깽판’의 약자예요(웃음). 아, 지금 생각하면 정말 창피한 과거예요. 주로 하는 게 술 마시고 남의 차에 올라가서 노래하는 거였어요. 진짜 깽판을 친 거죠. 이런 짓도 했네요. 하기는 뭐, 젊어서 힘은 넘치는데 할 짓이 없어서 그랬겠죠. 대학 원서 접수 기간에 뉴스를 보면 막판에 뛰어가는 부모와 아이들이 있잖아요. 경비 아저씨는 시간 됐다고 셔터를 내리고요. 그때 우리는 대학생이었는데, 재수생인 척하면서 경비 아저씨한테 사정을 하고 그랬어요. “아저씨, 저 이번에 대학 못 가면 군대 가야 해요!” 이러면서(웃음).
그때 정말 방송국 카메라가 우리를 찍고 그랬어요. 휴…, 정말 창피합니다(웃음).

이제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물어보겠습니다. 영화감독으로서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요?
평생 15편을 찍는 게 목표입니다. 이제 마흔다섯 살이니까, 남은 시간 동안 부지런히 찍어야죠. 그게 저한테는 성공일 수도 있겠네요. <설국열차>가 5번째 영화예요. 이제 저의 초기작 시대를 마무리한 거죠.

스릴러, 괴수물, SF까지 하셨어요. 더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요?
모든 장르를 다 해보고 싶어요. 단, 뮤지컬은 제외하고요. 저는 못 견디겠더라고요. 얼굴이 화끈거려요. 멀쩡히 대사를 하다가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을 못 참겠어요. <레미제라블>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대사가 다 노래니까 차라리 괜찮았어요.

오늘 처음 봤을 때부터 묻고 싶었어요. 팔뚝에 문신이 있었네요(독수리 한 마리가 있었다)?
<마더>를 찍을 때 했던 거예요. 촬영을 했던 홍경표 촬영 감독님이 문신한 숍에서 했어요. 여기 나무도 있어요(티셔츠를 잡아 내려 가슴팍을 보여줬다). <마더>에 나무가 나오는 장면이 있어요. 혜자가 도진을 면회하고 나와서 보게 되는 나무죠. 정말 예뻐요.
나무가 있는 위치도 묘했고. 그래서 기념으로 했어요. 올겨울에 하나 더 새기려고요. 기차 바퀴를 그려야 하나…(웃음).


“언제나 제정신으로는 못 만들 영화를 만들었던 봉준호다. <설국열차>의 촬영 기간 동안에도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온난화를 막으려다 빙하기를 맞이한 2031년의 지구. <설국열차>는 얼어붙은 땅을 쉬지 않고 달리는 기차와 그 속에서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과 대부분이 외국인인 배우들 틈에서 영화감독 봉준호가 겪었을 방황과 공황은 어땠을까. <설국열차>의 평가가 갈리는 걸 보면, 관객들도 같은 공황을 겪는 중인 듯싶다.”

EDITOR : 강병진
PHOTO : 김영훈

발행 : 2013년 12호

언제나 독특한 상상력과 재기 넘치는 취향으로 가득 찼던 그의 머릿속은 [설국열차]를 통해 더욱 팽창했을 것이다. [설국열차]를 보며 가장 궁금했을, 그 두뇌를 가진 남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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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8월 02호

2013년 08월 02호(총권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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