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투브 네이버 포스트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오늘의 라이프스타일

웰컴 투 하루키 월드

On August 08, 2013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출간 1주일 만에 일본에서 판매 100만 부를 돌파했고, 민음사에선 초판본만 30만 부를 찍었다. 소설가, 드라마 작가, 북 저널리스트가 하루키 신작에 십점 만점을 주는 이유.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출간 1주일 만에 일본에서 판매 100만 부를 돌파했고, 민음사에선 초판본만 30만 부를 찍었다.

일요일 오후의 파스타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뛰어난 가성비에 10점

그렇다. 하루키의 글이 시들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건 돈이 없어서 두 달 남짓 파스타만 먹게 되면서부터였다. 아니, 돈이 없는데 파스타라니? 믿기 힘들겠지만, 가장 싸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법은 파스타를 먹는 것이다. 라면이 한 봉지에 700원 정도 할 무렵, 국내 식품사의 스파게티 면은 5인분에 2천원이었다. 궁상맞다고? 맞다. 일요일 오후에 홀로 집에서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 일은 실로 매우 궁상스럽다. 돈이 없어서 먹든, 돈이 많아서 해물을 잔뜩 넣어 먹든, 하루키 소설 속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그 본질적인 궁상맞음은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일은 소통이고 관계가 되지만 혼자 먹기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은 생존이다.

이것이 하루키 월드와 리얼 월드의 차이. 그래서 모피어스는 말했다. “웰컴 투 더 리얼 월드.” 그렇다고 하루키가 형편없는 작가란 건 아니다. 커트 보네커트의 말처럼 ‘삶을 살 만한 무언가로 착각하게 하는 것’이 예술의 가장 큰 기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그는 훌륭하다. 외로움, 상실감, 단절, 소외감을 그 깔끔한 문장으로 멋지고, 세련된 것처럼 채색해 준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무채색의 삶이 사실은 나쁘지 않다고, 실은 서럽고 비루한 우리의 삶을 지유가오카의 깔끔한 고급 원룸 맨션에서 홀로 사는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동일본 대지진 직전, 일본에서 한 달 반쯤 지냈었다. 관광지 한 번 들르지 않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관찰한 일본은 꽤 재밌는 곳이었다. ‘개인 취향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암묵적인 룰을 강요하는 사회였다. 그것은 관계를 유지시키고 사회를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하지만, 끊임없이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고 있었다. 개인이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관계를 무시하고 고립되거나, 관계를 유지하며 나만의 내면 세계를 구축하는 것 두 가지였다.

왜 하루키가 그토록 관계에 집착하는지, 왜 소심하고 고독한 주인공들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거나 혹은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 속에서 탈출하려 애쓰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관계에서 유달리 압박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도 미국에도 유럽에도 있으리라. 그들에게 하루키는 정말이지 최고의 작가일 것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사실 모두가 꼭 읽어야 할 대단한 내용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열광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둘 중 하나거나 둘 다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느새 그런 그의 글을 필요로 하는 사회가 되었거나, 아니면 그저 붐에 지나지 않거나. 하지만 단순한 붐이라 해도 큰 상관이 있겠는가. 우리는 고독하면서 세련된 인간으로 보이기 위해 브랜드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다. 이 소설은 <그라치아>에 실린 패션 아이템들 중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좋은 편이리라.

물론 그분들은 독자라기보다는 소비자라 부르는 게 적확하겠지만. 소비자들은 독자보다 현명하다. 책을 읽는 것 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음을 알기에. 그래서 아카는 말한다. “웰컴 투 더 리얼 라이프.” WORDS 임성순(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의 사인본.

하루키라는 쿨한 판타지
좋은 취향으로 소비되기에 적격이라 10점

이런 단편적인 비교가 조금 위험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문학의 주인공들이 자신 내면의 골방에 있는 짐승 또는 세계와 시대에 맞서 싸울 때, 하루키의 인물들은 가까이 있는 타자와 부대끼며 ‘현실’과 싸운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널 만나고 싶지 않아’라며 아오가 절교 선언을 할 때 우리는 쓰쿠루의 감정에 강하게 이입한다.
‘왜?’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보는 단절의 이야기니까. 상실감·소외감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고, 결국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스토리는 놀랄 만치 감정이입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등장인물의 감정에 충분히 이입하는 데는 살아 있는 듯한 인물의 묘사도 한몫한다. 내가 줄쳐 놓은 문장들도 대부분 인물에 대한 묘사들이다.

시로를 묘사한 부분을 보자. ‘일본 인형을 연상시키는 단정한 얼굴에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몸매’, ‘피아노를 아름답게 잘 쳤지만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절대로 솜씨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표현으로 작중 인물은 피가 도는 인간이 되어 소설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바로 그 ‘현실’과 ‘인물’에서 색을 지우는 것, 인물의 비현실성이 하루키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그의 인물들에는 발 냄새가 없다. 가난도 없다. 촌스럽지도 않고, 속물적이지도 않으며, 웬만큼 배웠고 적당히 합리적이다. 굉장히 현실적인 도시인인 것 같지만 사실은 현실성이 배제된 환영이다. 이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불편해하는 어떤 부분들을 제거시킨 것으로, 단순한 감정이입과는 다른 지점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동경’이라는 세계. 쿨하고 멋지다는 판타지로.

재미있는 것은 하루키 역시 그의 인물들과 닮았다는 점이다. 재즈 카페를 하다가 소설을 쓰게 된 남자가 하루키다.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도 멋지다. 야구장 외야에서 타구가 날아가는 걸 보며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마라톤을 좋아하는 남자, 여행과 요리와 음악을 좋아하는 남자. 그에게는 ‘작가 정신’으로 찌들어 가는 소설가의 이미지가 없다. 그의 인물에 발 냄새가 없는 것처럼. 그렇게 하루키는 하루키 자체로 ‘색채’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하루키를 기꺼이 취향으로서 소비한다. 어떤 사람들에겐 취향이 일종의 사회적 포지션이 되기도 하는 시대다. 우리는 하루키를 선택함으로써 ‘하루키의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개성을 만들어낸다. WORDS 정현정(드라마 작가)

  • 지난 7월 1일, 하루키 사인본을 받으려고 줄 선 사람들.

시대를 위로하려는 눈물겨운 노력
노작가의 힐링 파워에 10점

하루키는 문학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하루키는 한국에서 지금 같은 ‘청춘의 자의식’ 모습이 처음으로 발생된 시기에, 그 자신이 ‘현상’이 된 인물이다. 핥거나, 까거나, 따르거나, 따르는 이를 까거나, 깐 이를 까거나, 새롭게 또는 다르게 까는 모든 행위는 어느덧 비평에서 벗어나 평자의 간증에 그치고, 결국 ‘현상’의 옹위에 쓰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하루키가 리트머스 시험지임을 애써 무시한 채, 지금까지 읽은 하루키의 다른 작품과 그걸 둘러싼 맥락을 모르는 척하며 이번 책 『색채가 없는…』만을 놓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잠깐, 지금 나는 아는 것을 ‘모르는 셈 치고’ 이야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썼다. 공교롭게도 이 말은 이 소설의 이야기 자체를 함축해 놓은 진술이다. 이 소설은 남은 인생에서 더는 특별한 것이 남아 있지 않음을 직관적으로 ‘알아버린’ 어른이, 어떤 계기로 확보한 안전한 위치에서 그 사실을 마음껏 ‘모르는 척’하고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 그러나 독자가 그 허무한 전제를 잊고 빠져들 수 있도록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제작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스무 살의 어느 날, 네 명의 단짝 친구로부터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단절’ 당한 쓰쿠루가 16년이 지나 다시 찾은 네 명의 모습은, 인생에 특별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음을 눈치 챈 어른의 네 가지 선택지를 보여준다. 스스로 생명력을 떨구거나, 책임으로 쌓아올린 세계에 충실하거나, 아예 가면을 쓰고 살아가거나, 또 다른 자아에 눈을 떠 저 멀리 북유럽으로 날아간다. 죽음을 방종하거나 보통의 우리가 그렇듯 죽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낸 것이다 . 그리고 소설은 특별한 걸 준비해 두지 않은 남은 인생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쪽으로 끝을 맺는다. 이 결론이 황급했다면 뭔가 찝찝했겠지만 그럴듯하고 매끄럽다.
마지막 장, 신주쿠 역을 이용하는 350만 필부들에 대한 변호가 등장하는 순간에는 작가가 시대를 위로하는 데 들인 눈물겨운 노력을 체감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현실에서 기시감을 일으켰다. 일본에서 이 책이 출간 1주일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한 것. 우리나라에도 흥분된 보도 자료가 날아오고, 하루키를 다룬 기사가 실리고, 유명 필자들의 서평이 이어지고 있다. 출판계가 이렇게 신이 난 모습을 본 게 언제던가? 문득 이건 내리막길이 빤히 보이는 출판계를 위한 이벤트, 아무것도 아닐 미래를 견디기 위한 선물, 모두가 힘을 합쳐 ‘모르는 척’ 만드는 위로의 환영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기쁘게’ 생각했다. WORDS 안은별(<프레시안 북스> 기자)

EDITOR : 박세회
PHOTO : 김영훈, 민음사

발행 : 2013년 11호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출간 1주일 만에 일본에서 판매 100만 부를 돌파했고, 민음사에선 초판본만 30만 부를 찍었다. 소설가, 드라마 작가, 북 저널리스트가 하루키 신작에 십점 만점을 주는 이유.

Credit Info

2013년 08월 01호

2013년 08월 01호(총권 11호)

이달의 목차
EDITOR
박세회
PHOTO
김영훈,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