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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방글라데시

On June 21, 2013

옷을 만들던 공장이 무너졌고, 사람이 죽었다. 우리의 책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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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

우리는 과연 몇 개 나라의 옷을 입고 있을까. 유행의 흐름을 빠르게 간파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는 SPA 브랜드 옷의 원산지는 매우 다양하다. 한때는 중국과 홍콩이었지만, 이제는 방글라데시와 베트남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머지않아 우리는 또 다른 원산지의 옷을 입게 될 거다.

입고 있는 옷의 태그(Tag)를 확인해 보자. 원산지가 어디인가?
제3세계 국가에서 만든 옷을 입고 있다면, 방관할 수 없는 사건이 그 옷과 함께한 것이다.

“건물 벽에 금이 가 있었어요. 그런데도 관리자들은 별 일이 아니라고, 돌아가서 일이나 하라고 했어요.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게 너무 싫었어요. 하지만 월급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었죠.” 한 시간 후, 전기가 나갔다. 멀리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그 소리가 가까워졌다. 바닥이 꺼졌고, 기둥이 쓰러졌고, 천장이 주저앉았다. 먼지가 공중에 날렸다. 올해 19살의 재봉사인 레시마 베굼의 몸은 ‘떨어지고 또 떨어져’ 잔해 속에 묻혔다. 레시마가 의식을 찾았을 때는 사방이 어둠이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무너진 콘크리트 벽에 눌린 상태였다. 손을 더듬어 가위를 찾은 그녀는 머리카락을 잘랐고, 사람들의 신음 소리 틈에서 물과 과자를 찾아냈다. 그렇게 17일을 버텼다. 지난 4월 24일,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 외곽에 위치한 라나플라자 빌딩이 무너졌고, 그 참사에서 살아남은 2400명 중의 하나가 그녀였다. 하지만 약 12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죽었고, 모두 옷을 만들던 사람이었다.

방글라데시 군인이 라나플라자의 잔해에서 생존자를 찾고있다.재봉사인 레시마 베굼이 사고 17일 만에 구조됐다.

라나플라자 붕괴 사고 이후, 사람들은 입고 있던 옷의 태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 옷의 원산지는 어디지? 혹시 내가 방글라데시의 눈물을 입고 있는 건 아닐까?
프리마크, 베네통, 망고 등이 라나플라자에서 제품을 받아온 브랜드였다. 하지만 의류 산업이 전체 수출액의 80%를 차지하는 방글라데시가 납품하고 있는 브랜드는 그보다 훨씬 많다. 당신이 평소 저렴한 가격의 옷을 선호했다면, 갖고 있는 아이템 중 하나 이상은 ‘Made in Bangladesh’란 태그를 붙이고 있을 게 분명하다. 아니, 방글라데시가 아니어도 베트남과 캄보디아 혹은 남미와 아프리카 지역에 하청 공장을 두고 있는 브랜드의 옷일 거다.

이들은 대부분 글로벌 소싱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 SPA 브랜드다. 유행을 반영해 빠르게 만들고, 저렴하게 판매하는 게 이들의 전략이다. 과거에는 중국이 하청을 도맡았지만,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SPA 브랜드들은 방글라데시로 눈을 돌렸다.
<뉴욕 타임스>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대러 오러크 교수의 말을 빌리며, 이번 비극의 근본 원인은 ‘더 빠르게, 더 싸게’라는 패스트 패션의 캐치프레이즈에 있다고 지적했다.

“벽에 균열이 생기는 상황에서도 공장주들은 납품 기일을 맞추는 궁리만 했을 것이다.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유럽과 미국의 바이어들이 어떤 조치를 취하겠나. 게다가 서구의 거대 기업들은 단가를 지나치게 낮추고 있다. 현지 업체들로서는 비용을 더 낮출 수밖에 없다.” 라나플라자의 경우, 원래는 5층짜리 쇼핑몰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3층이 더 불법 증축됐고, 의류 공장이 들어오면서 4대의 대형 발전기도 함께 자리를 잡았다.
발전기는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발전기의 진동에 건물은 흔들렸다. 공장주들은 노동자들을 계속 밀어 넣었다. 터무니없는 임금에도 돈이 필요한 노동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공장으로 들어갔다. 라나플라자의 노동자들이 받는 월급은 38달러(약 4만3천원) 정도였다.

  • 지난 4월 27일, 라나플라자 빌딩 잔해 주변에는 가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려고 모인 사람들로 붐볐다.

라나플라자의 붕괴는 소비자들의 관성적인 옷 소비에 제동을 걸었다. 이제는 패션계에도 ‘공정 무역’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강조될 정도다. 공정 무역은 커피나 초콜릿 등 주로 식품 제조업에서 생산자에게 합리적인 임금이 돌아가도록 하자는 취지로 적용돼 온 개념이다. 미국의 의류 회사인 에버레인은 최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공장의 위치와 공장장을 소개하고, 의류 가격의 산출 과정을 공개했다. 나이키, 갭 등이 포함된 ‘지속 가능한 의류 연합’(SAC : Sustainable Apparel Coalition)은 올해 가을 생산 공장의 근로 환경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를 개발할 계획이다.

영국에서는 티셔츠에 세금을 붙여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의 생활을 도우려는 취지의 캠페인이 시작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SPA 브랜드들은 하청 공장의 노동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조치에 나서는 중이다.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많은 의류를 생산하는 H&M은 지난 5월 13일, “H&M을 포함한 자라의 모회사인 인디텍스, 프리마크 등은 더 이상 같은 참사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협약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공장 환경에 대한 실태 조사를 실시하며,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개선을 거부하는 공장과는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또한 19일에는 글로벌 의류 기업 30곳이 방글라데시의 공장 안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30억 달러(약 3조3천억원)의 기금을 마련했다는 소식이 보도되기도 했다.

  • 4월 27일.런던 옥스퍼드 프리마크 매장 앞에서 라나플라자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라는 캠페인이 열렸다.

H&M의 최고 경영자인 칼요한 페르손은 “방글라데시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방글라데시의 최저 임금을 개정해야 한다”며 “우리는 임금을 더 지급할 용의가 있다. 근로자들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기업이 방글라데시만 피하면 된다는 식으로 사태를 회피하고 있다. 아예 방글라데시의 의류 공장들이 생산한 물건을 취급하려 하지 않거나,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등 대체 생산지를 찾고 있다.

그들의 뜻대로 하청 공장들이 방글라데시를 떠난다면, 더 이상 라마플라자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방글라데시는 400만 명의 의류 산업 노동자가 2000만 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나라다. 현재 치료 중인 레시마는 퇴원한 후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레시마는 집세를 낼 돈이 없어서 휴대폰까지 팔았고, 때문에 그녀의 엄마는 딸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노동 환경을 개선하려는 의지 없이, 단지 방글라데시의 공장을 비우려 한다면 레시마와 그의 가족은 먹고살 수가 없다. 제2의 재난이 될 거다.

EDITOR : 강병진
STYLE EDITOR : 서민진
PHOTO : 김영훈, Gatty Images
MODEL : 김미선
HAIR : 백흥권
MAKE UP : 오가영

발행 : 2013년 8호

옷을 만들던 공장이 무너졌고, 사람이 죽었다. 우리의 책임은?

Credit Info

2013년 06월 02호

2013년 06월 02호(총권 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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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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