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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꿈꾸는 결혼식

On June 20, 2013

대한민국 최초로 열릴 동성애자의 결혼식은 어떤 모습일까.

  • 청첩장을 받았다. 영화 제작자 김조광수(왼쪽)와 그의 연인 김승환(오른쪽)이 올리는 결혼식이다.

김조광수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광수 형’이라고 부른다.
광수 형, 김 대표, 김 감독, 또 어떤 때는 광수 언니.광수 형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자, 커밍아웃한 게이다.
광수 형이 결혼을 결심했다. 상대는 19살 연하의 김승환이다. 광수 형은 그를 ‘화니’라고 부른다. 두 사람은 9년 전에 만났다. 3년 전, 어느 영화제 시상식에서 광수 형이 던진 프러포즈를 화니가 덥석 물었다. 그러고는 지난 5월 15일, 결혼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광수 형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성애자가 누리는 결혼 권리를 성 소수자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을 보태려고 마이크를 잡은 화니의 타이밍이 부창부수였다. “결혼은 한 개인이 나이, 성별, 인종, 국적을 떠나 주변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저희는 동성 간의 결혼 합법화를 위해 헌법 소원뿐만 아니라 모든 투쟁을 이어갈 것입니다.” 광수 형이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그래도 결혼을 발표하는 자리인데, 키스라도 할까요(웃음)?” 두 사람은 가볍게 키스를 했다. 그것도 세 번이나.

광수 형과 화니는 9년 전, 동성애자들의 모임인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처음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화니의 모습에서 빛이 났다고 광수 형은 기억한다. “첫눈에 ‘뻑간’ 거죠. 하지만 6개월은 망설였어요. 나이 차가 워낙 많이 났으니까.” 아니,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화니의 주변 사람들을 통해 공작을 폈다. “사람들이 화니한테 내 이야기를 좋게 해줬으면 했죠. 쟤는 나이 많은 사람 좋아한다는 소문을 내고(웃음).” 화니는 그런 광수 형이 귀여웠다. 앳되고 말간 얼굴과 달리 화니는 대찬 구석이 있는 사내다. 그가 ‘친구사이’의 문을 열고 처음 들어갔을 때, 많은 이들이 신기해했다. “다들 그곳에 처음 올 때는 조심스럽게 문을 연대요.
문 앞에서 서성이다 돌아가는 분들도 많고요. 그런데 저는 커밍아웃한 건 아니었지만, 움츠리지도 않았어요. 그냥 툭 열고 들어갔죠.” 그러니 빛이 났을 거다. 화니는 당시 40대 초반이었을 광수 형을 30대 초반 정도로 봤다. 밝은 기운이 가득했던 얼굴로 기억한다. 광수 형은 사람들을 모아 MT를 가자고 했고, 일부러 화니를 자기 조에 넣은 뒤 밤에 같이 산책을 가자고 꼬드겼다.
그러고는 연인을 벽에 밀쳐 키스하는 남자들의 로망을 광수 형도 그날 실천했다. 화니는 웃었다. ‘이거 봐라? 어디까지 가나 한 번 볼까?’란 심정으로. 먹고, 살고, 사랑하고. 그들도 지난 9년을 전지현의 냉장고 CF 카피처럼 살았다.

그런데 굳이 험난할 게 뻔한 결혼을 왜 하려고 할까. 광수 형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15살 때 깨달았다. 그리고 이후 15년을 걱정과 두려움에 빠져 살았다. 30대가 돼서야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였고, 그때 그는 “게이라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결심하며 인생의 목표를 ‘결혼’으로 삼았다. 광수 형이 꿈꾸는 이상적인 결혼식을 위해서는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들은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화니는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고 그래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는 한편, 당신의 아들이 홀로 외롭게 늙어갈 거라는 걱정을 덜어드려야 했다”고 말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머리로는 이해해도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워요. 그래서 함께 있는 모습을 계속 보여드려야 하는 거죠.” 광수 형은 화니의 부모님이 자신의 집에 와서 편히 쉬는 모습을 볼 때 감동을 받는다. 이제는 부모님이 “화니의 누나 집보다 여기가 더 쾌적하고 좋다”고 말할 정도다.
화니는 2년 전, 광수 형의 어머니와 함께 간 뉴욕을 잊지 못한다. “비행기 안에서 대화를 많이 했어요. 제가 어머니에게 젊었던 시절에 가졌던 꿈이 뭐였는지 물어봤어요. 유치원 교사를 하고 싶으셨대요. 당신의 자식들에게도 하지 않으셨던 얘기였죠. 저에게도 너 하고 싶은 거 하며 살라고 하셨는데, 마음이 너무 따뜻해졌어요.”

결혼식은 오는 9월 7일에 올릴 예정이다. 날짜에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없었다. “추워지기 전에 하고 싶었어요. 10월이 좋은데 그때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있고.”(광수 형) “추석 전주보다는 전전주가 좋아요. 개강 첫 주라서 시험도 없으니까, 학생들도 쉽게 올 수 있고요.”(화니) 결혼 날짜를 영화 개봉 날짜 정하듯 잡은 거다. 그만큼 이 결혼식의 흥행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혼식에서 받은 축의금을 주춧돌 삼아 LGBT 센터(레즈비언, 게이, 바이, 트랜스젠더의 인권 신장을 위한 성적 소수자 문화 인권 센터)를 건립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축의금 목표액은 10억원. 이게 가능한 금액일까? 광수 형은 이렇게 말한다.
“10만 명이 1만원씩 내면 되니까요. 아니면 5만 명이 2만원씩 내도 되고, 1만 명이 10만원씩 내도 좋죠(웃음).”
두 사람은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볼거리가 많은 결혼식을 준비하는 중이다. 결혼식을 알리는 예고편도 만들고, 포스터도 붙일 예정이다. “주변 사람들이 동성애를 반대하니까 거기에 쓸려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우리 결혼식을 보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광수 형이 만든 영화 중 최고의 흥행작은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이었다. 약 500만 명이 본 덕분에 그는 빚을 갚았다. 이번 결혼식은 그가 장장 19년 동안 준비한 영화다. 1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본다면, 용기를 얻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런 결혼식이니 톰 포드가 결혼 예복을 협찬해 주는 것도 좋겠다

  • 신혼여행지 쿠바.
    혁명 과정에서 성소수자를 억압했지만, 나중에 공개 사과를 하고 동성애를 인정했던 유일한 나라. 직접 사과를 했던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는 게 이들의 꿈.

    혼인신고
    혼인 신고서를 동사무소에 제출할 예정. 받아주지 않으면,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 청구서를 넣을 계획

EDITOR : 강병진
PHOTO : 김영훈, Gatty Images, KBS

발행 : 2013년 8호

대한민국 최초로 열릴 동성애자의 결혼식은 어떤 모습일까.

Credit Info

2013년 06월 02호

2013년 06월 02호(총권 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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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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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Gatty Images,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