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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유죄

On June 11, 2013

@twitter.com/ovniii<BR>지극히 당연한 명제를 의심하라! 여자를 둘러싼 세상을 빠르고 예민하게 감지하는 <그라치아>.요즘 대두되고 있는 ‘비만세’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본다.

  • 비만 유죄

고열량 식품인 패스트푸드, 탄산음료 등에 이른바 ‘비만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이 지난 6일 국회에 제출됐다.
잠깐, 지금 햄버거 먹는다고 세금을 더 내라는 건가? 내 돈 주고 내가 좋아하는 걸 먹겠다는데?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무소속 문대성 의원이 발의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의 요점은 비만이나 영양 불균형을 일으키는 고열량, 저영양 식품을 만들거나 수입 또는 유통, 판매하는 자에게 부담금을 징수하자는 이야기다. 우선 제조사들에게 압박이 가해지겠지만, 과자와 아이스크림의 오픈 프라이스 정책이 그랬듯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물론 법안을 발의하는 측에서도 논거는 있다.
단적으로 비만의 원인이 되는 고열량 패스트푸드 소비를 줄일 수 있으며 비만 치료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술, 담배로 인한 질병에 드는 돈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공청회 등을 열어 비만세도 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쪽인데 반해 기획재정부는 ‘우리 여건을 감안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사실 비만세라는 용어가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헝가리는 소금이나 설탕, 지방 함량이 높은 가공식품에 가장 적극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프랑스와 뉴욕에서도 탄산음료에 특별 소비세를 매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항상 무게와의 전쟁을 벌이는 항공사들 역시 과체중 고객에게 비만세를 징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진작부터 신경을 곤두세워 왔다. 에어버스는 지난달 열린 ‘2013 국제항공기술박람회’에서 아예 복도 좌석 전체를 비만 승객 전용으로 구성하는 A320제작 계획을 발표했다.
일반 좌석보다 넓게 제작해 요금 또한 비싸게 받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운항을 시작한 남태평양 사모아 국적의 사모아에어는 승객 본인 몸무게와 가지고 타는 짐 무게를 합해 1kg 단위로 요금을 산정한다. 우선 인터넷 예매 시 추정 무게로 결제를 한 후, 공항에서 다시 정확한 무게를 재 요금을 확정하는 방식이다. 사모아에어의 대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좌석당 요금을 부과하는 것보다 훨씬 공정한 방법”이라며 “아이를 데리고 타는 가족은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러다가 공항 체크인 카운터에서 목욕탕에서조차 애써 외면하던 체중계에 올라가게 생겼다.

이쯤 되면 억울한 생각이 꾸물꾸물 올라오는 이들이 많을 거다. 아니, 누구는 날씬하고 싶지 않아서 이러고 사나? 뚱뚱한 게 죄냔 말이다. 하지만 일생의 절반 이상을 다이어트하며 보낸 친구 하나는 뚱뚱한 건 죄가 맞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비만세 논란을 떠나서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라고.
국회의원조차 여성이라는 이유로 신문 기사 제목마다 ‘얼짱녀’라는 수식이 달리는 외모 지상주의 나라에서 뚱뚱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로 스스로를 방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비틀어도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진다. 흔한 믿음처럼 비만은 정녕 본인만의 책임일까? 그들이 뚱뚱해진 건 정말 DNA로 인한 운명의 장난이거나 게으르기 때문일까? 비만세를 거둔다 해서 과연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해지는 세상이 될까?

결과적으론 맞벌이 가정이어서 어쩔 수 없이 빅맥으로 간식을 때워야 하는 꼬마가 그 세금만큼 더 지불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건 내가 타고난 회의주의자라서기보다 그간에 겪어본 경험치 때문이다. 정부나 기업이 내세우는 비만세에 대한 도입 근거는 아무리 봐도 금지옥엽 손주 건강을 걱정하는 할머니 마음처럼 마냥 애틋하게 읽히진 않는다.

뉴스를 듣고 지난해 오픈한 청담동 SSG 푸드 마켓에 드나들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드라이에이징 한우 코너도 놀라웠지만 갈 때마다 내게 유혹적이었던 건 단연 채소와 과일들이었다. 어느 지역의 누가 언제 재배한 것인지 상세한 설명까지 곁들인 친환경 토마토와 감자들. 하지만 나는 결국 얼마 못 가 집에서 5분 거리의 SSG에 들르는 대신, 인터넷 이마트몰에서 생수와 고기를 주문하던 일상으로 복귀했다. 신선함이나 안전성에 대한 대가로 조금 더 지불할 용의는 있었지만, 채소를 신선한 상태로 먹으려면 바로 요리해 먹어야 하는데 늘 시간에 쫓기는 나로선 도저히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비싸게 주고 사서 결국엔 유통기한을 넘겨버리느니, 여차하면 냉동실에 얼릴 수 있는 고기가 나았으니까. 그냥 하던 대로 비타민이나 열심히 챙겨 먹기로 했다. 운동도 마찬가지지만 따지고 보면 건강한 식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돈이나 시간,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여유로워야 가능하다.

빈부차는 어느시대에나 존재했다. 하지만 먹거리의 종류가 늘어난 만큼 인공첨가제도 늘어난 요즘은 경제력이 미식을 넘어 건강과 직결되는 시대다. 그래서 문득 두려워지기도 한다. 이러다 유기농 채소를 영양소 파괴 없이 스팀 쿠커에 쪄 먹고 과일은 휴롬에 짜서 먹는 날씬이들의 식탁이 판타지 소설의 한 장면처럼 점점 낯선 것이 되진 않을까 싶어서. 아무리 한 쪽에선 먹거리 엑스파일을 취재하고 또 다른 쪽에선 비만세를 논의한다 한들, 나로선 오늘 밤만 해도 야근의 오랜 친구인 치킨을 포기할 순 없을 테니까.
그리고 치킨을 튀기는 데 사용된 기름의 트랜스지방 함량도 역시나 알 수 없을테고. 한쪽과 다른 한쪽 사이에는 점점 건너기 힘든 강이 흐른다.

EDITOR : 박소영

발행 : 2013년 7호

@twitter.com/ovniii<BR>지극히 당연한 명제를 의심하라! 여자를 둘러싼 세상을 빠르고 예민하게 감지하는 <그라치아>.요즘 대두되고 있는 ‘비만세’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본다.

Credit Info

2013년 06월 01호

2013년 06월 01호(총권 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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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