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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임경선의 생각

불행한 엄마보다 부족한 엄마가 낫다

‘캣우먼’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칼럼니스트 임경선 씨. 솔직하고 똑 부러지는 ‘돌직구’ 화법 때문일까? 그녀의 메일함에는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육아와 직장생활은 양립이 가능한지’ 등의 절실한 조언을 구하는 엄마들의 메일이 가득하다. 하지만 육아에 관한 한 그녀는 어떤 속시원한 대답도 해줄 수 없다. 그저 ‘누구나 똑같은 엄마가 될 필요는 없다’는 말밖에는.


MBC 라디오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의 연애상담사로 이름을 알리고, 수많은 신문과 방송에서 그 진가를 증명한 칼럼니스트 임경선(41세) 씨가 일곱 살 난 아이의 엄마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어떤 이는 “그녀가 결혼했어?”라고 되묻기도 한다. 그녀가 2012년 가을, 딸을 낳아 키우며 생긴 에피소드와 자신의 육아관을 담은 <엄마와 연애할 때>라는 책을 냈을 때 사람들의 첫 반응은 의외라는 것.

“신문이나 방송에 비춰지는 이미지 때문인지 출산도 육아도 무척 치밀하고 꼼꼼하게 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실제로 ‘캣우먼의 스마트 육아’를 콘셉트로 책을 내보자는 제안도 여러 번 받았고요. 하지만 저는 ‘아이보다는 내가 편한 게 최고’라는 굳은 신념으로 헐렁하고 느슨하게, 제멋대로 아이 키우는 불량엄마예요.”
 

두 번의 인공수정 끝에 어렵게 딸 윤서를 낳은 것이 서른일곱. ‘엄마’란 타이틀을 달게 되면서부터 그녀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지닌 ‘모성의 환상’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깨달았다. 

6개월을 모유수유하고 분유를 먹였는데, 사람들은 ‘모유수유=모성’이라고 말했고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쿨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기분도 가라앉았다. 잠깐 화장실에 가려고 TV를 보여줄 때도 그랬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갈 때도 너무 희희낙락해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부러 바쁜 척도 했다. 집에서 놀면서 아이를 맡긴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다. 

엄마는 편하고 즐거우면 ‘죄의식’을 느낀다.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아이에게 충분히 쏟아 붓지 않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도 밤을 꼴딱 새워 이유식을 만들고, 쉬어야 하는 주말에도 아직 걸음도 제대로 못 뗀 아이를 데리고 박물관·미술관 체험학습을 다닌다. 아이를 위한 어느 정도의 몸 고생, 마음고생은 ‘좋은 엄마’의 필수 요건으로 여겨진지 오래다.
 

그녀 역시 엄마의 이기심과 죄의식이 맞부딪치며 갈등을 겪기도 했다. 선배 엄마로서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둘 다에서 약간 떨어져 ‘아이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 그러면 내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판단이 명료해지고 제3자의 불필요한 간섭이나 눈치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연애나 결혼생활도 그렇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 역시 ‘다들 그렇게 살아’, ‘너를 위해 무조건 양보하고 희생할게’ 같은 생각이 크면 클수록 고통스럽고 불행해진다. 엄마가 불행한 것보다는 덜 완벽한 게 낫다. 불완전한 엄마라도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아이를 사랑하고 걱정하고 챙기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아이에겐 ‘내 엄마’가 가장 완전한 엄마다.
그녀 주변에도 아이 키우는 일을 힘들어하고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는 엄마들이 많다. 그녀가 사는 동네는 강남과 강북의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속칭 ‘세미 강남 워너비’라 교육열도 꽤 높다. 하지만 그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올 3월부터 아이가 아파트 앞 초등학교의 병설유치원에 다니게 된 것을 ‘운이 좋았다’고 여길 뿐이다.

‘몰라야’ 행복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이유
“제가 아이 키우는 데 워낙 태평하니 오히려 주변에서 ‘이 험한 세상에 아이 키우면서 그렇게 아무렇지 않아도 되냐’는 질문을 해요. 그래서 ‘나는 왜 이렇게 육아에 불안감이 없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결론은 ‘잘 몰라서’더라고요.”
임경선 씨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5살 때부터 17살까지 일본, 미국, 포르투갈, 브라질 등 남미와 유럽 등지를 옮겨 다니며 살았기 때문에 유치원부터 시작된다는 한국식 입시 제도를 경험하지 못했다. 

윤서를 낳은 뒤에도 연로하신 양가 부모님은 그녀의 육아에 신경쓰거나 ‘이래야 한다’는 조언을 해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또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던 아이 백일까지는 젖 물리고 목욕시키면서 일까지 하느라 인터넷 육아 카페에 들어가 볼 여유가 없었다. 아이가 좀 커서는 동네 엄마들끼리 어울려 키즈카페에 가는 대신 아이와 단둘이 공원을 산책했다. 

그런 까닭에 지금 그 시기에 아이에게 해줘야 할 것도 몰랐고 남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예 모르면 불안감도 없는 법. 만약 그 세계를 알았더라면 지금 아이와 내가 더 행복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나와 남을 비교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육아란 어떤 면에서 한 귀 막고, 한 쪽 눈 가려야만 지치지 않고 더 오래, 멀리 걸을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그녀는 아이에게 ‘~해야 한다’는 규범이나 기준을 강요하는 게 싫다. 가급적 아이가 원하는 일을 하게 해주고 싶다. 평소에도 ‘NO!’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가령 날이 어두워졌는데 아이가 공원에서 더 놀고 싶다고 하면 상황이 허락하는 경우 ‘알았다’고 말한다. ‘어두워졌으니 집에 가서 씻고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엄마 중심적인 논리다. 어두워졌지만 아이가 너무 재미있게 놀고 있다면 충분히 더 놀아도 된다. 일찍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내일 아이가 유치원에 못 가는 것도 아니고, 아이 인생이 잘못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아이 인생에 ‘~해야 한다’가 많을수록 엄마도 아이도 힘들다. 아이에게 말하는 그 수많은 규범과 기준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아이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데 쏟는 게 엄마도 아이도 행복해지는 길이라 생각한다. 




아이가 엄마를 더 사랑한다
윤서는 내성적인 편이다. 호불호가 강하고 까다롭고 예민한 부분이 있다. 아이를 처음 기관에 보낼 때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엄마로서 당연했다. 그녀의 예상대로 윤서는 쉽게 친구를 사귀지 못했고 적지 않게 마음고생도 했다. 하지만 그걸 품고 있지 않고 종알종알 엄마에게 자신의 속상한 마음을 표현했다. 

대개 이럴 경우 엄마들은 크게 걱정하면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코칭하거나 아이를 적극적인 성향으로 바꿔보려고 노력하게 마련.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유전자를 쏙 빼닮은 ‘내향성’인지라 연습이나 노력으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님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꼭 고쳐야 할 필요도 없다. 엄마에게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털어놔주는 게 다행이고 고맙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녀 눈에 윤서는 시크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며, 세심하고, 자존감이 충만한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성격을 지닌 아이다.
 

잘 나가는 연애 칼럼니스트였던 그녀는 엄마가 된 뒤에 확실히 변했다. 사람들에 대해 날카롭게 세웠던 날이 동글동글 무디어졌고 관대해졌다. 육아는 누군가의 희생 없이 절대 불가능하고 그래서 ‘세상이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 

아침에 유치원으로 뛰어가는 아이의 머릿결이 바람에 나부낄 때의 느낌은 그녀가 경험했던 그 어떤 연애보다 짜릿하고 강렬했다. 이럴 때면 ‘내 속으로 어쩜 이렇게 예쁜 딸을 낳았을까?’ 뿌듯하지만 ‘아이를 대체 왜 낳아서 이 고생인가’ 싶은 날도 있다.

곤히 자는가 싶었던 아이가 갑자기 몸 위에 다리를 쿵 올려놓은 통에 짜증이 솟구쳐 다리를 벽 쪽으로 밀친 적도 있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제발 쫌!’ 역정을 냈고 순간 아이가 너무 미웠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이 우울해서 미칠 뻔했단다. 

과로나 감기로 몸이 힘들 때는 왜 일, 육아, 가사, 이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는지 억울하기 짝이 없다.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펑펑 운 적도 있다. 그런 시간을 거쳐 그녀는 엄마가 힘들 때는 무리해서 더 강해지기보다 아이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일하는 엄마들은 일과 육아, 어느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혼자 모든 일을 끌어안고 산다. 하지만 엄마는 모성애와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똘똘 뭉친 존재가 아니다. 원하는 것을 갖고 싶고 편한 게 좋고 재미있고 즐거운 것을 추구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아이를 다시 마주할 힘이 생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나 스스로 ‘이 정도면 나도 아이도 괜찮아’ 하는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여성이 아이를 낳았다고 누구나 모성애가 우러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절대적인 기준도 없고요. 인간의 성격이 타고나듯 모성을 표현하는 방법이나 강도 등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러니 밥하느라 아이에게 TV 보여준 걸 가지고 자신의 ‘모성’을 의심하면서 괴로워하지 마세요.‘TV가 없었다면 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웠을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저의 셀프 모성지수는 10점 만점에 8점이나 되니까요. 엄마도 사람인데 숨은 좀 쉬고 살아야죠. 아이에게 미안해할 시간에 차라리 아이와 5분 더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나요?” 

엄마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아이가 엄마를 훨씬 더 사랑한다. 엄마가 아이를 보지 않고 주변을 곁눈질할 때도 아이의 시선은 늘 ‘엄마’에게 고정돼 있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혼이 나도 울면서 혼을 낸 엄마 무릎에 매달린다. 자신을 가장 좋아해주고 돌봐주는 게 엄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누가 뭐라 해도 엄마인 ‘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사랑한다고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해서도 안 되고 짐이 돼서도 안 된다. 뭉클한 건 좋지만 묵직한 건 싫다. 어쩌면 엄마라는 존재는 그리 대단하지도, 대단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어깨의 힘을 빼자. 남녀의 연애가 그렇듯 그저 ‘같이 잘해보자’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Profile 임경선
1972년생. 호텔, 음반사, 인터넷 회사, 광고대행사, 잡지사 등을 거치며 10여 년간 마케팅 매니저로 활동했다. 서른 살을 기점으로 여러 일간지와 잡지에 연애와 커리어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으며, ‘캣우먼’이라는 닉네임으로 라디오에서 인생 상담을 하기도 했다. 칼럼집 <러브 패러독스>, <캣우먼의 발칙한 연애 관찰기>,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 장편소설 <어떤 날 그녀들이> 등의 책을 썼다.




어떤 때 나는 윤서가 너무 사랑스러운 나머지
머리가 휙 돌 것만 같은 느낌에 휩싸인다.
반면 어떤 때는 그 사랑이 너무 고통스러워, 너무 부담스러워
자꾸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

아무리 봐도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정말로
가급적 아이가 가진 운명을 방해하지 않는 것. 그뿐인 것 같다.

아이에게 아이 나름의 삶과 생각들이 있구나, 라는
확실한 감촉이 느껴지니
내가 이 여자아이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가 더 잘 보인다.

아이 인생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아이이고
부모는 어디까지나 초대받지 않은 조연.
난 내 인생 살 테니 넌 네 인생 살아, 응?

누가 뭐래도 아이에겐 ‘내 엄마’가 가장 완전한 엄마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기적 같은 아이의 확신을
있는 그대로 행복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아이가 내게 무얼 해줄 것을 원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아이의 삶 자체가 너무 궁금할 뿐이다.
엿보게만 허락해준다면 고마울 것 같다.


<엄마와 연애할 때> 중에서(임경선 저, 마음산책)  

 

 

‘캣우먼’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칼럼니스트 임경선 씨. 솔직하고 똑 부러지는 ‘돌직구’ 화법 때문일까? 그녀의 메일함에는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육아와 직장생활은 양립이 가능한지’ 등의 절실한 조언을 구하는 엄마들의 메일이 가득하다. 하지만 육아에 관한 한 그녀는 어떤 속시원한 대답도 해줄 수 없다. 그저 ‘누구나 똑같은 엄마가 될 필요는 없다’는 말밖에는.

Credit Info

기획
한보미 기자
사진
이성우
촬영협조
빈스브라운(02-2281-2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