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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의 엄마가 심리학에게 묻다

“엄마와 여자, 어느 쪽도 포기하지 마세요”


첫째는 생후 13개월까지 혼합수유를 했고, 둘째는 젖병을 아예 안 빨고 분유도 거부해서 16개월까지 모유수유를 했어요. 평소에 별로 신경 안 쓰고 살았는데 지난주에 오랜만에 목욕탕에 갔더니 세상에! 가슴이 하나도 없는 거 있죠. 다른 사람들 눈에 띌까 창피해 구석 자리에서 가슴을 가리며 재빨리 씻고 나왔답니다. 

그런데 이게 한번 신경쓰이니 남편 보기도 부끄럽고 창피하고, 옷을 입어도 맵시도 안 나고…. 요즘 제 눈에는 여자들 가슴만 보여요. 미련하게 모유수유를 왜 그리 오래했는지 후회될 뿐입니다. ID 러브민

 

아이 둘을 엄마 젖으로 키우고 나면 탱탱하고 예쁘던 가슴이 마치 할머니 가슴처럼, 빈 주머니처럼 홀쭉해지는 게 사실이죠. 수유를 막 끝낸 젊은 엄마들에겐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에요. 가슴을 가리고 쩔쩔매는 님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한편으론 사랑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등을 쓰다듬으며 장하다고 칭찬해주고 싶네요. 

모유수유를 한다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에요. 농축된 영양분을 고스란히 아이에게 주게 되니 엄마는 빈혈이나 영양실조 같은 증상을 겪을 수도 있죠. 아이와 떨어져 외출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구요. 

자꾸 불어오는 가슴, 줄줄 흐르는 젖을 간수하는 일은 또 얼마나 번거로운가요.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동안 엄마의 가슴은 여성의 성적인 상징이기보다 아이의 밥주머니이고 생명주머니일 뿐이지요.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몸, 그중에서도 자궁과 가슴은 여러 가지 시선으로 읽혀요. 결혼 전에는 에로스의 상징으로 인식되다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모성적 상징으로 대변되지요. 

뿐인가요. 모성의 역할이 끝나고 나면 여성의 몸은 아줌마라는 이름으로 비하되기도 하지요.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눈이 ‘성스럽고도 섹시한 몸’이나 ‘성스러워서 섹시한 몸’, 이렇게 하나로 통합되면 좋을 텐데, 우리 문화에서는 분열돼 있다는 게 문제가 되지요. 

모성적 역할을 하는 여성의 몸은 성스럽지만 섹시하다고 느껴서는 안돼요. 또 성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여성의 몸은 또 야하긴 하지만 성스럽지 않지요. 이러한 여러 시선과 복잡한 정체성 때문에 가장 혼란을 겪는 건 사실 우리 여성들이에요. 정체성이 달라질 때마다 받아들이고 적응하고 거기에 외부의 시선까지 감내하느라 너무 힘들거든요. 

 

그런데 러브민 님, 새삼 빈 가슴이 부끄럽게 느껴진다는 걸 보니 이제 다시 여자로, 한 개인으로 돌아오신 거네요. 개인적으론 혼란스럽겠지만 사실 축하할 일이에요. 엄마로 사는 것도 축하할 일이지만 엄마가 아닌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도 여성의 생애에서 중요한 과업이니까요. 

아이가 기고 서고 걷고 뛰면서 조금씩 엄마의 손을 벗어나는 그만큼 엄마도 조금씩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서, 독립된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준비해야 하지요. 한쪽에 몰두하느라 다른 한쪽을 완전히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두 가지 삶을 잘 조화시켜 끈기 있게 살아내세요. 

그게 아이에게도 교육적으로 중요하다는 거 잘 알고 계시죠?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들의 돌잔치나 생일잔치만 해줄 게 아니라 엄마의 출산기념일, 모유수유완료일 등도 기념하고 축하해줬으면 한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지난 삶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삶을 준비할 수 있게 말이지요. 

러브민 님, 가슴은 조금씩 커질 거예요. 물론 예전만큼 예뻐지진 않겠지만요. 그래도 모유수유를 했다는 자부심과 앞으로 자기 몫의 삶을 좀더 많이 살 수 있게 됐다는 기쁨으로 속상한 마음 위로하시길 바랄게요.

 

BB COUNSELLING

‘사랑스러 운 아이를 낳았는데, 왜 우울한 걸까?’, ‘혹시 나도 슈퍼우먼 콤플렉스는 아닐까?’ 아이의 엄마이자 여자로서 마음이 고단하다면 <베스트베이비> 편집부로 메일(bestbaby11@naver.com)을 보내주세요. 박미라 작가가 선배 엄마의 입장에서 어드바이스를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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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미라씨는요…  
  • 가족학과 여성학을 공부했다 . 현재는 심신통합치유학을 공부하며 한겨레문화센터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치유하는 글쓰 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육아수필집 <엄마 없어서 슬펐니?>, 감정 치유 에세이 <천만 번 괜찮아> 등을 집필했다. 

Credit Info

기획
한보미 기자
박미라
일러스트
경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