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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씨의 그림책을 통해 본 아이 심리

새로운 출발을 상징하는 눈



새로운 출발을 상징하는 ‘눈’

눈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있을까? 눈을 처음 보는 아이들도, 눈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도 눈이 오면 금세 흥분한다. 여기에는 이유도 설명도 필요 없다. 아이들은 그냥 눈이 좋고, 만지고 싶고, 눈밭을 내달리길 원한다.
왜 아이들은 눈을 좋아할까? 눈은 순백이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흰 종이처럼, 무언가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기에 흰색은 늘 그리운 출발점이다. 이와사키 치히로는 <눈 오는 날의 생일>에서 하얀 눈과 새로운 시작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토토가 태어난 날은 눈이 왔다고 한다. 생일을 하루 앞둔 토토는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작은 실수를 한다. 친구들의 놀림에 창피해져 도망치고 만 토토는 생일도 친구도 다 싫어진다. 
하지만 토토에겐 한 가지 소원이 있다. 바로 자신이 처음 태어난 그날처럼 이번 생일에도 눈이 왔으면 하는 바람. 눈을 기다리는 토토의 마음은 백지 위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다.
눈은 새로운 출발점이다. 살아온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은 창피함을 더욱 견디기 힘들다. 어른들은 이미 벌어진 지난 일은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반면 아이들은 종종 과거를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취소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눈처럼 모든 것을 덮고 새로 시작할 수 있길, 다시 태어난 듯 과거의 창피함을 잊을 수 있길 바란다. 눈이 갖는 또 하나의 매력은 솜처럼 가벼운 그 우아한 낙하에 있다. 천천히 흔들리며 떨어지는 눈송이를 보면 새의 깃털처럼, 이불솜처럼 포근할 것만 같다. 

필리스 루트가 글을 쓰고 베스 크롬스가 그림을 그린 <겨울 할머니>는 눈에 대한 서양 민담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늘에 사는 겨울 할머니는 봄, 여름을 보내는 동안 거위의 깃털을 모아 큰 깃털 이불을 만든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만든 이불을 턴다. 이불에서 작은 가루가 떨어져 내리고 그것이 눈이다. 거위털과 이불이 주는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 실제로 만지면 차갑고 선뜩한 눈이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분명하다.

레이먼드 브릭스의 <눈사람 아저씨>는 눈의 상상력을 극대화한 환상적인 그림책이다. 아이가 낮에 만든 눈사람이 밤이 되자 아이를 상상 속 세계로 데려간다. 함께 방에서 놀이를 하고 맛난 음식을 차려 먹는다. 하늘을 날며 멋진 도시를 구경시켜주고 내일 또 만나자며 헤어진다.
아이들은 사소한 것을 만들면서도 그 사소한 것이 죽어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의 상상 속에서는 아이의 마음이 들어간 모든 것은 살아 움직인다. 낮에 놀이할 때 마주친 것들, 그리고 놀이 속에서 아이가 만든 것들은 아이의 꿈속에서 더욱 자유롭다. 아이가 꿈을 통해 이루지 못한 소망을 이룰 때 하얀 눈은 그 꿈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좋은 소재 중 하나다. 

하지만 눈이 꼭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막상 만져보면 맨손으로 만지기 어려울 정도로 차갑다. 눈밭에서의 놀이는 신나지만 몸은 바짝 얼기 십상이다. 정말 만만한 것은 없고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아이도 이것을 알아간다.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던 일도 결코 쉽지 않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 편인 듯 생각했던 친구들도 때에 따라 변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 한다. 온전히 내 편인 줄 알았던 엄마조차 내 말을 안 들어줄 때가 많다.
그럼에도 눈이기에 아이들은 도전하려 한다. 왠지 가볍고, 포근하고, 해볼 만하다 느껴지기에. 아이의 도전을 격려하는 부모에게 눈은 좋은 모델이 된다. 아이는 옳은 것, 좋은 것을 따라가지 않는다. 신나는 것, 매력적인 것에 용기를 낸다. 만만한 것, 도전해볼 만한 것에 끌린다. 부모부터 미리 겁내지는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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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천석씨는요…  
  •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이자 그림책 읽기를 취미라고 이야기하는 소아정신과 의사. 실제로 몇 권의 그림책을 쓰기도 했다. 방송 출연과 신문 기고 등의 활동을 통해 어려움을 겪는 아이와 부모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 트위터(@suhcs)를 통해 부모들이 꼭 새겨야할 육아 메시지를 전달 중이다.


Credit Info

기획
한보미 기자
서천석(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
일러스트
눈사람아저씨(마루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