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네이버포스트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연재기사

딸바보가 겪었어

고생하니까 여행이다

여행은 특별하다. 둘이 아닌 셋이 함께 바다를 바라보던 순간의 벅참은 느껴본 사람만 안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에서 경이로운 것을 경험한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그래서 더 고생스럽지만 그만큼 충만하다.


고생하니까 여행이다
민솔이가 태어난 뒤 여느 부모들이 그러하듯 우리 부부도 한동안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따뜻한 봄날이 되니 유채꽃 만발한 제주도가 그리워졌다.
민솔이가 생후 6개월이 지나고 우리도 초보 육아 딱지를 뗄 무렵, 과감하게 제주행을 결심했다.
지인들은 가면 고생이라며 극구 말렸지만 출산·육아에 지친 아내와 나에겐 온전한 휴가가 필요했다. 마음 같아서는 더 멀리 가고 싶었지만 민솔이가 오랜 비행은 견디지 못할 것 같고 2시간마다 모유수유를 해야 하므로 2시간 이내로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렇게 민솔이는 생애 처음으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1시간이 좀 넘는 비행 시간 동안 뭐 큰 일이 있으랴 과신했던 게 잘못. 아이가 꿀잠을 잤으면 하는 바람은 탑승 순간부터 산산이 부서졌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민솔이의 눈은 더 또랑또랑해졌고 낯선 환경 탓인지 엄마 품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미리 신청한 배시넷은 짐 가방 차지가 된 지 오래. 우리 부부는 통로에 선 채로 칭얼거리는 민솔이를 달래느라 제주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지쳐버렸다.
제주에 도착해서도 난관은 계속됐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봄날의 제주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젖먹이를 데리고 떠난 여행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았다.
렌터카를 타자마자 민솔이는 뭔가 불편했던지 계속 칭얼댔고 유채꽃이 만발한 올레길을 걷고 싶었지만 아기를 안고서는 오래 걷기 어려웠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 음식 냄새가 낯설어선지 민솔이가 계속 울어 한 사람씩 교대로 밥을 먹어야 했다. 흑돼지도, 갈치조림도, 고등어회도, 해물뚝배기도, 음식 맛도 제대로 못 느낀 채 허겁지겁 먹었다. 2시간마다 수유하랴, 몸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 달래랴 아내의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난 지 오래.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돌아오니 집 나가면 고생한다는 선배들의 말이 실감 났다. 우리 민솔이가 제주도에서 가장 좋아했던 곳은 숙소의 침대였다. 늘 지내는 집과 같은 익숙함이 좋았을까.



결국 우리는 떠나기 전에 세웠던 계획을 모두 취소하고 숙소 근처를 산책하거나 숙소에 누워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마음 한편엔 사려니숲길도, 용눈이오름도 못 오른 아쉬움이 있었지만 지금 와 생각하면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제대로 쉴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이전과는 매우 다르다. 아이의 컨디션이 허락하는 순간의 풍경만 온전히 맞이할 수 있다.
그래도 여행은 특별하다. 둘이 아닌 셋이 함께 바다를 바라보던 순간의 벅참은 느껴본 사람만 안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에서 경이로운 것을 경험한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그래서 더 고생스럽지만 그만큼 충만하다.
  • 김진형 씨는요… 
  • 올해 다섯 살이 된 민솔이의 아빠로 광고회사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더없이 사랑하는 딸과의 추억을 남기고 싶어 <딸바보가 그렸어>라는 육아 에세이를 출간했다. 현재도 계속해서 온라인 채널에서 가족과 딸의 추억을 그려나가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황선영
글*그림
김진형(아트디렉터, <딸바보가 그렸어> 웹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