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네이버포스트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칼럼

박기자의 why 육아

아날로그 육아가 간절한 이유


TV나 종이 신문으로 뉴스를 접한 지 이미 오래전이다. SNS에 원하는 매체를 설정해두면 시시각각 변하는 뉴스가 내 담벼락을 알아서 채운다. 요즘 기사는 단순히 ‘사진 + 텍스트’의 구성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스마트한 뉴미디어 시대에 걸맞게 사용자 중심으로 최대한 가독성 있게 페이지를 구현한다. 굳이 스크롤바를 내려가며 찬찬히 텍스트를 챙겨 읽지 않아도 된다.
내가 읽어야 할 텍스트가 임팩트 있는 사진과 ‘클릭을 부르는’ 마법의 글귀로 요약되어 있다. 어쩔 때는 읽어야 할 글이 타이핑 효과를 내며 스마트폰 화면을 한 자 한 자 채워나가기도 한다. 내 시선은 그 글자를 부지런히 쫓아갈 뿐이다. 문득 뉴스의 정리된 멘트가 잘 만들어진 PPT 문서 같단 생각이 든다.
넘치는 정보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뉴미디어 세상 속에서 온갖 콘텐츠들은 이렇게 ‘독해’의 편의를 제공한다. 그런데 읽기 편해진 환경 덕분에 역설적으로 독해력은 떨어지는 것 같다. 간혹 ‘스압주의’라는 경고문이 붙은 글에는 으레 이상한 댓글이 붙어 있곤 한데, 장문의 글을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엉뚱한 글이 그것이다.

날이 갈수록 기계는 점점 똑똑해진다. “시리(Siri), ○○동 극장을 검색해줘” 하면 반경 몇 키로 내에있는 극장 리스트를 야물딱지게도 알려준다. “시리, ○○어린이집으로 전화 걸어줘” 하면 군말 없이 전화도 걸고 문자도 보낸다.
이렇게 기계는 점점 똑똑해지는데, 그런데 왜 난 더 바보가 돼가는 기분이 들까. 바쁜 세상에 핵심만 전달하는 뉴스, 내 시간과 노력을 절약해주는 인공지능 서비스는 생각하고 고민할 짬을 주지 않는다. ‘생각’이란 게 내 머리에 머무르지 않고 성긴 체를 통과하듯 쓰윽 지나쳐갈 뿐이다.
애당초 ‘디지털 네이티브’로 태어난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스마트한(?) 화법에 익숙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세상의 진면목을 알고 싶다면 무엇이든 애정이 담긴 눈으로 오래, 그리고 깊게 들여다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야 행간의 숨은 의미를 읽어내고, 이면에 감추어진 것들을 알아보는 슬기로움이 생긴다.

그래서 결국 ‘아날로그 육아’를 갈망하게 된다. 세상을 이겨낼 힘은 원초적인 체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날로그 육아를 위한 실천법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기에 끊임없이 고민해볼 따름이다.
거실에서 TV를 치우고 최소한 집에서만큼은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는 건 고전적이긴 해도 여전히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공간이 바뀌고 행동에 제한을 두면 결국 사람은 그 환경을 따르고 적응하게 마련이니까…. 가짜 대신 진짜 체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각종 체험전 티켓으로 ‘체험’을 구매하기보다 실제 현장에서 체험할 기회를 최대한 많이 주고 싶다.

아이를 기다려주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쉬운 길, 지름길을 모른다고 선뜻 정답을 알려줘서는 안 된다. 일일이 가르치는 대신 아이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어야 겠다. 무더디 가더라도 제 힘으로 방법을 찾아내도록, 답답한 마음을 꾹 참고 지켜봐줘야 한다. 한 번 헤맨 길은 결국 내 길이 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내 길’에 내비게이션은 필요 없다. 두 다리로 많이 걸어보고 두 손으로 많이 만져보게 하고 싶다. 알려준 적은 없지만 아날로그 육아의 핵심은 이게 아닐까. 스스로 하는 것, 내 동력으로 움직이는 것. 나도 아이도 그렇게 살고 싶다.
  • 박시전 기자는요… 
  • 엄마가 되어 그간 습득한 육아 이론을 실전에 써먹으며, ‘우리 아이는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시시때때로 들곤했다. 내가 궁금한 건 다른 엄마들도 궁금해할 거란 보편적 믿음으로 기획·취재하고 있는 생활밀착형 육아 전문 에디터.



Credit Info

박시전
사진
이성우
소품제작
낮잠디자인(zzzdesig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