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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라디오 작가 이재국의 생각

“당신은 아이에게 ‘반가운 아빠’인가요?”

뒷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든든하고, 손을 맞잡고 나란히 서면 친구 같기도 하다. 그러다 뒤돌아보면 인자한 미소를 보여주는 사람. 아빠는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아이의 인생 여정을 지켜주는 사람이다.


대한민국 아빠들은 피곤하다. 아이 키우는 데 드는 돈도 만만찮은데다 TV만 틀면 등장하는 어디 가는 아빠, 슈퍼맨 아빠 때문에 아내의 눈초리는 더욱 매서워졌다. 
어려서 보고 자란 아버지는 감히 말도 못 붙일 정도로 무섭고 엄격한 존재인데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라니…. 누군가에게 방법이라도 따져 묻고 싶다.

평일 내내 직장 상사에, 과도한 업무에 허덕인 끝에 얻은 황금 같은 주말인데 아내는 일주일에 고작 그 이틀도 못 놀아주느냐고 성화다. 남자 주제에 육아의 고충을 감히 알겠느냐고 서운해 하는 아내에게 아빠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고통을 아느냐고 되묻고 싶을 지경이다.

가뜩이나 피곤한 아빠들을 한층 피곤하게 만든 사람이 있으니 바로 이재국(40세) 작가다. 현재 SBS 라디오 <김창렬의 올드스쿨>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아이와 대화하는 아빠가 되자
“아빠 왔다”는 소리에 슬며시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본 적 있는가? 도대체 아빠가 어떤 존재이기에 아이들은 아빠가 집에 오자마자 제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가는 걸까. 
이재국 작가는 지금 당장 아이와의 간격을 좁히지 않으면 이후에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사이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생각만 해도 서글픈 그 풍경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아이와 대화부터 하라고 조언한다.

“흔히 아이들과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죠. 그건 대화를 거창하게 생각해서 그래요. 대화는 지식을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느낌과 분위기, 마음을 공유하는 거예요. 
아빠들이 다 큰 아이들에게 하는 가장 흔한 말이 ‘요즘 학교생활 어떠냐?’거든요. 저는 이런 맥락 없는 대화가 가장 별로라고 생각해요. 대화를 하기 위해 꺼낸 말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건넨 의미 없는 말이라는 거죠. 
예전에 잠깐 강아지를 맡아 키운 적이 있었는데요. 어린이집을 다녀온 연우가 강아지와 인사를 하겠다고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리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대화를 하려면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시작이라는 걸 깨달았죠. 
아이들은 자기보다 월등히 키가 큰 아빠를 올려다봐야 하니 얼마나 위압감을 느끼겠어요. 아이와 가까워지려면 먼저 눈높이를 맞추고 그다음에 아이가 하는 말을 들어주세요.”

아빠들이 아이와 놀아주는 걸 힘들어하는 이유도 아이를 위해 거창한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땀 흘리며 함께 뒹굴거나 놀이터를 누비는 아이의 뒤꽁무니를 쫓는 등 체력을 필요로 하는 일종의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러나 이 작가는 아이의 필요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이야기한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레 짐작하거나 캐치할 필요도 없이 그저 아이가 원하는 것을 ‘바로 그때’ 해주면 된다. 생각 외로 아이는 그렇게 힘든 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

“연우가 그림 그리는 걸 도와달라고 했어요. 크레파스를 들고 무얼 그려줄까 했더니 그냥 아빠는 옆에 앉아 있으면 된다고 하더군요. 보통 이럴 때는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대신 색칠을 해주는 일이겠거니 생각하게 마련이죠.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는 아닐 수 있다는 거예요. 그저 아빠가 자기가 그림 그리는 걸 봐주길 원하거나 아빠가 옆에 있어만 줘도 충분하다는 거죠. 
‘논다’는 의미도 아빠와 아이가 서로 다르게 이해할 수 있어요. 놀이터에서 제일 흔한 풍경이 뭔지 아세요? 벤치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아빠들. 먼 산 바라보면서 한 손으로 설렁설렁 그네를 밀어주는 아빠들이에요. 아이가 미끄럼틀을 타다가 한 번 부르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초점 없는 눈으로 힐끔 쳐다봐주죠. 아주 일상적인 풍경이에요. 
아이가 해달라는 것을 한 번만 제대로 해봐주세요. 아이가 손에 쥐고 온 돌멩이를 들여다보며 ‘우와, 이런 건 어디서 찾았어?’ 말을 건네고, 그네 옆에 서 있으라면 가만히 서 있는 거요.” 

그렇게 아이와 조금씩 교감을 하고 나면 ‘비밀 이야기’ 같은 것도 만들어보자. 이 작가가 애용하는 방법은 보물찾기. 퇴근이 늦을 것 같은 날에는 미리 출근하기 전에 아이의 방이나 책상 서랍에 아이가 좋아하는 고무찰흙을 숨겨놓는다. 그러고는 회사에서 전화를 거는 거다. 
아빠가 집에 좀 늦게 들어갈 것 같은데 보물찾기를 해보자고, 아이가 좋아하는 걸 숨겨놨다고 말하면 된다. 늦은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고무찰흙을 손에 들고 아빠를 보며 웃는 아이 모습 하나로 충분한 마음이 들 것이다.

Profile. 이재국
MBC <컬투의 베란다 쇼>, SBS 라디오 <김창렬의 올드스쿨>의 작가이자 일곱 살배기 딸 ‘연우’의 아빠. 최근 딸과의 소소한 일상을 육아 에세이로 엮은 <아빠 왔다>를 출간했다.


육아의 중요성을 깨닫는 일이 먼저
방송작가인 그는 일반 회사원보다는 출근 시간이 자유롭다. 그래서 연우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일도 직접 할 수 있고, 집에서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도 비교적 많다. 

주변에서는 작가니까 아이와 살갑게 지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볼멘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작가가 본격적으로 육아에 발 벗고 나선 것은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라 어느 날 우연히 본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방송 때문이다.

“엄마는 물론 할머니에게도 걸핏하면 침을 뱉는 아이가 나온 적이 있어요. 막무가내로 엄마를 때리는 것이 일상이던 아이인데 한 달 만에 완전히 다른 아이로 바뀌더군요. 

해답은 ‘아빠’에게 있었어요. 아이가 아빠와 떨어져 살고 있었거든요. 일주일에 고작 하루 아빠를 만날 수 있는데 일에 찌든 아빠는 아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잠만 잤어요. 아빠와 아이를 함께 살게 하고 충분히 놀아주게 했더니 생판 다른 아이가 된 거예요.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의 95%가 아빠와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많대요. 아빠의 태도만 달라져도 아이가 전혀 다르게 자랄 수 있다는 거죠. 그 방송을 보고 육아에서 아빠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깨달았죠.”

이 작가는 기본적으로 아이의 행동에는 악의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번은 연우가 어린이집에서 친구들한테 침 뱉는 걸 배워 와 아빠 얼굴에 침을 뱉더란다. 

여느 아빠라면 감히 아빠 얼굴에 침을 뱉는다고, 어디서 그런 못된 행동을 배워왔느냐고 버럭 화부터 냈겠지만 그는 허허 웃음이 났단다.

“연우가 침 뱉는 걸 보고 배웠기 때문에 그 행동을 따라한 것이지 일부러 아빠를 골탕 먹이기 위해 침을 뱉은 건 아니거든요. 그럼 침 뱉는 행동은 나쁜 행동이고, 특히 사람한테는 침을 뱉으면 안 된다고 말해주면 돼요. 이후에는 한 번도 침을 뱉은 적이 없어요. 

사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어요. 혼났던 적도 없었죠. 어쩌면 그래서인지 더더욱 연우에게 화를 안 내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어머니의 방식이 지금 제가 연우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니까요. 바꿔 말하면 제 행동 하나하나도 연우가 닮게 되겠죠. 그래서 정말 조심스러워요.”



가족을 인생의 1순위로
이 작가도 평범한 직장인이자 아빠인지라 주말에 푹 쉬고 싶은 아빠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아내의 얼굴을 한 번 떠올리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거라 말한다. 

여자는 엄마가 되면 자기 인생의 여러 부분을 포기하면서까지 아이를 낳아 키운다. 임신 기간 동안 몸이 불어 아끼던 옷을 못 입을 수도 있고, 혼몽한 상태에서도 새벽 수유를 하지 않던가. 하지만 아빠들이 아이를 위해 포기한 게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는 것.

즐거운 육아를 만드는 깨알 팁도 있다. 아빠의 취미를 가족의 취미로 만드는 것. 주말에 산에 가는 것이 취미라면 그 취미에 가족을 동참시키면 된다. 

이 작가는 산책을 좋아해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유모차를 밀며 서울 시내를 실컷 돌아다녔다. 그렇게 함께 보낸 시간이 쌓이고 추억을 공유하면 할 말도 많아지고 나중에는 저절로 ‘우리’가 되어 있는 가족의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고 말한다. 

단, 그는 엄마들에게도 남편의 ‘기를 좀 살려줄 것’을 당부했다. 회식 끝에 늦은 귀가를 한 남편을 닦달하기 전에 “술 마시느라 피곤했지?” 한 마디만 건네보라는 것.

“오죽하면 결혼하면 큰아들을 하나 더 키운다고 말하겠어요. 엉덩이 한 번 두드려주듯 남편을 이해해주는 행동이면 충분해요. 

사실 엄마는 아이를 열 달 동안 뱃속에 품고 있었지만 아빠 입장에서는 아이가 시간이 지나자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존재잖아요.”

그는 부모가 보편적으로 느끼는 육아의 고충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기보다 당혹스러운 감정이라고 표현한다. 중요한 건 아이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바로 이 때문에 가족이 함께 하나씩 경험하고 배워가는 일상이 쌓여 ‘우리 가족’만의 특별함이 된다. 

아이들은 반짝이는 말을 하고 사랑스러운 몸짓을 보인다.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행복이 되기도 하고 고충이 되기도 한다. 고단한 하루의 끝, 아무리 힘들어도 팔에 매달린 아이가 즐거워하면 덩달아 행복하고 피로가 씻기는 것 같은 느낌은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모른다는 게 이 작가의 생각이다. 그래서 남자는 아빠가 되어야 철이 드는 모양이다.
 

뒷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든든하고, 손을 맞잡고 나란히 서면 친구 같기도 하다. 그러다 뒤돌아보면 인자한 미소를 보여주는 사람. 아빠는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아이의 인생 여정을 지켜주는 사람이다.

Credit Info

기획
남현욱 기자
사진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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