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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찾은 자녀 교육의 지혜

아이를 잘 키우려는 고민은 예로부터 있어 왔다. 선현들 역시 자식 키우는 어려움을 토로하며 양육의 지혜를 함께 나누었다. 자녀 교육의 해법을 동서양의 고전에서 찾았다.


육아에도 트렌드란 게 있다. 10여 년 전에는 아이를 영재로 육성시키고자 하는 영재 프로그램이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자존감, 애착육아, 감정코칭 등이 육아 분야에 이슈로 떠올랐고, 유대인의 자녀교육법, 절제와 인내를 가르치는 프랑스 육아, 북유럽의 스칸디 육아도 핫한 육아법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렇듯 시대의 흐름과 요구에 발 맞추어 육아 트렌드도 다양한 변화를 거듭해오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변치 않는 것은 동서고금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 모든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좋은 부모가 되고자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오랜 세월 수많은 이들에게 읽혀온 고전에 담긴 자녀 교육의 지혜는 부모로 하여금 흔들리지 않고 아이를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유행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자녀교육법이 아니라 수십 년, 수백 년 이어져 온 지혜이기에 더욱 귀감이 될 만하다. 오래된 동서양의 고전에 밑줄 그으며 자녀 교육의 해법을 찾아보자.

자녀를 존중하는 것과 부모의 권위를 잃는 것은 다르다

애친자불감오어인 愛親者不敢惡於人

경친자불감만어인 敬親者不敢慢於人


- <소학> 명륜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감히 남을 미워하지 못하며,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남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은 부모로서 받아야 할 공경도, 권위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요즘 부모들이 대체로 지향하는 부모상은 ‘친구 같은 부모’ 되기다.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 부모의 모습도 엄한 부모보다는 격의 없고 자상한 부모들이 대부분. 
하지만 ‘친구 같은’ 부모가 되는 것은 좋지만, 진짜 아이의 ‘친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부모라면 당연히 권위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권위’란 흔히 생각하는 ‘권위적인’ 부모가 아닌, ‘권위를 지닌’ 부모를 뜻한다. 부모의 권위는 세월의 변화에 상관없이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에는 응당 엄한 꾸짖음이 필요한데, 그 꾸짖음이 효과를 보기 위해 부모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 아이가 잘못했는데도 잘못을 꾸짖지 못하면 아이는 갈피를 잡지 못하며 사회의 통상적인 관습이나 규범을 지키는 데에도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어디까지가 괜찮은 행동인지, 또 어떤 것이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인지 적당한 경계를 그어주어야 건강한 훈육이 가능하다. 요즘처럼 ‘부모의 권위’가 부족한 시대에 ‘효’(부모를 공경하는 것)를 강조한 공자의 말씀은 되새겨봄 직하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덕목 ‘참을성’

천자불인 국공허 제후불인 상기구 子不忍 國空虛 諸侯不忍 喪其軀

관리불인 형법주 형제불인 각분거 官吏不忍 刑法誅 兄弟不忍 各分居

부처불인 영자고 붕우불인 정의소 夫妻不忍 令子孤 朋友不忍 情意疎

자신불인 화부제 自身不忍 患不除


- <명심보감> 계성

천자(天子)가 참지 않으면 나라가 황폐해지고, 제후(諸侯)가 참지 않으면 그 몸을 잃게 된다. 관리(官吏)가 참지 않으면 형법에 의해 죽게 되고, 형제(兄弟)가 참지 않으면 각각 헤어져 따로 살게 된다. 
부부가 참지 않으면 자식이 외로워지고, 친구가 참지 않으면 마음이 멀어져 소원해지며, 스스로 참지 못하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명심보감>에 실린 글귀로 참을성의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조금만 속상해도 견디지 못하고 쉽사리 울분을 토한다.
사실 요즘은 무조건 참는 게 미덕이 아니며, 오히려 참기만 하면 바보가 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도 같다. 하지만 인내와 절제는 유아기에 꼭 익혀야 할 과제다.
아이가 참을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진다면 평소 잘못된 양육을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자. 아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들어주고, 사달라는 건 다 사준 부모라면 아이에게서 참을성을 기대하기란 힘든 일이다. 언제나 자신의 욕구가 즉각적으로 충족되었던 아이는 작은 기다림도 견디지 못하게 마련이다.
참을성의 중요함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현대 과학 역시 잘 참는 사람이 결국 행복해질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다양한 심리실험으로 증명해냈다. 익히 알려진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마시멜로 실험이 대표적인 예.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나 조건을 극복해내는 회복탄력성도 비슷한 예로 들 수 있다. 순간의 충동과 감정을 참을 수 있는 능력은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참을성은 아이의 모든 생활에 영향을 미치며, 훈련을 통해 길러줄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아이의 욕구를 바로 충족시켜주기보다는 기다림의 시간을 주도록 하자. 
아이가 사달라는 것을 바로 사 주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아이의 요구가 정당한 것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들어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아이도 고마움을 느끼며 얻은 것에 대해 더욱 가치를 두고 소중하게 여긴다. 
‘모든 행실의 근본은 참음이요, 참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되새겨보자. 

아이는 부모의 은밀한 모습을 알고 있다

증자왈 십목소시 십수소지 기엄호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대학> 전6장

증자가 말하였다. “사방에 눈이 있어 나를 지켜보고 있고, 사방에 손이 있어 나를 가리키고 있으니,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아이를 키우다 보면 기를 쓰고 가르치려는 것은 죽어라 안 따르면서, 제발 좀 닮지 않았으면 하는 모습은 그대로 따라할 때가 참 많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심지어 부모 스스로도 몰랐던 습관이나 행동을 그대로 보이는 아이를 볼 때면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채근담>에서도 비슷한 말이 언급된다. ‘남들이 보는 곳에서 죄를 짓지 않으려거든, 먼저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부모가 자녀의 본보기가 되고자 한다면 아이가 보지 않는 곳에서부터 행동을 바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행동이 아니라 근본이 되는 ‘마음 자세’부터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는 부모의 걸음걸이조차 닮게 마련이다.
동양의 사상 중에 ‘신독(愼獨)’ 사상이 있다. 홀로 있을 때에도 사방에 눈이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직접 보지 않으면 자신의 행동을 모를 거라 생각하지만 아이는 귀신처럼 부모의 모습을 알아챈다. 
이처럼 부모의 삶 자체가 아이에게 영향력을 미친다. 자녀 교육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부모 또한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한다.



<초등 고전 읽기 혁명>으로 잘 알려진 송재환 선생이 최근 <부모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펴냈다. <논어>, <대학>, <채근담> 같은 고전에서 자녀 교육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한 이 책은 동양 고전에 담긴 자녀 교육의 지혜를 조곤조곤 알려준다. 실제로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그는, 부모로서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책에 담았단다.
“부모는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늘 불안하고 자책과 후회를 반복하죠. 그런데 자녀 교육이 어렵기는 옛 선현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맹자는 ‘군자는 자녀를 직접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들이 오랜 수학(修學) 끝에 깨달은 자녀 교육의 지혜가 동양 고전에 고스란히 담겨 있더군요.”

송재환 선생은 요즘 사람들이 물질적으로는 풍족함을 누리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고 염려한다. 반면에 선현들은 통찰력과 직관이 요즘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단다.
“요즘 자녀교육서는 너무 친절해요. 하나하나 상세한 방법을 알려주니까요. 하지만 아이를 키울 때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교육법이 아니라 부모의 철학이 더 중요해요. 그게 바로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 생각합니다.”
‘자녀 교육의 시작은 부모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라는 동양 고전의 구절에 깊이 공감한다는 그는 부모가 종종 아이에게 화를 내게 되는 이유가 실은 부모 자신의 못난 모습을 인지한 데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방목해서 기른 젖소와 울타리 안에서 자란 젖소 중 누가 더 젖을 많이 생산할까요? 얼핏 방목한 젖소라 생각할 수 있지만, 울타리 안 젖소가 훨씬 더 많은 젖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적당한 보호를 받으며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래요. 요즘은 부모도 아이도 ‘규범’을 싫어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적당한 울타리를 정해주는 게 중요해요. 한계를 모르면 오히려 우왕좌왕하며 불안해한답니다.”
흔히 고전 속 글귀를 고리타분하게 여기기도 하지만 고전이 말해주는 안정적인 지침은 부모로 하여금 육아 트렌드에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자신 있게 소신 육아를 펼치도록 도와준다. 자, 지금부터 고전을 읽어보면 어떨까. 엄마도 아이도 한층 더 자라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적당한 ‘결핍’은 아이에게 꼭 필요하다

아이를 불행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아이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언제나 주는 것이다.
쉽게 욕망이 충족된 아이의 욕망은 끊임없이 커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 당신은 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아이의 요구를 거절해야만 하는 시기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거절에 익숙하지 못한 아이는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거절당했다는 것 때문에 더 괴로워하게 된다. 처음에 아이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지팡이를 원한다.
다음에는 시계를 원한다. 다음에는 날고 있는 새를 원한다. 하늘에서 반짝거리는 별을 원한다.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원한다. 신이 아닌 이상 당신이 이와 같은 아이의 요구를 어떻게 충족시켜줄 수 있겠는가.
- 루소의 <에밀> 중에서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 사상서 <에밀>. 세상에 나온 지 200여 년이 훨씬 지난 고전이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부모에게 귀감이 될 주옥같은 내용이 그득히 담겨 있다.
위 글귀는 사람이란 갖고 싶은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으며, 결국 행복은 자기만족에서 오는 것임을 알려준다. 요즘 아이들은 결핍이나 좌절에 익숙지 않다. 넘치는 풍요로움 속에 자라고 원하는 것을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있다 보니 스스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결핍이 있어야 동기가 생기고, 그 동기가 원동력이 되어 무엇이든 제 힘으로 해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행복감을 얻는다.
따라서 유아기에도 어느 정도의 좌절과 결핍은 필수다.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안 해줄지’를 생각하자.

사랑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관심을 갖는 것이며 존중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며 이해하는 것이고,
사랑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에리히 프롬이 남긴 사랑에 관한 명언이다. 이 말은 부부, 연인 사이는 물론 부모·자식 간에도 통용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정’이라는 온실 안에서 길러진다. 
온습도가 세심히 맞춰진 아늑한 환경에서 부모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험한 세상으로 나가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무성한 가지를 뻗어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혼자서도 잘 살아나갈 수 있도록 잘 보살피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며, 육아란 결국 아이가 스스로 자유를 찾아 훨훨 떠날 수 있도록 무던히 애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양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녀의 ‘독립’에 있음을 잊지 말자.

아이 스스로 알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하는 것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칠 좋은 방법을 알아내려 애쓴다. 그래서 낱말카드와 글자 상자를 만들고 아이의 방을 꾸민다. 하지만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다. 바로 글을 알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원동력이다. 에밀은 이따금 친척들 또는 친구들로부터 만찬이나 산책을 가자는 초대장을 받는다. 그러나 초대장을 읽어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자신의 곁에 아무도 없다.
시간은 지나고 그래서 결국 기회를 잃는다. 아, 초대장을 읽을 수 있었더라면! 나중에 또 다른 초대장을 받게 되면, 에밀은 어떻게 해서든 읽어보려 애쓸 것이다.
- 루소의 <에밀> 중에서

배가 고픈 아이는 알아서 숟가락을 들고, 목이 마른 아이는 물을 마시게 마련이다. 심심하면 알아서 놀이를 찾게 되고, 배움에 대한 갈증이 생기면 강요하지 않아도 알아서 그 욕구를 충족시킨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자기주도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보다 어떻게 하면 ‘안 해줄지’를 고민해야 한다. 
생활습관은 물론 공부도 마찬가지. 어설픈 선행학습은 아이의 공부에 대한 호기심과 의욕만 꺾을 뿐이다. 아이가 스스로 하고자 할 때는 대신 해결해주기보다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하는 조력자가 되면 충분하다.

충분한 사랑을 받은 아이가 더 독립적으로 자란다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히말라야 고원에 자리한 라다크.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해온 이곳은 언어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헬레나 호지의 저서 <오래된 미래>에 소개되며 알려졌다. 
라다크는 빈약한 자원과 혹독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선조들의 오랜 생태적 지혜를 바탕으로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 왔다. 라다크 사람들은 누구도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아이가 책을 찢고 귀찮게 해도 어른들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아 붓는다. 
아이들을 너무 받아주면 버릇이 나빠진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라다크 아이들은 버릇이 나빠지기는커녕 다섯 살만 되어도 책임감 있는 아이로 성장한다. 대여섯 살 아이가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업고 다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충분한 사랑을 받은 아이들이 더 빨리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성장한다는 걸 보여준다. 건강한 사회란 각 개인에게 무조건적인 정서적 지지를 해주며, 긴밀하게 유대 관계를 맺는 사회이다. 이러한 틀 안에서 개인은 더욱 자유롭고 독립적이 될 수 있다. 
라다크의 예에서 과거 우리 선조들의 양육 태도를 떠올릴 수 있다. 아이에게 무언가 강요하거나 채근하기 보다 그저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을 주었다. 기다림은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가 꼭 지녀야 할 지혜다.

- 헬레나 호지 <오래된 미래> 중에서

아이를 잘 키우려는 고민은 예로부터 있어 왔다. 선현들 역시 자식 키우는 어려움을 토로하며 양육의 지혜를 함께 나누었다. 자녀 교육의 해법을 동서양의 고전에서 찾았다.

Credit Info

기획
박시전
사진
이혜원
참고도서
<부모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글담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