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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칼럼니스트 박미라의 생각

엄마 노릇이 힘든 당신, ‘천만 번 괜찮아’

심리학의 역할은 두 가지다. 병적이거나 생활에 지장을 주는 부적응 문제를 고쳐주는 것, 또 하나는 사소한 문제는 그저 ‘그러려니’ 받아들이게 하는 관점과 방법을 제시하는 것. 심리학 칼럼니스트 박미라는 이렇게 말한다. 삶의 변화는 마음먹기가 아니라 지금껏 살아온 내 모습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고.


수많은 칼럼과 수필집, 인터넷 카페 마음과친구(cafe.daum.net/friendwithmind) 등을 통해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여성들의 마음을 위로해온 심리학 칼럼니스트 박미라 씨. 
최근에는 <베스트베이비> ‘엄마가 심리학에 묻다’ 칼럼을 통해 육아, 주변인과의 관계, 경력 단절, 자기 정체성 등의 고민을 털어놓는 후배 엄마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때로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있다.

“첫아이 낳고 저라고 뭐 별수 있었겠어요. 속으로 ‘왜 이러지?’, ‘왜 안 되지?’를 하루 1000번쯤 외쳤던 것 같아요. 20년 전 11명이 공저한 <초보엄마 파이팅>에 초보 엄마의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 책이나 잡지에서 말하는 육아 이론대로 키우면 되는 건지에 대한 고민을 썼어요. 
10년 전에는 워킹맘으로서 느꼈던 애환을 담아 <엄마 없어서 슬펐니?>를 냈고요. 2011년 <베스트베이비>에서 젊은 엄마들을 위한 심리상담 칼럼을 제안했을 때 문득 ‘그때 만약 내가 이렇게 아이를 키웠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면서 선배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겠다 싶었죠.”
사실 그녀에게 임신과 출산, 육아는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뱃속에 있는 아이 덕분에 행복하다는 동료 임신부들을 만나면 ‘왜 저래? 너무 오버하는 거 아냐?’ 흉을 봤고, 아이를 낳고 가슴에서 갑자기 솟아나는 젖은 당황스럽고 징그러웠다. 예민해서 잠도 잘 안 자고 눈물도 많았던 첫째가 서너 살 때까지는 화내고 짜증내고 온통 전전긍긍했던 기억뿐이란다.
“젊은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학 강의에 나가서 ‘아이 앞에서 포효해본 적 있으세요?’라고 첫 말문을 열면 여기저기서 ‘킥킥’ 소리가 들려요. 공감의 웃음이죠. 
저도 그랬어요. 징징대는 첫째에게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야?’ 하고 버럭 소리를 질러댔죠.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니 어느 날에는 ‘도대체 내가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성격 좋고 이해심도 많은, 게다가 어른인 내가 왜 저 어린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을까? 도대체 내 안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궁금해졌고 이를 계기로 심리학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여러 논문과 책을 탐독한 후에 알게 됐다. 아이 앞에서 포효하고 있었던 건 ‘지금의 나’가 아니라 ‘일곱 살의 나’였다는 걸.
“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사는 게 갑갑했던 어머니는 제 앞에서 매일 훌쩍거리기만 하셨죠. 어린 저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요. 이 마음이 제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아이가 울 때 불쑥 튀어나온 거예요.”
울고 있었던 엄마에게 느꼈던 무력감과 책임감이 울고 있는 아이에게 그대로 투사된 것. 상황을 인정하고 ‘그때의 어린 나를 위로해줘야지’ 마음을 먹자 신기하게도 더 이상 아이에게 소리 지르거나 화를 내지 않게 됐다. 
누구에게나 각자 다른 사연을 지닌 ‘내면 아이’가 숨어있다. 그녀는 그 내면의 아이를 다루는 방식이 현실 속의 아이 양육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내면아이 역시 어른의 논리로 설득되지 않으며, 이성보다는 감성적 위로가 필요하다. 
그저 그 아이의 감정에 적극적으로 공감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수밖에 없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은 ‘현실의 아이’와 아직 성장하지 못한 ‘내면의 아이’를 함께 기르는 일이다. 



육아의 고단함이 필연적인 이유
“아이 키우기 힘들어요.” “집에만 있기 너무 우울해요.” 상담실이나 강연장에서 만난 엄마들이 그녀에게 가장 많이 하는 호소다. 원인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우울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든가 경제적인 부분, 물리적인 주변 상황이 힘든 엄마가 있다.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한 ‘좌절된 꿈’으로 인해 우울감을 느끼는 엄마도 있다. 간절히 사회생활을 하고픈 전업주부나 동료 남자 직원이나 싱글 여성들처럼 일에만 매진할 수 없는 워킹맘들이 받는 스트레스다. 한마디로 인생의 가치가 육아보다는 사회나 일이라고 생각하는 유형. 
마지막으로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일 수도 있다. 모든 일이 계획한 대로, 아귀에 딱딱 들어맞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을 지닌 엄마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좀더 강하게 받는다. 
육아가 즐겁고 신기한 경험이 아니라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똘똘 뭉쳐 있다. 당연히 아이 얼굴을 봐도 웃음이 나지 않고 ‘아이를 위해’ 챙기고 걱정하고 화내기를 반복할 뿐이다. 이런 엄마들에게 육아란 어느 날 느닷없이 던져진 ‘숙제’와 다름없다. 

많은 엄마들이 그녀에게 묻는다.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녀는 말한다. 그런 답은 세상에 없다고. 아이가 주는 행복은 짜릿하고 강렬하다. 하지만 그 어떤 엄마도 속을 끓이고 반성하고 자학하고 어느 순간 다시 편안해지는 이 오묘한 순환을 피할 수 없다. 
한 며칠은 성숙하게 아이를 대한 것 같아 뿌듯해하고, 또 어느 순간 화를 내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화와 분노, 억울함, 무력감과 부담감은 겪을 만큼 겪어야 벗어날 수 있는 법. 그렇게 이 지겨운 순환이 몇백 번쯤 반복된 후 돌아보면 아이는 제법 자라 있을 것이고, 엄마 역시 ‘내가 많이 컸구나’ 느낄 수 있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놓은 선배맘들은 잘난 척(!)하며 ‘육아를 즐기라’고 말하지만, 육아가 현재진행형인 엄마들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죠. 하지만 정말 그게 사실이거든요. 
얼마 전 공원 산책을 갔는데 엄마가 ‘우다다다’ 뛰니 두 돌쯤 된 아이가 깔깔거리며 엄마 뒤를 따라 종종 걷는 거예요. 그런 엄마와 아이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나는 그 시절 왜 저렇게 아이와 재미나게 놀지 못했나’ 싶어 부럽다 못해 억울하더라고요. 아이와 시간을 때워야 한다고 생각했지 ‘나도 재미있게 놀아야겠다’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거든요. 돌이켜보면 그게 제일 바보 같아요.”

아이도 엄마도, 넘어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성장한다
지금 마음이 힘들다면 나를 힘들게 하는 삶의 문제들을 하나씩 적어보자. 최대한 많이 써보는 거다. 예를 들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것, 퇴근 후 장을 봐야 하는 것, 주말에 쉬지 못하고 시댁에 가야 하는 것, 남편이 짜증을 내는 것, 친정엄마가 하소연을 하는 것 등 아주 구체적으로 말이다. 
그런 다음 그 목록을 사안별로 분류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적어보자. 육아 부담은 남편 혹은 주변인들과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친정엄마의 하소연을 듣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사도우미를 써서 집안일 부담을 줄일 수는 없는지 등등. 막연하게 힘들어할 때보다 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좀더 명확해질 것이다. 
간혹 내 힘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자.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여러 상담 관련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그렇게 타인의 조력과 지원을 구하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다.
선배맘으로서 매우 현실적인 조언 하나. 남편에게 육아와 살림 분담을 요구할 때는 분노를 뺀 ‘담백한 명령’이 효과적이다. 남자들은 ‘내가 힘드니 알아서 도와줘’라는 말을 해석할 능력이 없다. ‘화장실 청소해줘’, ‘아이 목욕시켜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게 그나마 잘 먹힌다. 
내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해줄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도 금물이다. 요즘 최고 화제인 tvN <응답하라 1994>에서 주인공 성나정이 ‘문을 닫으면 페인트 냄새가 심하고, 문을 열면 매연이 들어오는데 나는 어떡하지?’라고 물었을 때 나온 남자들의 기막힌 답변들을 떠올리면 그 이유가 분명해진다.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고 우울한 감정을 느끼지 않은 엄마는 세상에 없다. 하지만 이런 당신의 감정은 잘못된 것도, 틀린 것도 아니다. 내가 나쁜 엄마라서 혹은 엄마 준비가 덜 되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육아란 본래 그렇다. 
아이들은 일어섰다가 넘어지기를 수만 번 반복하면서 걸음마를 배운다. 혼자 걸어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돌쟁이 아이에게 ‘왜 제대로 못 걷느냐’고 화를 내거나 비난하는 엄마는 없다.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한 발자국씩 뗄 때마다 박수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엄마 노릇도 마찬가지다. 이제 겨우 한 걸음을 뗐는데 하루아침에 성숙한 엄마나 멋진 엄마가 될 수는 없다. 넘어졌다 다시 일어설 때마다 ‘장하다. 또 한 고비 넘겼네’라며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아껴주자. 아이가 걸음마를 배울 때 내가 옆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금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다면 남편과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고 도움을 청하세요.
사실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무엇이 서운했는지,
그동안 얼마나 고독했는지 말입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다가
그냥 쓰러져버릴지도 모르겠다고, 내가 의지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눈물로 하소연 하셔도 됩니다.
인간이란 사실 나약한 존재이며, 당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 자신과 가족들에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도 책임감을 나눠주세요. 당신이 나눠준
책임감 덕분에 오히려 그들은 더 이상 칭얼거리지 않고
삶의 의욕을 느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또 하나, 자신의 감정을 자꾸 의심하고 반성하는 습관도
내려놓으세요. 그들이 변한 게 아니고 내가 변한 거다,
나와 남의 한계를 받아들이자, 너무 욕심내는 건 아닐까,
고자질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자기 검열 장치 말입니다.
내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생각, 나와 남의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은 어떤 사람들에겐 약이
되지만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친 당신에게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주변의 환경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와 구체적인 실천들입니다.


<천만 번 괜찮아>(박미라 저, 한겨레 출판)

Profile
박미라 씨는요…

1964년생. 22세, 18세 두 딸의 엄마. 가족학과 여성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심신통합치유학을 공부하며 여러 단체에서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민담집 <기센 여자가 팔자도 좋다>, 육아수필집 <엄마 없어서 슬펐니?>, 감정치유 에세이 <천만 번 괜찮아> 등의 책을 펴냈다. 2011년부터 마음이 지치고 아픈 엄마들을 위해 <베스트베이비>에 ‘엄마가 심리학에 묻다’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심리학의 역할은 두 가지다. 병적이거나 생활에 지장을 주는 부적응 문제를 고쳐주는 것, 또 하나는 사소한 문제는 그저 ‘그러려니’ 받아들이게 하는 관점과 방법을 제시하는 것. 심리학 칼럼니스트 박미라는 이렇게 말한다. 삶의 변화는 마음먹기가 아니라 지금껏 살아온 내 모습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고.

Credit Info

기획
한보미 기자
사진
추경미(인물), 이주현(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