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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의 생각

“육아의 불안감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인정’하는 거예요”

예전에는 아이를 예닐곱 명씩 낳고도 잘 키웠다지만 요즘은 한둘 키우기도 힘들다. 어떤 엄마에게 육아는 단순한 부담을 넘어서 ‘쇼크’ 수준이다. 왜 그럴까? 소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원장은 그 원인을 부모로서 자신이 갖는 불안과 두려움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방송, 육아서, 강연 등을 통해 한 번쯤 그녀의 얼굴을 접했을 터.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단호한 몸짓도 기억할 것이다.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EBS <부모> 등의 프로그램에서 전문가로 이름을 알린 오은영 원장은 ‘지금 엄마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내 아이에게 작은 문제만 생겨도 엄마들의 머릿속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이어지고 걱정부터 하게 된다.
사실 모성의 기본은 ‘불안감’에서 출발한다. 여성의 신체 구조부터가 그렇다. 인류가 수렵 생활을 했던 원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수많은 동물 중에서 상대적으로 무력한 인간의 아이가 성인으로 잘 자라게 하기 위해 엄마에게는 ‘불안’이라는 본능이 주어졌고, 이는 아이에 대한 무한한 보살핌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프로게스테론, 에스트로겐, 프로락틴 등 엄마 몸에 분비되는 호르몬은 아기의 안전에 완전히 맞춰져 조금이라도 위험한 요소는 없애려 한다. 한마디로 아이를 낳은 엄마들은 필연적으로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실 불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전인 셈이다. 적절한 불안이 있어야만 자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할 수 있다. 

오 원장 역시 엄마로서 느끼는 불안감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천하의 오은영’이 양육이 불안하고 두렵다니 선뜻 믿기지 않겠지만, 그녀 역시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상당히 불안하고 걱정도 많았다고 털어놓는다.
“지금 아들이 중3인데 성격이 온순하고 남한테 싫은 소리를 잘 못해요. 아이가 중1 때쯤 또래 남자 친구들이 장난으로 툭툭 건드려도 참고 넘어가는 듯한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속 모르는 사람들은 ‘반듯하고 착한 아들’ 두어서 좋겠다고 말하지만 어디 엄마 입장이 그런가요. 저러다 맞고 들어오는 건 아닌지, 담임한테라도 알려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전문가인데다 엄마 노릇도 10년차가 훌쩍 넘었으니 이런 고민과 불안쯤은 거뜬히 초탈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아요. 불안과 두려움은 엄마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감정인 셈이죠.”
많은 엄마들이 육아의 고통을 호소하는 이유는 불안과 두려움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이런 감정이 낯설고 두려워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피하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불안감을 숨기거나 부정하지 않으며 어떤 때 특히 불안한지, 주변 사람의 어떤 행동이 불안한지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에서 겪는 갈등과 스트레스를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 반대로 이 불안감을 적절히 처리하지 못하면 주변인에게 ‘화’를 내게 되는데 그 대상은 엄마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이’인 경우가 많다.

과도한 육아 정보가 독이 되는 이유
우리 이전 세대 엄마들은 먹고사느라 바빠서 육아를 이야기할 여유를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일단 아이를 낳으면 방송이나 책, 인터넷과 SNS, 친구들끼리 수다 등 모든 커뮤니케이션 채널에서 육아와 교육을 이야기한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인받고 싶고 다른 엄마들의 아이 키우는 이야기도 궁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정보가 오히려 더 큰 불안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많이 아는 엄마와 조금 아는 엄마가 이야기를 나누면 불안이 해소되기는커녕 ‘내가 너무 지나친 걸까?’, ‘왜 나는 저런 것도 모를까?’ 하는 생각이 뒤섞이며 자신의 불안감을 다른 엄마한테까지 불안감을 퍼트리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
“진료나 강의 현장에서 만나는 엄마들 중에 인터넷 카페나 파워블로거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익명의 누군가가 올리는 좋은 집과 예쁜 옷, 즐거운 육아 현장을 목격한 후 ‘나는 엄마도 아니야’, ‘왜 우리 집만 이렇지?’ 하는 일종의 ‘쇼크’를 받는 거죠. 세상에는 알아서 좋은 게 있고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게 있는데, 카페나 블로그에 과시용으로 올린 글과 사진이 바로 후자예요.”

정체성의 혼란 역시 요즘 엄마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 자신이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이전 엄마 세대처럼 내 인생을 아이에게 ‘올인’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엄마 세대보다 아이를 더 잘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 것. 
아이를 위한 책 한권을 사려고 몇 시간씩 인터넷 웹서핑을 하기도 하고, 아이를 잘 키우는 육아법도 부지런히 연구한다. 문제는 이렇게 하면서도 ‘나 자신을 몽땅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실 아이와 하루 종일 먹고 입히고 놀아주면서 엄마가 자아실현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갈등과 불안이 생긴다. 방긋방긋 웃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괜찮지만, 떼를 부리고 체력적으로 달리는 상황이 오면 ‘내가 지금 뭐 하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아이에게 화가 난다. 엄마 노릇을 열심히 하는 한편, 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수시로 불안해진다. 육아도, 자기 자신에 대한 일도 모두 불안해지는 거다.



내가 왜 아이를 야단치고 있는지 되물어라
지금 아이 키우기가 버겁게 느껴진다면 자기 자신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지자. 직장에 다니거나 모유량이 부족하면 분유수유를 해도 되고, 요리에 자신이 없다면 시판 이유식을 먹여도 된다. 아이를 위해 엄마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옆에서 지켜봐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자기 자신을 자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나는 왜 아이를 키우며,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기 바라는지를 틈날 때마다 고민해보는 것. 가령 아이의 편식 문제로 식탁에서 아이와 힘겨루기를 한다면 아이에게 ‘몇 숟가락 먹었어?’를 다그치기 전에 ‘나는 왜 아이가 편식하는 게 싫은지’, ‘아이를 잘 먹이고 키우려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 
결국 본질은 ‘아이가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람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엄마와 아이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부어 ‘밥상 전쟁’을 벌이는 대신 영양제를 챙겨 먹이거나 운동이나 산책을 시키는 등 아이의 건강을 위한 다른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오은영 원장은 육아가 못 견디게 힘들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고 조언한다. 지난 10년간 SBS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방송을 통해 소개된 엄마와 아이들이 바로 그런 사례.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는 산후우울증이 육아우울증으로 이어진 경우다. 

“아이를 낳은 뒤 찾아온 산후우울증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아이가 네 살이 넘도록 괴로워하는 엄마가 있었어요. 한창 예쁜 짓을 많이 할 때인데도 아이를 쳐다보는 것조차 싫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작은 실수라도 저지르면 서슴없이 손이 올라가고 소리를 질러대 주변에서 ‘계모 아니냐?’고 수군댈 정도였대요. 상담을 하러 집에 가니 ‘자기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왜 자꾸 아이에게 못되게 구는지 모르겠다’며 펑펑 울더군요.”
사실 이런 집안 사연을 방송에 직접 제보한다는 건 보통 용기가 아니다. 나의 나쁜 모습, 부족한 점들이 만천하에 드러나기 때문. 이런저런 사례의 많은 엄마들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자식을 키울 때는 ‘자존심’은 불필요하다. 물론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다고 단번에 육아가 ‘해피’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양육에 대한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나만큼 내 아이를 잘 알고 잘 키울 수 있는 엄마는 세상에 없다는 자신감을 가져라. 내 잘못으로 아이가 잘못될 것이라는 생각은 접어도 된다. 아이는 엄마의 잘못과 실수도 너그러이 받아들이고 용서할 준비가 돼 있다. 
몇 번 큰 소리로 혼내고 잔소리를 한다고, 아이가 필요로 할 때 너무 피곤해서 모르는 척 눈 한번 질끈 감았다고 엇나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신의 작은 상처쯤은 감당해낼 수 있는 놀라운 회복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뭐든 다 해주려고 하는 대신, 딱 그 절반만 해주고 나머지는 아이에게 맡겨두자. 엄마는 절반의 에너지를 아껴 아이가 손 내밀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안전한 거리’에서 아이를 지켜봐주는 데 쓰면 된다. 그것이 성공한 육아다.

그때 결혼을 좀 늦게 했더라면,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임신을 조금 늦게 했더라면…
물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 억울함과 기대는 누구에게도 있다.
하지만 가지 않은 길을 그리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내가 걸어온 길은 내가 선택한 것이며,
지금 내가 서 있는 길은 선택의 순간 내 세포 하나하나가 최선이라고 판단했던 길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생은 자신의 선택이다. 그것을 자꾸 상황에 의해서, 어쩔 수 없다 라고 생각하지 말자.
자신의 선택은 ‘자신이 그려온 행복의 그림’에 의해서 결정된다.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오은영 저, 웅진리빙하우스) 중에서

Profile
오은영 씨는요…
연세대학교 외과대학 외래교수이자 아동학대예방센터 전문위원,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및 학습발달연구소 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진료실은 물론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EBS <부모> 등의 방송과 강연을 통해 대한민국 엄마들의 ‘멘토’로 떠올랐다. 저서로는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 <아이의 스트레스>,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등이 있다.

예전에는 아이를 예닐곱 명씩 낳고도 잘 키웠다지만 요즘은 한둘 키우기도 힘들다. 어떤 엄마에게 육아는 단순한 부담을 넘어서 ‘쇼크’ 수준이다. 왜 그럴까? 소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원장은 그 원인을 부모로서 자신이 갖는 불안과 두려움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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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보미 기자
사진
추경미(이미지), 조병선(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