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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 엄마 신영일의 생각

“육아란 아이를 통해 나를 사랑하는 일이에요”

자신의 이름보다 ‘푸름이 엄마’로 더 잘 알려진 신영일 씨는 아이를 영재로 키운 비법을 묻는 엄마들의 질문에 ‘기다림과 인내’라고 답한다. 10년 넘게 강연하고 엄마들과 상담하면서 그녀가 느꼈던 육아의 핵심 또한 바로 그것이다.


1999년 영재교육진흥법이 통과된 이후 8세의 나이로 대한민국 영재 1호로 대통령에게 보고되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최푸름 군. 신영일(50세) 씨는 바로 그 푸름이를 키워낸 엄마다. 
온라인 교육 사이트 ‘푸름이닷컴’을 통해 자신의 육아·교육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전국을 돌아다니며 후배 엄마들에게 육아 상담과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저서 <푸름이 엄마의 육아 메시지>에 이어 6년 만에 두 번째 책 <엄마 마음>을 펴냈다. 육아에 지치고 삶이 고단한 엄마들의 마음을 토닥여주는 따뜻한 메시지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푸름이가 어떻게 컸는지 궁금해해요. 정확히 말하자면 명문대를 갔는지 여부를요. 외국에서 대학을 다닌다고 하면 하버드나 MIT 같은 곳에 다니느냐고 묻는데 일본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하면 의외라는 반응이에요.”

올해 23세가 된 푸름이는 여섯 살 때 우연한 기회에 영재검사를 받고 영재 판정을 받았다. 수많은 매스컴에서 앞 다투어 푸름이 부모의 교육법을 취재했고 많은 사람들이 영재 아들을 둔 그녀를 부러워했다. 물론 그녀도 사람인지라 자꾸만 욕심이 생기려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외부의 지나친 관심에서 아이를 보호하는 게 우선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눈이 있어서 저 역시 그 압박을 견디기 쉽지 않았어요. 제 남편은 ‘푸름이가 서울대에 못 가면 한국을 떠나야 하는 거 아냐?’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정작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아이를 묵묵히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일밖에 없더라고요.”
처음부터 아이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기는 쉽지 않았다. 아이가 영재라고 인정받으니 어깨가 으쓱해지고 욕심도 좀 생겼던 게 사실. 하지만 육아는 부모의 뜻대로 풀리는 일이 드문 법이다. 
푸름이는 학교 공부를 싫어했고 학교 가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학원에 가고 과외를 받는데, 푸름이는 성적과는 관계없는 과학, 군사학, 심리학 같은 학문에 깊이 빠져버린 것.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한 아이라 엄마가 개입할 여지를 아예 주지 않았다. 내 자식인데, 엄마로서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아이의 자기 주관이 너무 뚜렷해서 때로 감당하기가 버거울 정도. 그러한 시간을 보내고 얻은 결론은 아이를 인정하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마음을 완전히 비우니 다른 사람의 시선쯤은 무시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지금도 그녀는 후배 엄마들에게 그때 아이와 ‘맞서지’ 않은 게 천만 번 잘한 일 같다고 이야기한다. 부모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아이는 없다는 걸 온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아이가 영재 판정을 받은 부모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영재 자녀를 둔 것을 부러워하거나 질시하는 주변의 시선은 부모에게 ‘명문대를 보내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하고, 결국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보다 성적에만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유독 영재들이 살아남지 못하는 이유도 부모가 지나치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아이를 ‘푸시’하는 탓. 지성은 15~20년을 앞서 갈 수 있더라도 정서는 제 나이에 맞게끔 발달한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 그녀는 그것이 ‘진짜 영재’를 키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성향 다른 형제자매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신영일 씨에게는 올해 21살인 둘째 아들 초록이가 있다. 큰아들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사람들은 자연스레 작은아들에게도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두 아들은 한배에서 나온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달랐다. 푸름이가 쉽게 한글을 깨치다 보니 엄마로서 자신감이 생겨 똑같은 방법으로 초록이에게 시도했지만 영 통하지 않았다. 
첫째 푸름이는 책 읽는 것은 좋아하고 머리는 좋지만 행동은 얼마나 느리고 굼뜬지 무슨 일이든 한참이 걸렸다. 초록이는 정반대. 엄마보다 먼저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준비물도 잠들기 전에 직접 다 챙겼다. 
책 읽는 성향도 달랐다. 첫째는 백과사전과 과학책을 좋아하는 반면, 둘째는 동화책과 만화책만 봤다. 아이를 둘 키우는 데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달랑 두 명인데도 때로는 돋보이는 재능 때문에, 때로는 엄마와 취향이 맞아서 관심이 한 아이에게 집중되곤 했다. 그녀도 실감했던 일이지만 두 아이를 공평하게 키운다는 것은 어려운 숙제다. 
한 가지만 명심하자. 부모가 실망하면 아이는 절망한다. 부모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부모가 노골적으로 형제를 비교하지 않아도 아이는 다 알고 있다. 엄마가 ‘온 힘을 다해’ 아이들을 비교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엄마 내면의 ‘상처받은 아이’를 마주하라

고집부리며 떼쓸 때, 차려놓은 밥을 안 먹을 때, 방금 청소한 방을 장난감으로 잔뜩 어지를 때 등등 아이가 엄마를 미치게 하는 지점이 꼭 한 가지쯤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가 엄마를 미치게 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어릴 때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아이가 건드려서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저는 푸름이가 울 때 너무 화가 났어요. 아이니까 우는 게 당연한데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한참 지나 생각해보니, 제가 어린 시절 울 때마다 부모한테 공감받지 못했기 때문이더라고요. 어릴 적에 울면 시끄럽다고 혼나고 뚝 그치라고 위협도 당했고 실제로도 무서워서 울음을 그쳤어요. 그런데 내 아이가 울다가 그치지 않으면 화가 치밀어 올랐던 거죠.”
신영일 씨는 강연장에서 만나는 엄마들에게 자기 내면의 슬픔과 화가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되돌아보라고 주문한다. 아이나 주변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할 때 화를 내는 것은 어릴 때 무의식적으로 상처받은 지점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자각만 해도, 아이에게 반복해서 상처를 주는 횟수가 줄어든다는 게 그녀의 설명.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린 시절의 나와 내 부모의 관계나 경험이 투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제 교육전문가로도 유명한 남편 최희수 씨는 아내가 아이들에게 반찬을 잘해 주면 아주 좋아한단다. 어릴 적에 배불리 먹지 못했던 상처와 결핍을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자녀의 관계 속에서 채우려 하는 것이다.
아이가 밥을 먹지 않을 때 화가 나고 힘들어하는 엄마들은 대부분 어릴 시절 밥을 안 먹어서 부모에게 혼난 경험이 있거나 부모가 바빠서 어릴 때부터 직접 밥상을 차렸던 경우가 많다. “나는 어릴 때 밥도 직접 해 먹었는데, 너는 차려주는 밥도 못 먹니?” 이렇게 어릴 때 받은 상처가 자신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아이가 엄마의 상처받은 지점을 건드리면, 제아무리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라 해도 화가 나고 미워지는 것. 만약 아이가 굼뜨고 느리고 꿈지럭거려서 화가 난다면 ‘내 부모님이 나를 이런 눈으로 바라봤겠구나. 내가 어려서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꾸물댄다고 혼이 났구나. 부모님이 나를 바라보았던 그 눈으로 내가 아이를 바라보고 있구나. 아이를 키우면서 기다리는 것이 그래서 힘들었구나’라고 생각해볼 것. 흥분된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육아가 힘든 게 아니라 아이를 키우면서 상처받은 내면의 나와 만나는 게 힘들어요. 상처가 많은 부모일수록 아이를 키우는 게 더욱 힘들게 마련이죠. 자식은 내 안에 상처받은 ‘내면 아이’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선생님이에요. 아이 때문에 아프고 힘들지만 그것을 계기로 마주한 내 안의 ‘내면 아이’를 달래고 위로하면서 한 뼘씩 자라는 거죠. 아이 키우며 부모도 함께 자란다는 게 그런 의미예요.”
육아우울증을 호소하는 엄마들에게 그녀는 ‘시원하게 한번 울어버리라’고 조언한다. 슬픔은 상처를 치유하는 감정이고, 화는 자신을 지키는 감정이다. 화가 쌓이면 분노가 되고, 분노를 억압하면 몸이 상하게 된다. 그럴 바에는 하루쯤 날 잡아 실컷 울거나 공원을 산책하거나 권투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이라도 쳐서 내면에 쌓인 분노와 화를 털어버리는 게 낫다.
“지난 2월 초록이와 함께 일본에서 대학 다니는 푸름이를 만나고 왔어요. 그런데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초록이가 일본에서 형과 헤어질 때 엄청 슬펐다는 거예요. 그래서 울었냐니까 참았다고 하더군요.”
순간 아이들을 키우면서 슬픔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라고 가르치지는 못했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이가 운다고 혼내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감정을 위로하거나 진심으로 받아주지 못했던 셈이다. 그제야 아이에게 “슬플 때 우는 건 당연하고 건강한 거야. 울 일이 있을 때는 실컷 울어야 하는 거야”라고 말해줬단다. 


육아서를 읽은 엄마들은 아이가 울 때는 공감해줘야 한다는 글을 읽고 억지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괜찮아?’라고 말하지만, 정작 속으로는 ‘너무 힘들어. 그만 좀 울어!’라고 외친다. 입은 친절해도 몸은 아이를 밀어내기 바쁜 것. 놀랍게도 아이들은 엄마의 ‘이중 메시지’를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또한 이런 감정은 언젠가는 폭발하게 돼 있다. 엄마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목소리만 부드럽게 한다고 해서 아이를 배려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아이에게 무조건 긍정적이고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해보자. 의외로 아이들은 엄마의 감정을 왜곡 없이 잘 받아들이고 오히려 힘들어하는 엄마를 위로해준다.
모든 엄마들이 느끼는 육아의 무게는 동일하지 않다. 재미있게 수월하게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힘들기만 한 엄마도 있다. 엄마와 아이의 기질과 궁합, 성장 환경 등이 다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아이 키우는 게 힘들다고 자신의 모성을 의심하거나 아이를 원망하지 말 것. 

엄마라는 이름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지만, 어찌 보면 가장 고통스러운 이름인 까닭이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엄마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그렇게 쌓인 화와 분노를 적절히 풀어야만 다시 아이와 마주할 건강한 에너지가 채워진다. 결국 육아란 아이를 통해 내 마음을 치유하고 나를 사랑하는 과정이다.

Profile 신영일
1964년생. 초등학교 3학년 때 탁구를 시작해 10년 넘게 탁구선수로 활동하다가 결혼한 뒤 푸름·초록 두 아들을 낳았다. 8세 나이로 영재 판정을 받은 큰아들 푸름이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되면서 그녀의 교육·육아법을 궁금해하는 엄마들을 요청으로 ‘푸름이닷컴’을 시작해 15년간 운영해오고 있다. <푸름이 이렇게 영재로 키웠다>, <푸름이 엄마의 육아 메시지> 등의 책을 썼다.




초록이를 등에 업고 푸름이 손을 잡고 걸어갈 때면
어른들은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아이고, 힘들겠다. 그래도 그때가 가장 행복한 거야.”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빨리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으니까요.
그러나 지나고 나니 그 시간들은 다시 오지 않을 행복한 추억이었네요.
기억하세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때라는 것을요.

두 아이를 키우면서 부족했다 싶은 점이 있다면
‘아이가 무엇을 잘하든 못하든 더 특별하고
고귀한 존재로 바라볼걸’ 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아이만 바라보세요.
다른 아이와 비교하기 시작하면 엄마도 아이도 불행해집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내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세요.
부모의 믿음이라는 나침반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아이는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알고 있답니다.


<엄마 마음>(신영일 저, 푸른육아) 중에서
 

자신의 이름보다 ‘푸름이 엄마’로 더 잘 알려진 신영일 씨는 아이를 영재로 키운 비법을 묻는 엄마들의 질문에 ‘기다림과 인내’라고 답한다. 10년 넘게 강연하고 엄마들과 상담하면서 그녀가 느꼈던 육아의 핵심 또한 바로 그것이다.

Credit Info

기획
한보미 기자
사진
이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