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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시형의 생각

애착 육아 대신 ‘엄마 중심’ 육아가 필요하다

자연주의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멘토 중 한 명인 이시형 박사. 그는 ‘지나친 애착 중심의 양육’이 아이와 엄마 누구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육아의 속도를 아이에게만 맞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와 행복한 육아를 위한 조건.


여든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발한 연구와 강연, 저술 활동을 펼치는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 일반인에게 어렵게만 느껴지는 ‘뇌과학’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 세대를 초월해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박사는 최근 어린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을 위한 육아서 <아이의 자기조절력>을 펴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부모들의 지나친 애착 중심 양육을 경계하고 뇌과학에 근거해 새로운 양육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
“빠르게 변화하고 변수가 많은 요즘 같은 시대에 아이를 어떤 직업인으로 키울까 깊이 고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떤 시대가 오든 아이들을 건강하게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 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실패나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복구력,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는 유연성, 어떤 일에도 적응할 수 있는 융통성을 지닌 사람으로 키워야 하는 거죠. 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게 바로 ‘자기조절력’입니다.” 

미국에서 극심한 교실붕괴 상황과 이에 따른 사회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30여 년에 걸쳐 첨단과학 연구를 진행한 결과 수많은 학자들이 찾아낸 결론은 아이들의 취약한 ‘자기감정 조절력’이 원인이라는 것. 
자기조절력이 제대로 생기려면 적어도 세 돌이 되기까지 뇌의 전전두엽, 특히 안와전두피질이 발달되어 감각, 감정, 이성 간의 제대로 된 연결 회로가 완성돼야 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것이 바로 부모의 ‘맹목적인 사랑’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아이를 야단치거나 종아리를 때려서라도 아이를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게 대다수 부모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이의 뜻을 받아주고 격의 없이 친구처럼 지내는 부모가 이상적으로 여겨지게 됐다. 
렇게 부모의 끊임없는 인내와 친절로 아이를 받아주는 가정이 늘다 보니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키운다는 좋은 취지는 사라지고, 아이들의 참을성 없고 제멋대로인 행동까지 허용하는 모양새가 되고 만 것. 이렇게 자라 성인이 된 아이들은 자기 위주로만 돌아가지 않는 바깥 세상에 상처입고, 부모가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알아서 할 줄 아는 게 없어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박사는 이런 맹목적인 애착 중심의 육아법에 단호히 반대한다. 아이를 왕으로 받들어 키우면 아이는 자기조절력을 배울 수 없으며, 모든 걸 아이에게 맞춰야 하는 부모 또한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육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애착육아 중 대표적인 것이 어떤 경우라도 아이를 울려서는 안 된다는 이론이에요. 아이와 부모의 애착 형성이 잘 안 되었을 때의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 부모를 겁주죠. 
부모는 혹여 자신의 잘못으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까 공포에 휩싸여 아이가 울 때마다 부리나케 달려가 안아줘요. 아이가 요구하는 걸 다 들어줘서 아예 울고 떼쓰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렇게 되면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나 감정을 되짚어볼 기회가 없이 ‘울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을 갖기 쉬워요. 결국 ‘자기조절력’이 미숙한 아이가 되고 말죠.”

육아가 ‘감정노동’이 되는 현실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칭찬, 애정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눈물과 상처, 결핍과 좌절도 필요하다. 하지만 요즘 엄마들은 아이가 겪어야 할 ‘시련 기회’를 빼앗고 한쪽으로 치우친 사랑을 쏟는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엄청난 인내와 에너지가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아이가 울까봐 겁을 내고 아이 뒤만 졸졸 쫓아다니다 보면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라 해도 사람인 이상 당연히 힘들고 짜증이 난다. 어떤 엄마는 이렇게 아이 눈치만 살피는 자신을 가리켜 ‘육아 노예’라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대가족 속에서 함께 아이를 키우던 과거에는 부모의 육아 스트레스가 적었다. 하지만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하는 요즘의 부모들은 각박한 일상에 치여 아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마주할 여유가 없고, 그 죄책감을 무마하기 위해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거나 아이에게 집착하게 된다.
백화점의 점원이나 스튜어디스, 고객센터 직원들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흔히 ‘감정노동자’라고 말한다. 이들은 상냥한 목소리와 겸손한 자세로 손님을 맞이한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이런 웃음과 상냥한 태도가 즐겁지만, 그들은 자신의 본성을 누르고 숨겨가며 항상 미소를 지어야 하는 감정노동을 매일 되풀이한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들의 스트레스는 실로 엄청나다고. 이 박사는 혹시 지금 나와 아이의 관계가 이렇지는 않은지 찬찬히 되짚어보라고 조언한다. 아이를 울리지 않고 상냥한 말을 건네고 꾸짖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이 지금 엄마를 ‘감정노동’ 하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들이 육아를 힘겨워하는 이유는 또 있다. 아이 키우는 모습을 본 경험이 없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육아의 롤모델이 없는 것이다. 예전 엄마들은 육아에 대해 궁금한 것이 생기면 집안이나 주위 어른들에게 물었다. 어른들의 따뜻한 조언은 엄마들의 불안감을 덜어주고 때로 위로가 됐다. 
하지만 요즘 엄마들은 아이가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곧바로 병원부터 찾는다. 물어도 답해줄 사람이 주변에 없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육아의 문제가 크든 작든 늘 불안하다. 
육아서와 인터넷에 대한 지나친 의존 또한 엄마들의 불안감을 부채질하는 요인. 육아서는 아이의 개성이나 기질, 체질을 고려하지 않고 ‘평균 아이들’을 기준으로 쓰인 책이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우리 아이가 그 기준에서 벗어난다 싶으면 곧바로 불안해하고 자신을 안심시켜줄 다른 기준이나 주장을 찾으려고 다시 육아서와 인터넷을 뒤지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불안감이 큰 엄마일수록 아이의 ‘선행학습’에 집착하는 경향이 뚜렷해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조기교육 풍토 때문에 혹시라도 내 아이가 뒤쳐질까 두려운 거죠. 우리말도 못하는 어린애한테 영어를 시키는 엄마들도 있더군요. 
문제는 이런다고 불안감이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커진다는 거예요. 더 높은 수준의 선행학습을 받는 아이들을 계속 만나게 되니까요. 이런 엄마의 불안감이 아이에게 전염되어 아이까지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거죠.”

엄마와 아빠, 육아의 균형이 필요한 이유
요즘은 ‘딸바보’, ‘아들바보’ 아빠들이 대세다. 아빠라면 항상 바쁘고 근엄한 모습을 떠올렸던 과거에 비해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아빠들이 늘고 있는 것은 엄마의 어깨를 짓누르던 육아의 무게를 다소나마 줄여준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아빠 역시 ‘친절한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 조금은 걱정된단다.
“엄마가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건 맞아요. 당연히 아빠도 참여해야죠. 하지만 요즘 부모들을 보면 ‘엄마만 2명’인 것 같아요. 엄마와 아빠는 어느 정도의 역할 분담이 필요한데 둘 다 눈에 보이는 친절한 사랑만 베풀려고 해요.”
이 박사는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야구팀의 감독과 코치로 비유한다. 감독과 코치는 둘 다 야구 전문가지만 그 역할이 다르다. 코치는 선수의 숨소리 하나, 몸놀림 하나까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조언을, 때론 잔소리를 하면서 선수와 밀접한 스킨십을 가진다. 그라운드에 직접 나가 선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격려하는 역할 또한 코치의 몫이다. 
반면에 감독은 벤치에 앉아 경기 전체의 흐름을 읽는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벤치를 떠나는 일도 없다. 경기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고 코치와 상의해 중요한 일을 결정한다. 성적이 좋은 야구팀일수록 코치와 감독의 궁합이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를 육아에 적용해보면 야구 코치만 2명이 있고 정작 감독이 없다는 얘기. 부모 중 한쪽이 아이를 감싸고 위로하고 챙겨주는 역할이라면, 다른 부모는 아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아이가 엇나갈 때 따끔하게 야단도 치는 악역을 맡아야 하는데 지금의 부모들은 이런 역할 분담이 모호하다. 
반드시 엄마가 코치를, 아빠가 감독을 맡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엄마와 아빠가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이 박사는 엄마가 행복한 육아를 위해 ‘대범해질 것’을 주문한다. 불확실한 세상, 하나 혹은 둘밖에 안 되는 아이들이 잘못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걱정일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걱정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게 없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좇을수록 엄마 눈에는 위험한 것들만 더 많이 보인다. 이럴 때는 일부러라도 ‘대범하게’ 아이를 대하려고 노력해보자. 아이가 넘어지면 “괜찮아? 안 아파? 병원 안 가도 될까? 그러게 조심하랬잖아” 같은 폭풍 잔소리 대신, 무릎에 뭍은 흙을 툭툭 털어주며 그저 ‘안 다쳤으면 됐어!’라고 말하는 거다. 
끼니 때 밥투정 부리느라 밥을 안 먹어 배가 고프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간식을 만들어 주는 대신, “지금 엄마도 할 일이 있어. 밥을 안 먹은 건 네 선택이니 저녁 먹을 때까지 기다려”라고 말하자. 
사실 엄마도 귀찮고 해야 할 일도 집안일도 산더미이지 않은가. 엄마의 모든 시간과 신경을 육아에만 쏟지 말자. 아이는 울 수도, 상처받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 그게 꼭 나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임을 이해하는 것. 이 두 가지 마음가짐만으로도 육아는 한결 가볍고 즐거워진다. 

“우울한 생각이 들 때는 집에 있지 말고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세요. 아직 걷지 못하는 아이라면 유모차를 태워서요. 온종일 아이와 둘이 집에 있으면 아무리 에너지 넘치는 엄마라도 우울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하루 5분, 10분이라도 가까운 공원, 여건이 안 된다면 아파트 단지라도 산책하면서 볕을 쬐고 바람을 쐬고 푸른 하늘과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 한결 기분이 나아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자연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거든요.”
무조건 아이에게 맞춰주는 것이 육아의 정답은 아니다. 지금까지 아이의 감정과 리듬에 모든 것을 맡겼다면 이제는 절반쯤 ‘나에게로’되찾아 오자. 아이를 행복하게 하려면 엄마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좋을 게 없다. 
육아란 너무 빨리, 또 늦지도 않게 엄마와 아이의 속도를 맞춰나란히 걸어야 하는 여정임을 잊지 말자. 중요한 것은 아이의 행복만이 아닌 ‘우리’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다.

이시형 박사가 제안하는 ‘세로토닌’육아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엄마가 먼저 편안한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 이시형 박사는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행복한 부모가 되려면 ‘세로토닌’과 친한 엄마가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세로토닌 호르몬은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시키는 신경물질로 온화한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엄마의 세로토닌 활성화를 위한 생활 노하우.

숲과 공원에 나가라 
자연 속에서는 누구라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편안함과 안식을 주는 동시에 오감이 활짝 열린다. 푸르른 산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숲에 가기 어렵다면 가까운 공원도 괜찮다. 엄마 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자연을 경험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요즘 아이들은 ‘감동하는 법’을 모른다. 달, 해, 노을이 아름답다는 정서가 없다. 미디어의 재미있는 것, 자극적인 것에만 길들여져 차분하게 자연을 감상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자연 안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오감은 발달하고 우뇌가 깨어난다.

아이와 함께 걷는다 
집에 있기 갑갑할 때, 울적한 생각이 들 때는 유모차를 끌고 나가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자. 적절한 워킹과 일광욕은 세로토닌 분비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걷기가 가능한 아이라면 손을 잡고 함께 걸어보자. 유치원 버스로, 승용차로, 유모차로 이동하는 게 당연한 요즘 아이들은 걸을 기회조차도 충분치 않다. 가장 이상적인 걷기 시간은 30분이지만 5분만 제대로 걸어도 세로토닌이 분비되며 기분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심호흡을 하라 
요즘 엄마들은 깊은 숨을 쉴 여유조차 없다. 육아로 인해 짜증이 솟구칠 때는 깊은 심호흡을 한번 해보자. 배 속까지 깊게 복식호흡을 하는 게 포인트. 얇은 호흡으로는 세로토닌이 분비되지 않는다. 깊은 호흡이 신경을 가라앉히며 엄마가 이성을 찾고 마음을 다잡는데 도움을 준다.

아이와 스킨십한다 
세로토닌 신경을 활성화 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는 스킨십이다. 부모가 많이 안아준 아이일수록 단단한 정서적 안정감을 갖게 되는 건 잘 알려진 사실. 엄마라면 누구나 아이를 안고 있거나 볼을 부빌 때 마음이 차분해지고 가슴이 벅찬 감정을 느낀다. 육아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일부러라도 아이를 꼭 안아주자. 

자연주의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멘토 중 한 명인 이시형 박사. 그는 ‘지나친 애착 중심의 양육’이 아이와 엄마 누구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육아의 속도를 아이에게만 맞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와 행복한 육아를 위한 조건.

Credit Info

기획
한보미 기자
사진
이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