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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건축 위를 걷다

On March 30, 2013

괴테는 건축을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했다. 시적인 표현이고 멋지지만 피상적이다. 얼어붙은 음악은 연속성이 없다. 맥락이 사라지면 시간도 사라진다. 주제도 형식도 리듬도 사라진다. 어떤 의미에서 건축은 그 나름의 걸음을 걷고 있다. 그래서 모든 예술 작품이 그렇듯 건축물도 걷는 자를 위한 것이다. 이달 <아레나>는 최근 3~4년 사이에 완공된 훌륭한 건축물들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걷고 생각했다. 봄의 빛이 미소 같았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겨울의 찬 공기가 채 가시지 않은 잔디 위에 군더더기 없는 백색 건축물이 세워져 있다. 넓은 통창 안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세상에 하나뿐인 듯한 여유를 한가득 안고 유유히 차를 마셨다. 대체로 건축물을 상상할 때 곡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건물은 다만 면과 선이 만나 수직 구조로 탄생한 공간이다. 그런데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다르다. 곳곳에 보이는 우아한 곡선을 시선이 따르다 보면 눈동자가 춤을 춘다. 그러는 동안 밖에서 바라보던 타인의 여유가 보는 이에게도 전달된다. 건축물 이상의 건축물을 만들어낼 때 건축가는 위대한 존재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위대한 주인공은 포르투갈의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로 시자다.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다양한 공간을 하나의 덩어리에 담아 설계했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1층과 3층은 전시장으로 사용하며, 2층은 사무 공간으로 활용한다. 전시 관람료 5천원을 내면 통창 안으로 보였던 카페에서 커피도 공짜로 마실 수 있다. 그러다 지루하면 한쪽에 전시한 책을 읽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움베르토 에코, 파트리크 쥐스킨트… 이 정도면 감이 오나? 전시는 물론, 책도 보고, 커피까지 마실 수 있는 환상적인 공간은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만들었다. WORDs 유성미(프리랜서)

완공  2009년 7월    건축가  알바로 시자
위치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 북시티

 

숭실대 학생회관
숭실대 학생회관은 드러내지 않고 드러난다. 보지 않으면 놓친다. 이 건물은 색을 칠하지 않은 콘크리트, 이른바 ‘노출 콘크리트’로 지었다. 숭실대 축구부가 사용하는 운동장의 절반을 ‘ㄱ’ 모양으로 감싸며 지하를 포함하면 7층 건물이다. 한두 장의 사진으로 포섭할 수 없는 규모지만 크거나 높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포근한 느낌을 받는다.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빛 천지다. 노출 콘크리트가 아닌 벽은 모두 창이다. 학생회관의 상징과 용도를 감안할 때 이 건물이 가슴을 활짝 열고 있다는 건 의미 있다. 동아리방, 학생식당도 모두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유리벽을 세웠다. 다시 밖으로 나와서 축구부 학생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관중석에 서서 바라보면 ‘ㄱ’의 한 면이 온전히 보인다. 단단하게 앉아 있는 것 같다. 바탕이 탄탄한 건물 같다고 할까. 대학에 가는 건 저렇게 되기 위해서겠지. 그리고 발 딛고 있는 그곳에 반전이 있다. 관중석이 이 건물의 천장이고 옥상이다. 넓은 천장이고 넓은 옥상이다. 5층 건물의 꼭대기인 셈인데 계단을 한참 올라오지 않았다. 마법인가? 만약 가서 본다면 세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마법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 큰 건물이 어떻게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전의 건물을 허물었을 때 나온 돌들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보면 볼 수 있고, 보면 감동적이다. 2012년 숭실대 학생회관은 ‘서울특별시 건축상’ 대상으로 선정됐다. words 이우성
완공  2011년 12월   건축가  최완규   위치  서울시 동작구 상도로 369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어린이대공원 입구에 들어서서 10미터쯤 걸어가면 멀리 꿈마루 건물이 보인다. 꿈마루에 가까워졌을 때 눈물이 났다. 건축가 조성룡에 대해선 근래 지인을 통해 들었다. 그가 동참해 지은 선유도공원과 이응노 생가 기념관을 다녀왔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훌륭한 건축가다. 꿈마루는 흥미로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어린이대공원은 과거에 마지막 조선 왕 순종의 비인 순명왕후 민씨의 능을 모신 공간이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6년 능은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일본인 관리와 사업가들을 위한 골프장으로 바뀌었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이곳을 어린이를 위한 공원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꿈마루 터는 골프장 이용객을 위한 편의 공간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꿈마루는 1세대 건축가 나상진이 설계했다. 수평으로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과감하게 느껴진다. ‘한국 건축 1백 년’에 선정되기도 했다. 조성룡은 이 오래된 건물을 ‘재생’했다. 40여 년의 시간과 역사를 살아낸 콘크리트와 나무, 기둥을 그대로 두었다. 새 건물을 짓기 위해 애쓰는 대신 건물을 보존하되 어린이대공원의 빛과 하늘과 공기를 건물 안으로 끌어오려고 애썼다. 꿈마루 안에는 뿌리가 깊게 박힌 나무들이 있다. 꿈마루는 들어오고 나가는 문이 따로 없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나무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 밑에 새똥이 난장이다. 새가 그림이 진짜 나무인 줄 알고 날아왔다가 투척하고 간 것이다. 새에게도 이곳은 건물의 안이 아니라, 연장된 하늘이다. 감동이 없으면 건축이 없다. 건물만이 있다. words 이우성
완공  2011년 4월  건축가  조성룡   위치  서울시 광진구 능동 18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일본 위안부 사건을 알리기 위해 만든 박물관이다. 2004년 건립위원회를 발족했는데 개관까지 8년이 걸렸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개인과 단체를 비롯해 일본인을 포함한 8천여 명의 후원자가 있는 반면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독립공원 내 설립을 반대하는 단체도 있었으니까. 도대체 왜? 사람의 마음이 다 같을 수는 없지만 이건 마음의 문제가 아니다. 양심이라는 외침이 과연 무리한 바람일까? 결국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애초 서울시가 기부한 서대문독립공원 내 매점 터에서 마포구 성산동의 성미산 아래로 부지가 바뀌었다. 서울시가 기부를 철회하는 바람에 부지를 매입해야 했다. 이 박물관은 무려 10년간의 모금으로 기획되었는데 결국 돈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좁은 골목에 위치한 건물을 보는 순간 마음이 숙연해졌다. 상처나 위로 같은 표현을 감히 써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입구는 좁은 문이다. 그리고 어둡다. 관람객은 언젠가의 어린 소녀들처럼 암흑 속을 걷는 기분을 느낀다. 이 건물은 검은 벽돌을 한 장 한 장 촘촘히 쌓아 올려 지었다. 4만5천 장의 벽돌을 하나씩 살피며 상처를 헤아리겠다는 의미다. 위안부들이 생활했던 방을 재현한 지하 1층의 좁은 골방을 대면할 땐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최고조에 이른다. 부부 건축가 전숙희와 장영철은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 치유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부부는 2012년 ‘서울특별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WORDs 유성미(프리랜서)
완공  2012년   건축가  전숙희, 장여철   위치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아래

 

폴라리온 스퀘어
폴라리온 스퀘어는 어릴 적 상상했던 21세기 건축물처럼 보인다. 물론, 21세기인 현실에선 자동차가 날아다니지 않지만 동심 어린 어렴풋한 상상력을 다시 발동시키는 구조랄까. 들쑥날쑥 알 수 없는 형태의 기이한 구조물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와 함께 평화로운 주민공원이 보이고, 양쪽 건물의 중심에서 고개를 들면 두 개 동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천장이 하늘을 가로막는다. 이 범상치 않은 건축물은 다리 역시 그냥 연결하진 않았다. 빛이 스며들도록 S자 모양으로 구멍을 냈으니까. ‘저 위에 무엇이 있는 걸까?’ 혹자는 폴라리스 스퀘어를 두고 트랜스포머를 연상한다. 하지만 로보트 태권브이의 본부를 재해석한다면 지금의 폴라리스 스퀘어가 되지 않을까? 호기심에 건물 내부로 들어가니 상상력은 더욱 발휘된다. 내부는 밝은 형광등 대신 은은한 조명등을 택했다. 노출 콘크리트는 조명이 드리워진 실내에서 그 매력을 더없이 발산했다. 아니나 다를까. 폴라리스 스퀘어는 특수조명회사 ‘폴라리온’이 사옥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었다. 애초에 이렇게 범상치 않은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평범하지 않은 건물을 원했던 건축주의 의견도 한몫했다. 건축가 김창길은 그의 의견에 힘을 얻었고, 결국 폴라리온 스퀘어는 2011년 대한민국 토목ㆍ건축 기술대상 업무용부문 우수상,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업무용부문 우수상, 제17회 경기도 건축문화상 대상을 수상했다. WORDs 유성미(프리랜서)
완공  2011년 4월   건축가  김창길   
위치  경기도 화성시 반월동 717-4

 

윤동주문학관
2009년 청운동 수도가압장이 문을 닫았다. 그런데 종로구가, 그러니까 공무원들이 믿기 힘든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다. 전임 서울시장의 건물 때려 부수기 정책의 반작용일까? 종로구는 청운동 수도가압장을 ‘리모델링’해 윤동주문학관을 짓기로 마음먹는다. 수도가압장은 인왕산이 감싸고 있고, 윤동주는 자주 이 건물의 뒷길을 따라 인왕산에 올랐다고 한다. 시심이 넘치던 문학도는 넓고 먼 세계를 내려다보며 시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수도가압장을 윤동주문학관으로 개조한다. 커다란 물탱크가 두 개 있었고, 그 물탱크는 여전히 있다. 물탱크 하나는 영상 전시실로 바뀌었다. 들어가서 앉으면 조금 무섭다. 원래는 물이 꽉 차 있던 곳이니까. 윤동주의 생애를 다룬 영상이 상영되는데 마치 물이 흐르는 것 같다. 다른 물탱크는 천장을 뚫어 하늘로 열었다. 그곳은 정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상의 정원과 하늘의 정원이 다 있는 셈이다. 밤에 올려다보며 별을 세어도 멋질 것 같다. 그 시간엔 문을 닫겠지만. 두 개의 물탱크 벽에는 물 자국이 남아 있다. 시간의 역사를 지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윤동주문학관은 예술 작품이다. 굳이 나누자면 제1전시실은 지상 1층이고, 제3전시실은 지하 1층이다. 하지만 하늘로 열린 곳에 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외부 벽은 원래 수도가압장의 벽처럼 하얗게 했다. 주민에겐 늘 있던 건물이 여전히 있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윤동주처럼 건물 뒤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마음이 맑아진다. 서울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윤동주가 살아서 다시 온다면 고마워했을 거다. 여성 건축가 이소진이 설계했다.
words 이우성
완공  2011년 9월   건축가  이소진   위치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3-100

 

 

 

괴테는 건축을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했다. 시적인 표현이고 멋지지만 피상적이다. 얼어붙은 음악은 연속성이 없다. 맥락이 사라지면 시간도 사라진다. 주제도 형식도 리듬도 사라진다. 어떤 의미에서 건축은 그 나름의 걸음을 걷고 있다. 그래서 모든 예술 작품이 그렇듯 건축물도 걷는 자를 위한 것이다. 이달 <아레나>는 최근 3~4년 사이에 완공된 훌륭한 건축물들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걷고 생각했다. 봄의 빛이 미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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