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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는 남자들의 로망

On January 28, 2013

왜 예쁜 여자들은 착하기까지 한 걸까? 정유미를 만나고 오는 길에 고민했다.




착한 여자가 좋다. 너무 순진해서 멍청한 여자가 아니라 내 고민을 경청해주는 여자가 좋다. 그러니까 우리가 함께 술 마실 때, 뻔하고 지루한 고민을 털어놓아도 이해해주는 여자. 깊고 검은 눈동자로 내가 뱉는 단어 하나하나를 삼켜줄 수 있는 여자가 좋다. 영원히 내 편일 것 같아서다. 또 이런 여자도 좋다. 처음부터 살갑기보다 낯설어할 줄 아는 여자. 오래 만날수록 정다워지는 여자.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쉽게 가버리지 않을 것 같다. 믿을 수 있어서 좋다. 비싼 선물을 부담스러워하는 여자가 좋다. 돈과 가방보다 나를 더 좋아해줬으면 한다. 나는 그런 것들보다 더 소중하니까. 얌전한 고양이를 닮은 여자가 좋다. 군살 없는 몸이 유연하게 휘는 여자. 요염한 자태로 귀엽게 대답하는 여자. 신비로워서 지루하지 않다. 세상에 이런 여자는 흔치 않다. 희귀해서 만날 기회조차 적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여자와 같은 소파에 앉아서 한 시간 동안 대화를 했다. 그녀는 빨대로 물을 마시며 동그란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내가 질문하기만을 기다리면서.

정유미는 남자들의 로망이다.
거짓말.
정말이다. 내 주변 남자들이 정유미는 귀여워서 좋다더라. 동의하나?
<천일의 약속> 때문에 좋아해준다. 맡은 역할이 부잣집 딸에 남자한테 헌신하고, 애교도 있고, 착하니까. 그 이미지를 좋아해주는 것 같다.
그 역할은 남자들의 이상형이었다. 현실에선 여자들이 남자에게 돈도 많아야 하고, 좋은 차, 영화에나 나올 법한 매너를 요구한다. 요즘은 그런 여자들이 보통 여자다. 정유미의 이미지는 현실에 없는 여자다. 실제로도 그럴까?
실제로? 좀 그런 편이다. 요즘 여자들과 다르다는 소리는 종종 듣는다. 주변 사람들이 편하다고 얘기해준다. 친해지기까지 오래 걸리지만, 술자리에서도 잘 빼지 않고 분위기를 잘 맞춘다. 전형적인 여배우의 이미지는 아니지. 그래서 주변 남자 동료들, 연기자들이 그렇게 말한다. 그런 면이 매력이라고. 근데 이건 대중이 모르는 내 모습이다. 유별나지 않고, 편안해 보이는 것. 너무 연예인 같지 않아서 좋아해주는 것 같다.
완전 연예인 같은데? 내 주변엔 이렇게 생긴 사람 없다.
하하. 연애할 때도 그렇고 사람 만나는 것도 그렇고, 내가 좀 진득한 편이다.
웃는 모습만 봐서 그런지 당신은 화도 안 내고, 짜증도 안 낼 것 같다. 천사 같다는 말이지.
평소에 좋게 넘어가려는 편이다. 인생 뭐 있나? 근데 촬영할 때는 예민해져서 나도 모르게 짜증낼 때가 있다. 대신 고민을 잘 들어주는 타입이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카운슬러 같은 존재지. 그래서 예전에 심리 상담사가 되지 않겠냐는 말도 들었다.
남자들은 자기 얘기 잘 들어주는 여자를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연애를…, 밀당을 잘 못하겠다. 너무 어렵다.
의외로 밀당 좋아하는 남자 별로 없다. 여자들이 더 좋아하지.
그런가? 여자들이 밀당에 대한 강박관념이라도 있나? 근데 남자들은 여우 같은 여자를 더 좋아하잖아?
여우인 줄 모르니까 좋아하는 거겠지. 여우는 여우만 알아보니까.
그래, 연애하려면 여우가 돼야겠다.
어떻게 하면 여우가 될 수 있나?
먼저 연락하면 안 된다. 긴장감 조절을 잘해야 한다. 또 여우들은 원하는 걸 직접적으로 얘기 안 한다. 대신 뉘앙스를 풍기지. 하지만 나는 남한테 비싼 선물을 못 받는다. 부담스럽다. 그래서 연애를 잘 못하는 것 같다. 주변에 친구나 동료들, 사람은 많지만 연애가 시작될 것 같으면 겁부터 먹는다. 연애를 못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 누군가 갑자기 다가오면 주춤하고, 확 오면 무섭다.
요즘에는 감정 표현 안 하고, 소극적인 남자들도 많다. 혼자 끙끙거리는 남자들 말이다.
맞다. 그런 남자들이 마음은 있는 것 같은데 왜 말을 안 걸지? 이런 고민을 하게끔 유도한다. 근데 이것도 밀당이잖아? 나 연애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 같지 않나?
연애 안 한 지 오래되면 다들 연애박사처럼 굴더라.
정말로 주변에 애정 문제 때문에 상담해오는 친구들이 많다. 상담은 잘해주는데, 정작 내 밥그릇은 못 챙긴다.
남자들은 귀여운 여자는 마냥 귀엽기만을 바란다. 거친 면도 있고 우울할 때도 있는데, 그런 걸 다 부정한다. 왜 남자들은 한 가지만 보려 할까?

 “이런 옷을 입고, 메이크업도 하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솔직히 나라는 사람은
 누군가를 휘어잡지 못하는 소심한 인물이다. 그게 단점이다. 일을 더 잘하려면 내 의견도 
 주장해야 한다. 할 말은 해야지. 근데 마음을 강하게 못 먹어서 말을 못한다.”


사람은 희로애락이 있다. 솔직히 화가 날 때도 있지. 그럴 때는 차라리 안 좋은 모습을 먼저 보여줘 강한 인상을 남기고, 나중에 이면의 선한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이 달라 보인다. 나중에 보여준 좋은 면이 굉장히 부각되어 보이지.
그래도 여우 같은 사람들은 다 파악하고 있다. 앞에서만 모르는 척하는 거지.


연애 초반에는 서로 조심하게 된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시간이 지나 다른 모습들이 쌓이면 사람이 변했다는 둥, 알고 보니 이런 사람이었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가 중요한 거다. 연애가 지속되면, 서로 노력해서 맞춰가야 하는 부분이 많다. 첫 이미지만으로 한 번 사귀고, 원하는 이미지와 다르면 헤어지고. 요즘 연애는 그런 식으로 짧게 끝나는 것 같다. 나는 한 번 사귀면 오래가는 편이어서 누구를 만나는 것이 조심스럽다. 마음 여는 것 자체가 오래 걸린다. 상처받을까봐 경계하는 것도 있고.
TV에 나오는 정유미는 귀엽다. 순종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늘 화보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착해 보이지 않는 정유미. 촬영할 때 무슨 생각을 했나?
변신하는 건 재밌다. 내 단점이 부각될 순 있겠지만, 몰랐던 내 모습이 나오기도 하니까. 이런 옷을 입고, 메이크업도 하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솔직히 나라는 사람은 누군가를 휘어잡지 못하는 소심한 인물이다. 그게 단점이다. 일을 더 잘하려면 내 의견도 주장해야 한다. 할 말은 해야지. 근데 마음을 강하게 못 먹어서 말을 못한다.
일하다 보면, 연기자도 고집부려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본인이 더 답답하겠지.
답답하다. 마음속에 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나 분위기에만 맞춰간다. 물 흐르듯 묻어가는 성격인데 일할 때만큼은 별로인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렇게 태어난 걸.
신년이니까 나이 얘기나 하자. 언제까지나 정유미란 이름 앞에 ‘상큼’ ‘발랄’ ‘깜찍’이란 수식어가 붙을 수는 없을 텐데, 나이 먹는 게 무섭지 않나?
개의치 않는다. 데뷔한 지 꽤 됐는데, 지금까지 일해오면서 주변 반응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사소한 것에 희비가 엇갈리면, 스스로 힘들어질 것 같았다. 귀를 닫고 해야 할 일만 하자고 생각했다. 주변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데뷔 이래로 쉬지 않고 일했다. 일만 하면 취미를 잃고, 취미가 없으면 정체성도 흐릿해지지 않을까?
한동안 여유가 있었다. 근데 일을 안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일 때문에 여행도 밀어놨었는데, 막상 시간이 주어지니까 즐기지 못하겠더라. 괜히 마음만 조급해지고. 나를 비우는 여행이 필요하지만 이미 새해가 밝아버렸다. 올해는 무언가에 미칠 수 있는 취미를 갖자고 다짐했다. 가수 김현중 씨는 스킨스쿠버에 빠졌다더라고. 쉴 때 제주도 가서 놀고, 일할 때는 딱 돌아와서 일하고. 그게 멋있다. 쉴 때는 정신없이 무언가에 빠져서 즐기고 싶다.
그럼 연애하면 되겠네. 쉴 때만 불타는 연애를 하는 건 어떤가?
연애가 제일 좋은데, 그건 또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으니까. 혼자 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보고 있다. 미칠 정도로 무언가에 빠지고 싶다. 처음 당구 배우면 천장이 당구대로 보인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고 싶다. 그게 올해 과제다.
나를 잃어버렸다고 느낄 때면, 무언가를 읽고, 보는 게 도움이 된다. 그럼 작품 속에서 자신과 닮은 누군가를 발견하게 된다.


일을 해오면서 결과가 확실하게 나오지 않고, 주춤할 때마다 고민했다. 옛날부터 그랬다. 그만둬야 할까? 다른 길을 찾아야 되나? 의심하게 된다. 그럴 때 진짜 좋은 영화 한 편 보고 나면 무언가 얻은 것 같았다. 최근에는
<레 미제라블>이 그랬다.
<레 미제라블>의 어떤 장면에서 가장 많이 울었나?
에포닌이 마리우스 대신 총을 맞고, 짝사랑하는 마리우스 품에 안겨서 죽을 때. 행복해하는 모습이 가슴 아팠다. 마리우스의 마음은 코제트에게 가 있다는 걸 알지만, 그의 품에 안겨서 눈을 감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사랑해야 가능한 걸까? 에포닌의 마음이 너무 가여워서 계속 눈물이 났다. 사실 시종일관 울었는데 그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영화계에는 또 다른 배우 정유미가 있다. 동명이인이고 나이와 경력도 비슷하다. 하지만 같은 분야에서 일하니까 의식할 수밖에 없겠지. 그녀를 극복해야 할 대상이나 또 다른 ‘나’로 느껴본 적도 있나?
있다. 그녀가 너무 부럽다.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잘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지금 그녀의 이미지나, 그녀의 영화들, 추구하는 작품 나 또한 바랐던 거다. 나는 현실과 타협한 길을 걸어온 것 같아 그녀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질투 나기도 한다. 우리가 같은 이름을 갖고 있으니 동시에 생각나기 마련인데, 그것만으로도 영광이다. 나중에 토크쇼라든가 그런 데 나가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유미와 유미. 재미있을 것 같다. 유미와 진혁은 어떤가? 알고 보면 우린 동갑이다.
아 그래? 나는 빠른 생일이라 2월 말에 태어났다.
나도 물고기자리다. 이거 술이라도 마셔야겠는데? 그럼 물고기자리니까 물고기를 먹을까?
좋다, 정말로.

왜 예쁜 여자들은 착하기까지 한 걸까? 정유미를 만나고 오는 길에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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