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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 이야기

On September 10, 2012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아레나>가 여는 가을의 첫 얼굴이다

세 남자 이야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아레나>가 여는 가을의 첫 얼굴이다.
그 얼굴은 이정재이기도 했다가 김상중이기도 했다가 박근형이기도 하다. 
연기자들이다. 세대가 조금씩은 다른 배우들이다. 그들이 <아레나>의 얼굴로 우뚝 선 9월이다.

계속, 잡지를 만들며 생각한다.
잡지 소개서 맨 앞장을 장식하는 그 단어 ‘에이지 타깃(Age Target)’이란 사뭇 어리석다 여겨진다. 문득 시대착오라고도 생각된다. 2012년 가을을 사는 우리에겐 취향의 군집만이 남은 것 아닌가, 그게 정답이다, 확신한다. 나이와 취향이 갖는 획일적인 상관관계가 희미해진 시대라 그렇다. 물리적인 나이는 그야말로 육체의 문제다. 지금은 취향의 나이가 인간을 가르는 기준이다. 물론 나이불문이라는 전단지 문구로 일갈하려는 건 아니다.
취향의 타깃(Taste Target)이야말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최상의 전제라는 생각이다. 이 대전제 아래 20대, 30대, 40대 혹은 그 이상의 세대가 피라미드처럼 정렬하는 게 요즘 세상이다. <아레나>의 타깃은 늘 분명하다. 블랙칼라 워커(Black Collar Workers)다. 직업에 맞는 자신의 스타일을 확실하게 구축하는 남자들이다. 창의적인 남자들이다. 단호한 남자들이다. 호불호가 확실한 남자들이다. 지루한 담론보다 명쾌한 정리를 선호하는 남자들이다. 결국 취향이 맞는 사람들 간의 유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남자들이다. 골방에서 자신만의 창의를 키우는 사람은 아니다. 자신의 취향이 널리 공유되고 사방팔방 펼쳐지기를 원하는 활기찬 군집이다. 나이를 떠나 생각이 늙지 않는 남자들이다. 

다시, <아레나> 9월호의 얼굴 이야기다.
색깔이 확실한 세 남자 이야기다.
이정재. 이 남자 데뷔 연도가 1993년이다. 20년 전이다. 말도 안 된다, 20년이라니. 지난 십수 년 전에도 지금에도 그는 한결같은 대한민국 스타일 아이콘이다. 다비드 상이 강림한 것 같은 매끈함에 옷에 대한 한없는 신뢰가 더해져 그가 됐다. 믿지 못할 건 아직도 우리는 그만큼 꾸준한 스타일 아이콘을 갖지 못했다는 거다. 오늘 그가 참여한 영화 <도둑들>의 천만 관객 돌파 소식이 있었다. <정사> <시월애> <인터뷰> <순애보> <오버 더 레인보우> <태양은 없다> <오 브라더스> 그리고 <도둑들>의 그를 기억한다. 그는 비슷한 듯 다르다. 무심한 듯 차가운 계산법에 동의한다.
그리고 축하한다. <도둑들>의 흥행과 <아레나>의 얼굴이 된 걸.
김상중. 그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양 미간을 찡그리며 논리를 펼칠 때, 우리는 그의 오차 없는 목소리 속에 몰입했다. 그의 찬란한 에너지 때문이다. 그의 세포 하나하나에 박힌 연기의 에너지는 지난 1990년부터 발화했다. 23년 전이다. 그는 곧 50대를 앞두고 있다. 기억하는가. 그는 <추적자>의 강동윤 이기 이전에 <거짓말>의 이동진이었고 <내 남자의 여자>의 홍준표였고 <북촌방향>의 영호였으며 <두사부일체>의 두식이기도 했다. 누구도 김상중을 잘 모른다. 인터뷰를 싫어하고 나서기 싫어해서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연기 속에 이렇게 오랜 시간 침잠해 있었다. 누가 그의 부드럽고도 단단한 목소리를, 그의 매섭지만 우울한 눈초리를 흉내낼 것인가. 인터뷰의 왜곡이 싫다, 인터뷰는 안 하겠다는 그의 단호함이 거만과 아집으로 느껴지지 않은 건 진중함 때문이다. 그의 고민과 신념이 느껴져서다. 그 또한 <아레나>답다. 그는 단호하고 분명하다. 선이 확실하다.   
아, 이제 박근형 선생이다.  
다짜고짜 고백하자면 존경하는 분이다. 
‘내 말 잘 들으래이. 자존심은 미친년이 머리에 꽂고 있는 꽃하고 같은 거다. 희한하재. 얼굴을 만지고 때리고 밀고 그래도 하하 웃던 아가 머리의 꽃을 만지면 살쾡이로 변하는 거라. 지한테는 머리의 꽃이 지 몸보다 중요한 기라. 사람들이 저 미쳐가 저런갑다 요러지만은. 내가 볼 때는 다 똑같은기라. 사람들은 머리에 하나씩 꽃을 꽂고 사는기라. 아무 쓸모도 없는데도 지 몸보다 중요하다고 착각하고 사는 게.’ <추적자> 서 회장의 대사를 들으며 심장이 쿵 내려앉은 게 나만은 아닐 거다. 연기의 힘이다. 마력이다. 마 셔츠를 입은 경상도 할배가 브라운관 안에서 시대와 세대를 사위하고 있다. 무서울 정도다. 혹시 알고 있었는가. 경상도 사투리가 몸에 착 감겼던 그가 실제론 전북 출신인 걸. 그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드라마 <청춘의 덫>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8년. 기억의 단편을 끼워 맞추면 이렇다. 잘생겼다. 지금의 장동건 같다. 당대 최고의 멜로 헤로인 이효춘 선생의 상대역이었다. 너무 잘생겼다. 그리고 훤칠하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엄청나게 잘생긴 청춘 모범 배우였다. 옮길 수조차 없을 정도로 작품 연혁이 길다. 54년. 연기만 했다. 고개를 숙여 인사 올린다. 선생이 <아레나>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근 다섯 시간. 모두들 마음을 숙였다. 몸에 밴 온화와 친절과 겸손과 세상을 보는 깊이가 공기를 아울렀다. 세상엔 두 종류의 스타가 있다. 말 그대로 별이다. 반짝이기만 한다. 울림이 없다. 대부분 거만하다. 그 반대편에 또 하나의 별이 있다. 시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존재다. 빛이 날수록 겸손하다. 울림이 깊다. 박근형 선생은 후자다. 30년 만의 잡지 촬영이라 했다. <추적자> 종영 이후 제안받은 수십 개의 인터뷰 요청 중 <아레나>를 선택한 건 그의 딸 때문이라 했다. 패션지를 잘 모르는 세대이니 딸의 의견을 들었다고 했다. 이 진솔함조차 감사했다. 실린 사진을 보면 알 것이다. 선생이 패션 화보에 보인 성실함, 열정 그리고 흥건히 배어나는 그 연기력. 선생의 <아레나> 인터뷰 초고를 읽다가 마음에 밑줄을 쳤다. 하나가 아니라 스무 개쯤 쳤다. 그중 한 문장을 되적어본다.

“지금도 극본만 보면 남의 역할이라도 가슴이 둥둥둥, 떨린다.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그 생각이 머리에 파노라마처럼 계속된다. 샘도 나고. 아 그거 내가 하면 더 재밌게 잘할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이 막 난다. 그래서 많이 보게 된다. 우리 어릴 때 내가 부반장 맡고 다른 사람이 반장이면 반장이 어디 아파서 안 나오길 바라는 것처럼, 지금도 그렇다. 그 마음이 있다. 잘못돼서 내가 나가 봤으면, 하고. 나쁜 의미가 아닌, 하고 싶은 좋은 욕심이다.””

청춘이다. 그는 생각이 늙지 않는다. <아레나>답다.
영광이다. 선생이 우리의 얼굴이 돼주신 거 말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아레나>가 여는 가을의 첫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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