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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에 대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보고서

세상은 넓고 폭탄주는 많다. <아레나> 연구실은 술자리를 단번에 초토화시킬 대량 살상용 폭탄주를 골라 직접 제조해보기로 했다. 그 알딸딸한 실험일지를 공개한다.

UpdatedOn March 23, 2006

             

1 금테주(맥주 + 양주)

2 황우석주(맹물 또는 맥주 + 맥주)

성분이야 맥주와 양주의 평범한 배합이다. 하지만 금테주에서 중요한 것은 맛이 아니라 제조 과정에 필수인 정성스러운 태도와 인사불성의 술자리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예민한 미적 감각이다. 일단 상하로 길쭉한 잔에 거품이 생기지 않도록 일정 높이까지 맥주를 채운다. 그리고 잔을 결이 고운 티슈로 덮는다. 햄버거 가게에서 집어온 냅킨이나, 엠보싱이 촘촘한 키친타월 따위는 효과가 없으니 주의할 것. 필히 크리넥스를 사용해야 한다. 이제 티슈 위로 양주를 조심스럽게 붓는다(뭐, 그리 깔끔해 보이진 않는다). 비중 차이로 맥주 끝머리에 양주로 이루어진 띠가 둥실 떠오르면 성공. 두 층이 느릿느릿 섞이기 전에 냉큼 잔을 기울여본다. 양주의 싸한 기운이 혀에 닿나 했더니 잽싸게 시원한 맛의 맥주가 오버랩된다. 이제 주위의 환호에 허리 굽혀 인사하면 끝. 양주 대신 소주를 사용하면 은테주도 만들 수 있다니 참고하시길.

과거, 쌍끌이 어로법을 두고 한일 어업협상 과정에 설전이 오가던 당시에는 ‘쌍끌이주’가 등장한 바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대한민국 술자리에서 떠들썩한 안줏감이 되었던 황우석 사태 역시 그 이름을 딴 폭탄주를 탄생시켰다. 그런데 황우석주의 핵심은 폭탄주 아닌 폭탄주라는 점이다. 통상적인 경우와 달리, 양주 대신 맹물 혹은 맥주를 장착하는 게 제조 비법이다. 결국 말짱 황이었다는 닥터 황 연구의 실속 없음을 비꼬는 의미겠다. 맛이야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을 터. 그대로의 맥주 혹은 그보다 한층 맹맹한 맥주일 뿐이니까. 그래도 마냥 시시덕거릴 수만은 없는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탓인지, 혀끝을 넘어가는 기분이 꽤 씁쓸하다. 두뇌가 광속으로 회전하는 몇몇 주당들은 이를 응용해 ‘줄기세포 도미노’ 시리즈를 생각해내기도 했다. 2번부터 12번까지의 번호를 붙인 11개의 폭탄주 중 제대로 된 놈은 2번과 3번뿐이고, 나머지는 양주가 빠진 엉터리다.

 

 

3 황제주(자양강장제 + 양주)

4 삼색주(맥주 +와인)

자양강장제를 넣었다고 하나 자주 홀짝거리는 일이 그다지 몸에 좋을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웃고 넘기는 장난으로 이해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황제주의 맛은 당연히 강장제에 따라 좌우된다. 이번에는 녹용과 우황이 들어 있다는 모 메이저 제약회사의 제품을 선택해보기로 한다. 조심스레 몇 방울을 떨어뜨린 수준인데도 존재감은 강렬하다. 한약방을 통째로 우려낸 듯한 쌉쌀함 뒤로 타는 듯한 알코올 기운이 느껴진다. 동·서양의 만남이라는 설명이 진부하면서도 꽤 그럴듯하다. 굳이 묘사하면, 머리카락을 쫑쫑 땋아 콘헤어를 한 청학동 선비를 연상시키는 폭탄주다. 시침 뚝 떼고 무게를 잡지만 은근히 맛이 재미나다.

고정관념에 대한 이의 제기 정도가 아닐까. 양주를 사용하게 마련인 폭탄주 대신 레드 와인을 곁들여보자는 발상이다. 일단은 거품이 풍성하게끔 맥주를 잔에 콸콸 따른다. 그리고 그 위로 조심스럽게 와인을 흘려 넣으면 완성. 잔 바닥에 와인이 붉은 기운을 띠며 조심스럽게 내려앉아, 와인-맥주-거품의 세 층을 이루게 된다. 예쁘기도 예쁘거니와 무엇보다도 맛이 나쁘지 않다. 와인의 미약하게 떫은 기운이 맥주의 씁쓸한 맛에 부드럽게 녹아들어 잔을 입에서 뗀 뒤에도 달달한 포도 향만 입 안에 남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와인 저장고에 고이 보관 중인 보르도 와인을 맥주잔에 따르도록 권하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가볍고 장난스러운 술자리에는 동네 편의점의 싸구려 포도주면 충분하다.

 

 

5 소콜달이주(맥주 + 소주 + 콜라 + 달걀노른자)

6 동동 폭탄주(동동주 + 맥주)

이 정도면 고정관념에 대한 이의 제기가 아니라 테러에 가깝다. 맥주, 소주에 느닷없이 콜라를 들이붓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해도 거기에 날달걀 노른자를 불쑥 떨어뜨리는 일은 아무래도 만행이 아닐까. ‘배고플 때 먹는 폭탄주’라는 설명이 들려오지만, 출출하다면 따로 안주를 주문하면 될 일이다. 일단, 숙종으로부터 사약 받는 장희빈이 된 심정으로 술잔을 기울인다. 건더기 있는 17년산 맥콜 같은 맛이다. 호러 영화로 치자면 피칠갑이 눅눅한 하드고어요, 포르노로 따지면 할 짓, 못 할 짓 다하는 하드코어 수준이다. 이쯤 되면 흔하디흔한 영화 홍보 카피도 하나 떠오른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맛)보게 될 것이다!”

적어도 건더기는 없으니 이 정도면 납득할 만한 조합이다. 적당량의 동동주에 맥주를 원하는 만큼 더한다. 일단은 미약하게 텁텁한 느낌이다. 쌀뜨물로 담근 맥주 같은 인상이랄까. 동동주 특유의 향이 있는데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다만 두 종류의 술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지는 못하고, 입 안에서 맛이 따로 논다. 목넘김이 어색하지는 않다. 하지만 술의 질감이 서로 부드럽게 섞이지 못하니 맥주 혹은 동동주를 각각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쪽을 추천한다.

 

 

7 소백산맥주(소주 + 백세주 + 산사춘 + 맥주)

8 정충하초 주(맥주 + 양주 + 우유)

먼저, 하등의 관계도 없어 보이는 네 제품의 앞 글자에서 산맥의 이름을 읽어낸 누군가의 눈썰미에 경의를 표한다. 취향에 따라 비율을 달리할 수 있겠지만, 넉넉한 양의 맥주에 백세주와 산사춘을 적당히 섞고 소주 소량을 가하는 정도가 일반적일 것이다. 백세주 특유의 어릿한 약주 기운이나 산사춘의 달큰한 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소백산맥주는 무난하게 먹을 수 있다. 깔끔하지 않은 뒷맛을 맥주가 상쇄해준다. 툭 치고 올라오는 듯한 소주의 강한 느낌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섞인 재료가 많다 보니 맛이 썩 맑지는 않다. 이튿날 끔찍한 숙취도 예상되는 만큼 산맥을 오르는 기분으로 쉬엄쉬엄 드실 것.

맥주에 양주를 더한다. 여기까지는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다음. 느닷없이 잔 입구를 냅킨으로 덮은 뒤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그 사이로 우유를 흘려 넣는다는 설명이다.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이 대목까지만 해도 성적인 함의가 명명백백하다. 이름마저 정충(精蟲)하초주라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차가운 맥주와 섞이지 않은 우유가 단백질 덩어리로 뭉쳐 가라앉는 모양이 정자의 움직임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이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물끄러미 눈앞의 술잔을 보고 있노라니, 마시기 전부터 입 안이 뻑뻑해지는 기분이다. 경악을 금치 못하며 지켜본 영화 <아메리칸 파이>의 한 장면도 떠오르는 것 같다. 눈 딱 감고 한 모금을 들이켠다. 역할 정도는 아니다. 워낙에 향이 강한 양주 덕분에 우유 맛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찬찬히 쩝쩝거리고 있노라면 은근히 고소하고 부드러운 뒷맛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빛깔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입으로 흘려 넣을 생각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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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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