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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변

On April 24, 2012

아직도 나는 아버지를 아빠라 부른다.

아직도 나는 아버지를 아빠라 부른다.
아빠가 아니라 아빠아~라고 부른다. ‘ㅂ’ 발음을 길게 잡아끌어 한껏 품은 공기가 목울대를 살짝 울릴 때쯤 소리를 멈춘다. 전화를 자주 못 드리니, 애교를 섞는답시고
그러는 거다.
아빠는 175cm가 넘는 장신에 늘씬한 다리로 동네를 주름잡던 분이다. 아빠가 지나가면 마을 어귀 공기가 휘리릭 갈라진다고 생각했던 건 곧고 긴 다리 때문일 거다. 나는 아빠가 그 긴 다리를 75도 각도로 높이 뻗어 도둑을, 간첩을 잡고 있을 거라 상상하며 자랐다. 아빠가 밤 근무를 하는 날이면 흰 운동화 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도둑 잡는 꿈을 꾸곤 했다. 어느 날 경찰 정복을 입고 출근하는 아빠 어깨에서 계급장이 반짝, 했다고 느낀 적도 있다. 유도 유단자에 태권도 유단자인 아빠는 키만 큰 게 아니라 주먹도 크고 발도 컸다. 그 큰 발과 손으로 이삿짐을 척척 나르고 자식 셋도 척척 안았다. 최고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빠는 나와 말을 안 했다. 아니 말할 시간이 없었나.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던 아빠를 집에서 보는 일이 흔치 않았다는 건 핑계일 것이다. 아빠는 말을 하는 것, 아니 조잘거리는 건 남자답지 못하다거나 혹은 그런 남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행동했다. 엄마는 저런 남자 만나지 마라, 를 입에 달고 살았다. 아빠와 치열하게 대화한 기억은 싸움이다. 대학생이 되고 머리가 굵은 후,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는 게 간지럽다 자각할 즈음이었을 거다. 제 깐엔 아빠의 지나친 원칙주의를 비판했던 것 같다. 아, 돌이켜보니 나만 치열했던 것 같다. 그때의 아빠 역시 큰 말은 없었다. 하지만 화를 감추지는 않았다. 그 무섭게 일그러진 얼굴과 화로 점철된 뒷모습은 아직도 안방 문틀에 남아 있다. 며칠 후 더 말이 없어진 아빠에게 백배사죄 했다. 뭐가 죄송한지를 따지기 전에 화가 난 아빠가 무서워서였다. 아빠는 무섭다. 만날 회초리를 드는 엄마는 무섭지 않았는데 말이다.
시간이 흘러 10년 차 기자가 된 어느 날. 또 대거리 한판. 내가 전세와 대출을 끼고 한강 인근에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사겠다고 선언했을 무렵. 아빠는 내 통장을 내놓지 않았다. 아빠가 그랬다. 어디 머리에 바람만 차가지고 허황된 생각만 하느냐. 집은 성실히 돈 모아서 사는 거지, 종잣돈도 제대로 없이 전세에 대출에 그게 말이 되느냐. 결국 난 못 샀다. 그 집은 나중에 크게 올랐다. 그후로 오랫동안 아빠의 그 고지식함이 우리 가족이 부자 되는 길을 막았다고, 생각했다. 두고두고 원망도 했다. 하지만 곧 잊었다.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직전.
초등학교 이후 처음, 이건 십수 년 만에 아빠의 손을 잡고 나란히 한길을 걷게 되는 순간. 워낙 늙은 신부여서 긴장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기대는 됐다. 아빠가 웨딩마치를 하기 직전 무슨 말을 할까. 일생에 하루밖에 없는 날이니, 뭔가 의미심장한 얘기를 해주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딸들이 식장에서 우는 건, 아빠와의 웨딩마치 때문이라던데. 드디어 아빠와 나란히 섰다. 팔짱을 꼈다. 팔짱은 생전 처음이다. 내 몸의 반은 아빠인데 아빠와 살을 맞대는 게 생경하고 생소했다. 웅성웅성하는 하객들의 소리가 환청처럼 페이드아웃. 드디어 아빠가 입술을 뗐다.

“성현아….”
“네…아빠….”         
“왼발부터 가는 거다.”
“…;;”
“왼발, 왼발, 왼발.”

그 구령은 작았지만 단호했다. 나는 흰 치마 입은 훈련생도가 됐다. 정말 왼발부터 걸었다. 아빠의 명령이니까. 흐흐, 틀리면 아빠가 싫어할테니까. 시간이 훌쩍 지나 아빠처럼 눈이 작은 아들을 낳고 그 얘길 했더니 아빠가 그랬다.
“내가 정말 그 말만 했냐?”  

 아빠의 이야기는 사담이다. 하지만 누구나 아빠가 있으니 사담이 공담이 될 거라 생각한다. 5월의 <아레나>에 군데군데 누군가의 아빠가 있다. 그 흔적들을 찾아 읽으면 당신의 아빠가 떠오를 거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사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서다. 으흐흐. 어느 날부터 부쩍 말수가 늘어난 아빠를 보는 게 아려서.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기엔 턱없이 자격 미달인 딸이 지면으로나마 아빠에게 애교 한번 부려보려고 그런다. 아빠는 내가 해외 출장 가는 것도 자랑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아빠 얘길 잡지에 썼다고 하면 5월 내내 어깨가 으쓱할 거다. 그러니 사심 가득한 이 페이지 널리 양해해주길 바란다. 



아직도 나는 아버지를 아빠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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