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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작업실

On March 02, 2012

그림을 그린다. 그림들은 티셔츠에, 음반 재킷에, 필통에, 때론 뮤직비디오에서 움직인다. 그리는 네 남자와 그들과 꼭 닮은 작업실에 놀러 갔다.



최근엔 여전히 일러스트로 많은 작업을 하고 있으며 회사가 모션 그래픽에 특화되어 있어 이야기가 있는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작업도 하고 있다.
팔기 위한 디자인, 나를 위한 그림 괴리가 있다. 상업적인 작업은 고객의 요구를 최단시간에 파악해 스케줄 안에 완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괴리가 생길 땐 전시를 하거나 개인적으로 작업을 하면서 푼다. 뮤지션이랑 협업을 할 수도 있고. 검정치마와 작업할 때는 즐기면서 했다. 조휴일도 좋아했고. 그런 재밌는 작업으로 푼다.
싸이랑 같이 해보고 싶다. 좀 재밌는 에너지 넘치는 아티스트. 펑크 쪽이나 인디 음악 분야의 사람들과 해보는 것도 재밌겠다. 상업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니까 제약이 없어서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나올 거다. 요즘은 정차식에 꽂혔다. 레이니썬에 있다 혼자 나와서 하는데 되게 좋더라. 기회 되면 같이 하고 싶은데 음악이 너무 대중성이 없어서 좀 힘들 것 같다. 패션 브랜드랑 같이 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작품과 영상물을 같이 보여주는 개인 전시회를 해보고 싶다. 아직 쉽지가 않다. 그룹전은 많이 했는데 개인전은 안 해봤다. 솔직히 작가 활동만 해선 생계 유지를 할 수가 없다. 난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었는데 항상 스토리텔링 하고 싶어서 찾다 보니 애니메이션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나는 비주얼 아트워크 전문가인 데 비해 델픽의 다른 분들은 영상 쪽에 뛰어나니까 어떻게 보면 컬래버레이션하는 거다. 어떤 접점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모션 그래픽 쪽으로 재밌는 걸 많이 해볼 생각이다.
검정치마의 <젊은 우리 사랑> 뮤직비디오는 좀 자랑하고 싶다. 많은 분들이 의외로 좋아해주셨다.
작업실에서 나만 갖고 있는 건 리락쿠마 곰인형.
작업할 땐 인디 음악을 즐겨 듣는다. 정차식 되게 좋아하고.
즐겨 찾는 블로그 웹사이트 되게 많다. 순수 미술 하는 작가들의 사이트를 자주 방문한다(www.fecalface.com).
나는 무조건 재밌어야 된다. 처음엔 내가 재밌어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걸 보는 것도 좋더라. 유머 코드가 모든 걸 관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감을 이끌어낼 만한 것들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봤을 때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작가 본인만 아는 예술 같은 걸 되게 싫어한다. 전시장에서 많은 비용 들여서 전시하는 것은 그들만의 잔치 같은 느낌이다. 대중도 쉽게 알 수 있는 게 좋다. 작업할 때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이다.


붕가붕가레코드 내에서 내 지위는 조금 독특하다. 회사가 처음 만들어질 무렵부터 함께하다 보니, 애착이나 욕심은 분명히 창업주의 그것에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다. 다만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많기 때문에 굳이 소속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디자이너로서 한 구성원이면서 외부 작업도 계속 하고 있다.  
옛날 작업들을 좋아한다. 거의 다 예전에 해서 까먹은 것들, 그래서 뭐가 아쉬웠는지 기억이 안 나는 작업들. 기본적으로 만족감이나 후련함보단 아쉬움이나 불만족이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라. 레터링 작업 중에선 브로콜리 너마저의 타이틀 디자인. 음반은 그림자 궁전의 1집 디자인.
음반 디자인이 음악을 일차적으로 설명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음악이 제시하는 이미지나 내용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건 피해야 된다고. 아예 상반되는 이미지를 제시해버리든가, 숨겨놓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야 음반 디자인이 하나의 창작물로서 생명을 가질 수 있다. 브로콜리 너마저도 감수성이 뛰어난 밴드지만 그런 걸 느낄 수 없는 타이틀을 만들고 싶었다. 오히려 더 투박하고 단단하고 각진 로고를 넣고 싶었다. 좀 위악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 같다. 그래서 초기 로고 중에는 브로콜리 모양을 본떠 뇌를 턱 넣기도 하는 등 좀 기괴한 것도 있다. 밴드 이름도 처음 들으면 기괴한데 굳이 아름다운 형태로 담아내고 싶지 않았다. 회사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좀 그렇다. 막 비틀고 비꼬고 싶어 한다.
작업실에서 나만 갖고 있는 건 고등어 모형. 파는 아저씨도 어디다 쓰냐고 물어보더라. 게도 있었는데 난 고등어가 맘에 들었다. 그리고 1950년대 도시바 선풍기. 이건 정말 나만 갖고 있을 거다. 내가 색칠을 새로 했으니까. 한창 옛날 가전제품에 관심 가질 때가 있었다.
장기하와 얼굴들 좋아하긴 하는데 듣다 보면 내 걸 좋아하는 것처럼 쑥스러워진다. 그런 대중적인 것이 내 거다 싶을 때 생기는 이상한 감각도 좀…. ‘달이 차오른다 가자’ ‘싸구려 커피’를 데모로 들었을 땐 완전 꽂혀서 만날 들으면서 디자인 생각하고는 했는데 어느 순간 매체에 많이 나오면서 나마저도 이걸 사랑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  
자기가 지닌 현재성을 파먹으면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외부 사회와의 관계에서 주로 영감을 얻는다. 사람들의 일상이라는 지층 위에 추억이 쌓여서 공간이 되고, 그 공간이 모여 지역이 되고 역사가 되고 하나의 문화가 형성되지 않나. 그게 창작자들에게는 활동할 수 있는 판이 된다. 지금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분노든 아쉬움이든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가 한글로 표현하는 건 한글이 우수하고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인이어서 한글로 표현하는 게 제일 편하고 의미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 현재성, 나를 둘러싼 공동체의 네트워크 이런 걸 양분으로 빨아먹고 살아야 된다. 그런 토양을 기반으로 우리 안에 새로운 신들이 형성되고, 이 신 저 신이 계속 경쟁도 해야 건강하게 넓어질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작업한다.


서커스 보이밴드(이하 CBB)는 오현석과 이준용이다. 오현석이 mmmg 재직 중에 만든 브랜드 이다 보니 mmmg를 통해 판매를 시작했을 뿐, CBB는 독립 회사다. 제품은 크게 일러스트를 이용한 지류 제품과 가방으로 나뉜다. 오현석은 이미지와 일러스트 디자인을, 이준용은  이를 구체화해 제품을 만든다.
최근엔 일러스트 작업이 좀 많다. 외부 일로는 유제품 패키지 디자인을 진행하고 있다. 또 신규로 론칭하는 작은 레스토랑의 전반적인 디렉팅을 담당하고 있다.
시도해보고 싶은 작업은 아직 생각 못해봤다. CBB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1년 정도밖에 안 됐기 때문에 아직은 CBB 안에서 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일단은 CBB라는 브랜드에 힘을 더 실어줘야 다른 걸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직도 mmmg 혹은 서브 브랜드인 줄 아는 사람들도 너무 많고.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같이, 유명하진 않더라도 자기 색깔을 지키며 작업하는 친구들과 같이 해보고 싶다. 내 물건이 어디선가 팔리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얻는 분들이 다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 우리가 만든 매장 52를 잘 활용해보고 싶다. 요즘 그런 분들이 서촌 쪽을 많이 찾는 것 같다.
페이스 포켓은 CBB의 첫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집에서 직접 꿰매 주머니 만들고 버리는 옷에서 뗀 단추나 지퍼도 직접 달아 상품화한 거다. 그래서 페이스 포켓 라인에 제일 애착이 간다. 처음엔 폴, 앤 이름 붙여서 시리즈로 나가다가 지금은 페이스 포켓 owl이라고, 올빼미 느낌으로 변형해보고 있다. 시리즈로 계속 나갈 수 있는 CBB의 첫 아이템이기도 하고. 
작업실에서 나만 가지고 있는 것 오: 맥도날드의 로날드 장난감 모으는 걸 좋아한다. 요즘엔 안 나오지만. 그중에 나만 갖고 있는 것도 있을 거다. 맥도널드 로고가 그려진 컵 같은 건 구하기 어렵다.
이: 스타워즈! 둘의 느낌이 많이 다르다. 좋아하는 것도, 생긴 것도, 성격도.
음악은 오: 대중없이 각자 취향에 따라. 지금 나오는 건 무인양품 배경음악이다. 아이튠즈 라디오 채널 중에서 1960~1970년대 음악을 방송하는 채널을 틀어놓기도 한다. 이: mmmg 카페 음악도 재직 중에는 오 실장이 골랐다, 작업할 때 거슬리는 음악은 안 듣는다.
블로그나 웹사이트는 사실 잘 안 보려고 한다. 웹사이트나 완성형의 무엇에서 영감을 얻기보다는 그냥 거리를 걷든지 사람들 많은 데서 찾는다. 일러스트 작업하는 분들 우연히 알게 되면 링크 타서 한 번 보는 식.
“이건 CBB 제품 같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해줄 때, 우리만의 색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색깔을 일에서도 생활에서도 유지하고 싶다. 이: 우린 말을 잘하거나 사교적이지 못하다. 우리 생활이 묻어나는 제품들을 누군가가 사용할 때 우린 그게 소통이고 표현이다. 잘 표현된 제품에 사람들이 만족해주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바다. 아, 왜 이렇게 말을 잘 못하지.


최근엔 버리드 얼라이브 여름 시즌 티셔츠, F/W 기획 중이다. 매체들의 외주 작업이랑 개인적인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올해 안에 개인전 한 번 하려고.
팔기 위한 디자인, 나를 위한 그림 아무래도 브랜드에서 그리는 것들은 내가 겪어왔고 좋아하는 분야를 담고 있어서 괴리감이 그렇게 크진 않은데 더 강한 걸 하고 싶은데 판매를 목적으로 하다 보니 포기할 때가 있다. 스케이트보드 아트나 펑크 록 밴드의 아트에 대해 알려주는 브랜드가 되고 싶은데 사람들이 그러한 분야를 잘 모르니까 그 격차를 줄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개인 작업에서는 과감히 표현하는 정도고.
더 입체적인 작업을 해보고 싶다. 나는 원래 그림 그리는 사람이지만 그림보단 만질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개인 프로젝트도 그쪽으로 준비하고 싶은데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많이 약하다. 내 아이디어로 디자인해서 설계도를 만들면 그걸 조형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아티스트를 물색하고 있다.
만족스러운 작업 같은 건 없는데 정말 솔직히. 내가 밴드를 5년 정도 했는데 그때 봤던 것들이 많은 영감을 준다. 아직도 음악에 대한 로망, 존경심이 있어서 한국에서 계속 활동하는 윗세대 밴드의 음악을 한곳에 모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2년 전에 1950년대 개러지 록 컴필레이션 앨범 커버를 패러디해서 펑크 록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들었었다. 만족스럽다기보다 뿌듯한 작업이었다.
작업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 책들. 많지는 않지만 하나하나 구하기 힘든 거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 스케이트보드 아트나 펑크 록 밴드 아트 중심에 있던 사람들의 아트 북을 모은 거라서 소중하다. 그리고 컴퓨터 안에 저장한 자료들, 영상들.
작업실에서 나만 가지고 있는 건 바비큐 앞치마. 1970년대 스케이트보드 아트의 선두 주자였던 짐 필립스가 작업한 데크 디자인이 프린트되어 있다. 국내에선 갖고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을걸. 페인팅할 때 걸치려고 했는데 아까워서 하겠나. 해외 갔을 때 낼름 샀다.
작업할 땐 피아노 연주곡 같은 거. 사실 작업할 땐 음악을 잘 안 듣는 편이다. 평소엔 딱히 새로운 곡을 듣진 않고 비스티보이즈? 아니면 되게 극단적인 클래식. 
즐겨 찾는 웹사이트 블로그 띵크피스트라고 인디 아티스트들 커뮤니티에 자주 방문한다. 영감도 받고 어떤 새로운 것들이 있는지. 재밌잖아, 남의 것 보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있으면 자세히 살펴보고 그런 거지, 뭐.
나 역시 진짜는 아니지만 가짜는 되지 말자. 나는 1970~1980년대 아트워크 재해석을 많이 하는데 솔직히 내가 그 문화를 겪은 사람은 아니지 않나. 나도 진짜라고 할 수 없지만 카피하거나 겉으로만 그런 척하는 가짜는 되지 말자, 그런 생각하면서 작업한다.

그림을 그린다. 그림들은 티셔츠에, 음반 재킷에, 필통에, 때론 뮤직비디오에서 움직인다. 그리는 네 남자와 그들과 꼭 닮은 작업실에 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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