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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에 살으리랏다

집 짓는 건축가들을 만났고 그들이 손꼽는 주택과 동네들을 휘젓고 다녔다. 타워팰리스보다 효자동 적산 가옥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br><br>[2007년 7월호]

UpdatedOn June 21, 2007

Editor 이민정 COOPERATION 서울포럼 PHOTOGRAPHY 김재경(주택 사진)

한강이 살짝 보이는 35층 오피스텔이 척박하다는 생각이 든 건 우연히 부암동에 발을 디디고 나서다. 경복궁 역을 지나 자하문 터널 위쪽으로 오밀조밀한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가 부암동인데 인왕산과 북한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살갗에 닿는 공기는 쾌적하기 이를 데 없고, 골목의 생김새에 따라 지어진 오래된 건물들은 낯설지만 정겹다. 테이블 몇 개 되지 않는 카페에서 울려 퍼지는 클로드 볼링이 열 발자국 떨어진 곳까지 들리고, 하늘을 가리지 않는 벽돌집(2004년까지 이 지역은 그린벨트였다.)들은 제멋대로 자란 풀과 나무들과 어울려 결코 의뭉스럽지 않다. 무엇보다 부암동 동사무소에서 5분만 걸으면 자연을 끌어안은 환기미술관에 닿는다. 아닌 게 아니라 환기미술관을 지은 건축가 우규승은 김환기 작가가 살던 동네와 멀지 않은 곳을 헤매다 산, 달, 그림, 구름, 바위가 있는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이런 동네라면 통을 신고 슈퍼마켓에서 두부 한 모를 사도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데는 마을버스로 다녀야 하고 주차 시설이 썩 좋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몰리더라도 집값이 한번에 뛰지는 않을 거예요.” 복덕방 아저씨의 얘기다.
주택에 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부모님에게 독립하면서 ‘1. 지은 지 3년이 넘지 않는 20층 이상 되는 건물이어야 하고, 2. 안내 데스크에 이어폰을 낀 가드가 있어야 하며, 3. 내부에는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이 풀 옵션으로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꼼꼼히 따지면서 도시 곳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을 모두 갖춘 오피스텔에서 3년 이상을 살았건만 ‘집’ 하면 떠오르는 기억은 어릴 때 마룻바닥에 앉아 수박을 잘라 먹던 모습 뿐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콘크리트 아파트는 부족함 없이 편리하지만 안타깝게도 추억과 낭만과 생명이 없다.
그러던 중에 건축가 임형남, 노은주 부부를 만났다. 이들은 통의동 사옥으로 삼았던 40년 된 2층 양옥과 70년 된 효자동 적산 가옥을 현대적으로 고치기도 했고, 틈나는 대로 주인의 생각이나 사는 모습이 드러나는 집들을 구경하러 발품을 판다. 그들이 만난 집들은 <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이라는 책에도 담겨 있는데 건축가의 에고가 강하게 드러나는 기념비적인 주택부터 언제라도 떠날 수 있게 채움보다 비움이 많은 집들도 있다. 그 가운데 자석처럼 마구 끌리는 집은 녹번동에 자리 잡은 ‘마운틴’과 임형남 건축가가 직접 지은 ‘효자동 주택’, 그리고 궁정동에 있는 17평짜리 ‘스튜디오 스몰’이다.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박스로 지은 ‘마운틴’은 집 이름처럼 북한산 초입에 다소곳이 기대어 앉아 있다. 산과 삶의 경계가 없는 이 집 부부는 언제든 쉽게 떠날 수 있도록 3천2백여만원을 들여 20평 남짓한 공간을 만들었다. 주인은 집을 지을 때 너무 세련될까봐 걱정까지 했다고 한다. 꽃이 필 수 있는 공간이면 사람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집은 소유의 대상이 아닌 그저 ‘베이스캠프’인 셈이다. 얼마나 노마드적인 생각인가. “설계를 한 건축가 이화여대 김광수 교수는 가설 창고로만 알았던 컨테이너 박스와 농작물을 키우는 비닐하우스가 근사한 사람 사는 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죠.
문이 없는 방은 낮엔 사랑방이, 밤엔 침실이 되기도 하고 싱크대에서는 조리도 하고 빨래도 해요.” 집을 짓기 전 동네 사람들은 땅값이 떨어진다며 난리법석을 피웠지만 이제 마운틴은 작지만 예쁜 집으로 통한다.
건축가 최욱이 사무실로 사용하는 ‘스튜디오 스몰’은 궁정동에 자리 잡고 있다. 청와대 서쪽에 붙어 있는 궁정동은 열댓 가구밖에 없는 작은 동네지만 백악산과 인왕산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고 복잡하고 꼬불꼬불한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골목이 의미 있는 이유는 종종 가슴을 울리는 정서적인 면도 있지만 옛길을 그대로 남겼다는 데 더 가치가 있다. 영민한 옛사람들은 물줄기를 따라 길을 트고 집을 지었다. 물의 흐름이 좋아야 비가 많이 내려도 고이지 않아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재해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복궁 근처는 한양 시대 내로라하는 양반들이 살던 동네 아닌가. 고작 17평밖에 안 되지만 스튜디오 스몰은 이러한 기름진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가지런한 한옥들 틈에 불쑥 세로로 솟아 있는 형태가 독특하지만 건물의 외장 재료는 동네에서 흔히 쓰이는 타일과 대문을 만들던 철판이다. 그래서 외형이 현대적이어도 젠체하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5년 전쯤인가, 설치미술가 최정화가 북촌에 집을 지었다고 하여 방문한 일이 있다. 삼청동 수제비집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위로 꺾으면 저 멀리 보이는 집이었다. 예술가가 직접 설계하고 꾸민 집이니 외형부터 다르겠거니 했는데(더구나 그의 작업 스타일은 얼마나 원색적이고 현란한가) 80년대 어느 골목에나 널려 있던 집과 별반 다를 바 없어 좀 난감했다. “북촌이 좋다는 말만 듣고 들어오는 부자들은 여기서도 튀려고 애써요. 아주 동네를 망가뜨리고 있죠. 강도의 표적이 될 뿐인데 ‘우리 집 끝내줘요’를 강조할 필요가 뭐가 있나요?” 그의 대답이었다. 최욱 스튜디오도 묘하게 동네와 어울린다. 약간 삐딱한 대지 조건에 맞춰 싱크대도 기울어졌고, 2층 작업실의 가구 등도 모두 ‘커스텀 메이드(Custom made, 현장에 맞춰서 제작하는 방법)’로 작업했다고 했다. 덕분에 한 층 면적이 10평 정도로 작지만 공간의 쓰임새를 섬세하게 배분해서 실제보다 크게 느껴지고 수납공간도 넉넉해졌다.
이번엔 효자동으로 가보자. 임형남, 노은주 부부가 직접 설계한 33평 효자동 주택은 연무관 뒤에 을씨년스럽게 서 있던 적산 가옥을 목조 주택 공법을 응용하여 뜯어고친 집이다. 한쪽 창문에는 인왕산이 담겨 있고 다른 창문에는 백악산이 담겨 있어서 원형을 살리기 위해 수정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건축가는 허물어진 담 자리에 일 층 높이의 콘크리트 옹벽을 만들어 집을 적당히 가리면서 기대게 했고, 살대를 넣고 흙을 채운 뒤 회벽으로 마무리한 외벽을 목재로 둘렀다. 신축이 아니라 있는 집을 고치는 터라 여러모로 애를 썼는데 다행히 이국적이면서 살고 싶은 집으로 완성됐다. 겨우 8천만원이라는 공사비로 말이다. 효자동의 넉넉함과 살가운 정경은 덤이다. 걷기 좋은 길이 이곳에는 얼마나 많은가. 고즈넉한 경복궁 돌담길을 한 바퀴 돌아보거나 경복궁을 가로질러 북촌으로 가거나 또 세종로를 타고 덕수궁 쪽으로 걸어갈 수도 있다.
아름답고 창조적이면서 비싸지 않은 집은 생각보다 많았다. 여유가 된다면 한 채 짓고도 싶었다. 하지만 이미 빼곡히 집들이 들어선 곳에 헤집고 들어갈 틈이 과연 있을까. 반갑게도 건축가는 자투리 땅이 있는 동네가 아직 남아 있다고 했다. “집을 짓기 가장 좋은 곳은 도심에서 가까우면서 마을을 형성하고 있어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남산 자락을 붙잡고 있는 필동이나 해방촌, 용산구 신창동, 기자촌, 암사동 선사유적지, 미사리 조정경기장, 강일동 등지가 잠재력이 남아 있는 땅이에요. 언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그것 때문에 집을 짓지 못하는 건 벌레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죠. 자자손손 뿌리내리고 살 집이 아니니 호화롭게 꾸밀 필요도 없잖아요. 집은 가벼워야 해요. 사는 동안 재밌게 지내는 게 더욱 행복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들은 요즘, 살기 좋은 동네를 말해주는 게 다소 두렵다. 어디가 ‘뜨고 있다’고 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예술가들이 몰리고 그들이 침입하면 사무실, 밥집, 술집이 우후죽순으로 생겨서다. 그렇게 되면 동네는 동네가 아닌 관광지가 되고 만다. 민가(民家)가 많았던 인사동이 그렇고 북촌은 말할 것도 없다. 실제 북촌은 지리적 가치와 한옥이 새롭게 평가받으면서 ‘큰손’들이 몰린 대표적인 동네다. 지금도 땅이 나왔다 하면 기다리고 있다 잽싸게 매처럼 낚아채간다.
사족이지만, 지금의 북촌 한옥은 껍데기만 한옥이지 내부는 현대인이 편하게 살도록 아파트와 다를 바 없이 말끔히 고쳐져 있다. 지금도 북촌 골목을 걷다보면 좁은 길마다 시멘트 포대를 나르는 인부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천장이 낮은 한옥은 좌식 공간이다. 마룻바닥에 책상 다리로 앉아서 마당에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보고 안방 보료에서 책을 읽어야 그 참맛을 알게 된다는 얘기다. 껍데기만 한옥이고 안에는 현대식, 이것부터가 어불성설 아닌가. 한옥에서 살면서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보다 침대에서 자는 생활 방식은 오래 지나면 답답할 수밖에 없다. 원형을 잃은 개량 한복에 다름 아니다. 한술 더 떠, 한옥을 개조한 프렌치 레스토랑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지난해 ‘티 뮤지엄(Tea Museum)’ 사장인 데이비드 킬번을 만나 한옥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북촌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마음에 쏙 든 한옥 한 채를 발견한 뒤, 내려앉은 기와와 무너진 담장 정도만 손을 댄 채 화초를 키우는 정성으로 집을 가꾸며 생활하고 있었다(김기덕 감독의 영화 <빈집>의 배경으로 쓰인 집이기도 하다). 나이 지긋한 외국인이 한옥에 길들여진 것도 신기한데 그는, 콘크리트 벽으로 개조한 한옥이 상업 공간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에 격분했고 결국 종로구청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대단한 일이지만 그의 싸움은 고단하고 몹시 외로워 보였다.
아파트가 맘에 드는 옷을 백화점에서 사는 식이라면 주택은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에게 맞춰 입는 것과 같다. 약간 맞지 않으면 고치기도 하고 신경 쓰고 가꾸면서 쏠쏠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택에 살려는 사람은 애정이 없으면 안 된다. “한옥에 살던 옛사람은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뒤 목수를 불러다 공사를 했어요. 집이야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죠. 아파트는 그 속을 모조리 뜯어내고 멋진 가구를 들여놔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돈을 벌고 싶으면 아파트에 살고, 자신을 완성하고 싶으면 주택에 살라는 겁니다.” 임형남의 얘기다. 그는 집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고려청자 같은 명품 집, 이를테면 포항과 경주 사이의 양동마을(임진왜란 전에 지어진 한옥이 4채 남았는데 그중의 3채가 이곳에 있다.), 소쇄원, 운현궁, 남산한옥 마을 등을 꼭 둘러보라고 덧붙였다.
국내 건축법에 의하면 대지 면적이 50평방미터, 그러니까 17평이 있으면 집을 지을 수 있다고 한다. 도심에 남아 있는 자투리 땅의 값은 평당 1천만원, 신축비를 평당 5백만원이라 쳐도 서울 아파트 값에 턱없이 못 미치는 액수다. 게다가 전 세계 모든 건축가들의 화두는 자연이다. 어떻게든 공간 안에 자연을 끌어들이려 난리인데 주택은 문만 나오면 신록이니 얼마나 행복한가.
사람처럼, 집도 따뜻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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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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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 김재경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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