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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의 여자아이

On August 21, 2008

아오이 유우는 소녀다. 여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끌리는 속내는 언뜻 꺼내 보이기 부끄럽기만 하다. 한 영화 기자가 속삭이듯 아오이 유우 예찬론을 보내왔다.<br><br> [2008년 9월호]

도쿄에 가자마자 책방엘 들렀다. 아오이 유우의 새 사진집 <오늘, 요즘은>을 사기 위해서다. 사진집이라기보다는  뭐랄까, 여드름쟁이 소년들을 위한 기획사 자료집에 가깝다고 할까. 책을 집어 드는 순간 조금 쑥스러워졌다. 시부야 한복판의 지하 서점에서 아오이 유우의 사진집을 집어 드는 서른세 살의 한국 남자라니. 그곳이 아키하바라였고 그것이 사와지리 에리카의 그라비아 사진집이었다면 그렇게 쑥스럽지는 않았을 거다. 남자들은 소녀의 속살 앞에서 충분히 담대해지고 사람들은 소녀의 속살을 원하는 남자들 앞에서 충분히 관대해지니까. 아오이 유우의 사진집은 다르다. 서른셋의 남자가 그걸 집어 든다는 건 이상하게 쑥스럽다. 왜냐면 그건 아마도 요런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는 그녀의 속살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그녀가 동생처럼 예쁘고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더 위험하다. 나는 아오이 유우라는 배우로부터 별다른 영감을 얻은 적은 없다. 그녀의 작품들을 그렇게까지 사랑하는 편도 아니다. 물론 나는 이상일의 <훌라걸스>가 두말할 필요 없는 걸작이라고 생각한다(이 영화를 관습적인 장르 영화라고 칭한 한국 비평가들은 죄다 틀렸다). 나는 이와이 순지의 <하나와 앨리스>가 좋고 <릴리슈슈의 모든 것>은 더 좋다. 세 영화의 아오이 유우는 탄성이 나올 만큼 예쁘고 근사했다. 좋은 배우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무지개 여신>과 <허니와 클로버>는 그냥 그렇다고 생각한다. <무시시>와 <남자들의 야마토>는 끔찍하다. 이건 고통이다. 나는 좋아하지 않는 영화에 출연해온 소녀 배우를 사랑할 만한 배포는 전혀 없는 남자다.

 
어쩌면 나에게 아오이 유우는 소녀라는 이미지의 현현일지도 모르겠다. 아오이 유우에게 잊히지 않는 역할은 없을지언정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이를테면 <하나와 앨리스>의 바로 그 순간 말이다. 아오이 유우는 발을 치켜드는 자신을 보고 흠칫 놀라는 심사위원들에게 “팬티 좀 본다고 닳나요?”라고 말한 뒤 종이컵으로 토슈즈를 만들어 발레를 시작한다. 이 장면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근사하다. 또 하나의 순간은 <훌라걸스>에 들어 있다. 훌라춤 추는 것을 만류하기 위해 연습실을 찾아온 엄마 앞에서 아오이 유우는 격정적으로 춤을 춘다. 그건 관객 모두를 숨죽이게 만든다. 이 모든 순간이 순전히 아오이 유우라는 배우의 이미지만으로 완성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게다. 아오이 유우는 사실 꽤 노력하는 배우다. 타고난 재능으로 저절로 만들어진 듯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아오이 유우는 백조처럼 다리를 구른다. 그녀는 노력의 흔적을 어떻게든 화면에 덕지덕지 바르려 애쓰는 대개의 소녀 배우들과는 달리, 노력의 흔적을 영화로부터 완전히 지워버린다. 그래서 그녀의 연기는 종종 무성의할 정도로 나른한 이미지의 연속으로만 보인다. 내가 아오이 유우의 영화들보다는 사진집들을 더 사랑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의 이미지들은 너무나도 편안하다. 소녀들의 사진을 볼 때 온당 느끼게 되는 섹슈얼한 욕망이 철저하게 제거되어 있다. 갈기갈기 찢어서 기운 듯한 퀼트 드레스를 입고 사막의 빛을 받은 아오이 유우의 모습은 괴이할 정도로 순수한 청춘 형상이다. 그녀는 그냥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다. 하지만 작가는 한 컷을 잡아내기 위해 수천 통의 필름을 썼을 게다. 아오이 유우는 그저 멍하니 서 있는 사진을 위해서 갖가지 포즈를 연습했을 게다. 그러나 사진에는 노력의 흔적이 거세되어 있다. 나는 아오이 유우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봉준호가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도쿄!>를 미리 봤다. 봉준호가 감독한 에피소드 <흔들리는 도쿄>에서 아오이 유우는 히키고모리가 된 피자 배달부를 연기한다. 그런데 유독 한 장면에서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당황스러웠다. 봉준호의 카메라는 기절해 나자빠진 아오이 유우의 육체 구석구석을 카메라로 슬금슬금 훔쳐보고 있었다. 아오이 유우의 하얀 다리를 카메라가 클로즈업으로 훑어 내릴 때,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어졌다. 이미지로만 현현하던 100%의 여자아이가 갑자기 내 앞에서 옷을 벗고 은밀한 미소를 보내는 것 같았다. 여동생이나 누이의 육체를 열쇠구멍으로 탐하는 듯한, 그 은밀한 근친상간의 두려운 매력이라니. 봉준호의 카메라는 거기서 멈췄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나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왜 나는 봉준호의 카메라가 그녀의 다리를 훑을 때 그토록 불편했던 것일까. 해답은 간단했다. 나에게 아오이 유우라는 소녀는 청춘의 이미지일 따름이었다. 섹슈얼한 욕망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궁극적인 청춘 이미지가 갑자기 뜨거운 피와 살을 스크린에 내비치는 순간, 나는 그에 대처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어쩌면 영원히 그에 대처할 준비가 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소녀는 언젠가는 여자가 된다. 언젠가 아오이 유우는 츠모리 치사토의 유아적인 원피스를 재활용 센터에 보내버리고는 가슴선이 도드라지는 슬립 없는 검은 원피스를 입고 기자회견에 나와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여러분, 이제는 성인 연기에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그러고는 노고를 흔적을 일부러 거세하려는 노력을 완전히 멈출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이 올 때까지 아오이 유우의 사진집을 미친 듯이 사 모을 작정이다. 한철 발하고 져버릴 사쿠라 잎을 곱게 말려 책장 사이사이에 끼워두는 소년의 마음이랄까. 부끄럽지만 멈출 수도 없다.

아오이 유우는 소녀다. 여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끌리는 속내는 언뜻 꺼내 보이기 부끄럽기만 하다. 한 영화 기자가 속삭이듯 아오이 유우 예찬론을 보내왔다.<br><br> [200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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