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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비밀은 있다

On July 23, 2008

페티시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 한국은 살기 힘든 곳이다. 여자가 자신의 발을 핥으라고 명령할 때, 제복을 입은 스튜어디스와의 섹스를 상상하거나 여학생의 흰색 면 팬티에서 야릇한 냄새를 맡아야만 좋다는데, 다들 미친 놈 취급이다.

Editor 이기원 Photography 윤성훈

기억해야 할 건 수요가 발생해야 공급이 이루어진다는 기초적인 경제학 이론이다. 페티시 인구가 그만큼 많아져서일까. 나는 한 친구에게서 소위 ‘이미지 클럽’이라 불리는 페티시 마니아들을 위한 공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왠지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호기심에 나는 친구를 닦달해 한 페티시 숍으로 향했다.
밤 11시, 압구정동 뒤편에 위치한 페티시 숍은 간판 하나 없는 지하에 조용히 위치해 있었다. 미로 찾기를 하듯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서 노크를 하자 불법 도박판에라도 온 듯 한 남자가 빠끔히 목을 내밀었다. 예약 상황을 체크한 후 안으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실내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클럽이라기보다는 잘 차려진 병원 같은 느낌에 가까웠다. 지배인으로 보이는 사내는 차분한 말투로 처음이냐고 물었다. 나는 처음이고, 페티시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으며, 호기심에 찾아왔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러자 그는 우선 나를 카운터 옆의 방으로 안내했다. 순간 호기심 가득했던 내 눈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그 방 안에는 얼핏 봐도 2백 벌은 족히 되는 옷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거기에는 반짝이는 스팽글로 범벅이 되어 있는 가무용 옷도 있었지만, 사무복이나 간호사복, 심지어 스튜어디스복 같은 특수한 옷들도 있었다.
막상 그 광경을 보니 마음이 복잡했다. 오랜 시간 몸에 익은 어떤 도덕 관념이 나를 붙잡았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일 뿐이다. 이곳까지 찾아온 나 자신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지만 어느새 내 손은 옷 마감은 제대로 됐는지, 삐져 나온 솔기는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던 직원이 싱긋 웃었다. 그 웃음은 남자들이 포르노 무비나 음란 소설에서 상상하던 모든 일들이 이곳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신경성 위염으로 입원해 있다가 한밤중에 갑자기 병실에 나타난 간호사와 뜨거운 눈빛을 주고받을 수도 있고, 상공 10,000km의 하늘에서 스튜어디스와 야릇한 사인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혹은 직장 동료와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에서 짜릿한 시간을 가질 수도 있는 거다.
망설이던 내게 숍 매니저는 원하는 옷을 고르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30년 동안 내 머릿속에 축적되어왔던 섹스에 대한 공상이 기포가 터지듯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경우, 선택의 기준은 희소성이다. 나는 스튜어디스복을 골랐다. 유니폼을 입은 스튜어디스와 한 시간이나 독대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아서.

룸은 제각각 테마가 정해져 있는데 나는 서재풍으로 꾸며진 룸으로 안내됐다. 룸은 생각보다 컸지만 끈적끈적한 욕망이 느껴지는 공간은 아니었다. 콘돔과 물티슈 대신 파스칼의 <팡세>와 1994년 발매된 <현대문학>이 놓여 있는 것만으로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수준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최영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비평을 오늘에야 읽게 될 줄이야. ‘아아, 컴퓨터와 씹할 수 있다면’ 하던 구절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룸 구석에는 작은 매뉴얼이 걸려 있었다. 여기는 하드코어를 표방한 성매매가 이뤄지는 업소가 아니라는 것, 순수하게 페티시를 즐기기 위한 곳이라는 것, 어느 정도의 터치는 가능하지만 여성이 수치심을 느낄 만한 스킨십은 제한된다는 것, 심지어 30분 안에 나갈 경우 소정의 금액을 돌려준다는 조항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말하자면 이곳은 육체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곳이라기보다 억눌렸던 취향을 표현하기 위해 오는 곳이었다.
10여 분이 지나자 대학 신입생인 듯한 여자가 스튜어디스복을 입고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아까 얘기했듯 이런 곳이 처음이며, 어떤 사전 정보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어느 수위까지 가능한 건지, 어떻게 노는 건지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약간 특별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위한 곳이며, 섹슈얼한 행위가 아니라 특정한 모습을 보며 자극을 받는 관람객들을 위한 곳이라고. 이 작은 방은 일종의 소극장이고, 자신들은 무대 위의 배우라고 했다. 자기는 가랑이를 벌리고 손님을 받는 창녀가 아니라 그저 역할극의 주인공일 뿐이라고 말이다.

이곳에서는 스타킹을 찢거나 복장을 훔쳐보는 것 같은 페티시와 관련된 거의 모든 플레이가 가능했다. 소위 말하는 SM 플레이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남자의 목에 개줄을 묶고 여성이 시키는 대로 하는 도그 플레이(Dog Play), 여자가 채찍으로 남자의 몸에 생채기를 내는 휘핑(Whiping), 남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호스 플레이(Horse Play), 여성의 발에 음식물을 묻힌 뒤 남자가 핥아먹는 풋피딩(Foot Feeding), 여자가 하이힐을 신은 채 남자의 페니스를 짓밟고 차는 ‘스텀프&키킹(Stomp&Kicking)’ 같은 것들. 모두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어쨌든 이렇게 피학 성향이 내재된 남자들도 분명 이곳의 고객이다. 마조히즘 취향의 손님들은 학대당하길 바란다. 채찍으로 노예 취급받기를 원하고, 날카로운 손톱이 자신의 등을 딸기밭으로 만들 지경이 돼야 온전한 쾌락을 느낀다. 심지어는 자신의 얼굴에 소변을 봐달라는 손님도 있다고 했다.
상상 속에나 등장할 것 같았던 일들이 이곳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거다. 이들에게 쾌감이란 사정의 오르가슴이라기보다는,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해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비천한 자의 정신적 해방인 것 같았다.
하지만 취향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할 수는 없다. 이 클럽을 찾는 대부분 남자들은 상위 계층에 속한다. 그녀는 자신을 찾는 단골 중에 대기업 중역도 있고, 영재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육자도 있다고 했다.
한 번도 인생의 내리막길을 걸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역설적으로 실패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일에 더 집착하는 걸까.
아니면 성공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가 은밀하게 그런 욕구들을 키워온 걸까.
나는 어떤 기분이 드냐고 물었다. 그런 식으로 남자들의 시선을 받다 보면 어떤 쾌감을 느끼냐고. 그녀는 솔직히 말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보고 있는 것이 짜릿하다고. 자신의 몸을 훑는 남자의 시선을 느끼는 것이 신날 때가 있다고. 타인의 주목을 받는 즐거움을 느꼈다고 말이다.

나는 또 한 곳을 찾아 나섰다. 강북에 위치한 이 클럽은 페티시 마니아 사이에선 꽤나 소문 난 곳이다. 불필요한 터치가 제한되는 것은 비슷했지만 이곳에서는 일종의 상황극이 가능했다. 여러 가지 상황을 설정하고, 그 속에서 서로 연기를 하는 거다. 방문객은 자기가 꿈꿔왔던 판타지를 실제 상황으로 옮길 수 있다. 어떤 상황이 고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으냐고 물었다. 주인은 뜻밖에도 하숙집이라고 얘기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어린 권상우가 김부선과 함께 야릇한 분위기를 만들었던 그런 장면 말이다. 나는 그 상황을 체험하겠다고 말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막 부엌일을 끝내고 나온 식모 차림의 여자가 눈앞에 섰다. 물론 얼굴은 젊었지만, 그녀는 이런 상황극에 꽤나 익숙한 것 같았다. 룸 안에 들어서자마자 연극이 시작됐다. 그녀는 뭔가를 정리하는 척하며 은근슬쩍 음탕한 말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학생 몸이 참 튼실하네’ ‘자위는 많이 해?’ ‘아유 실내가 덥네’ 같은 말들이 오가더니 급기야 내 옆에 앉아 허벅지를 슬슬 쓰다듬었다.
처음 방에 들어올 때만 해도 이런 유치한 연극에 걸려들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치 최면에 걸린 것같이 나는 읍내에서 지방 소도시로 막 유학 온 까까머리 학생이 됐다. 그녀가 팔로 내 어깨를 감싸 안던 순간, (허겁지겁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어야 마땅했겠지만) 나도 모르게 그녀의 몸을 밀쳐냈다. 순결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살아온 부류가 아닌데도, 이런 행동을 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뭔가 잘못이라도 했나 싶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는 나가달라고 부탁했다. 판타지가 현실이 되자 약간은 두려웠던 것이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는데 문 앞으로 한 남자가 벌거벗은 채 목에 개목걸이를 하고 네 발로 기어가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고 네 발로 걷는 일에 열중했다. 그는 즐거울 때 개가 꼬리를 흔들듯, 연신 경쾌한 발걸음으로 내 눈앞에서 사라져갔다. 나는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그건 오랫동안 구속당했던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격한 해방의 감정이었다.
누군가는 저런 행위를 보고 역겹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직접 현장을 목격하기 전에는 그랬으니까. 하지만 누구나 비밀은 있다. 그리고 그 비밀이란 것을 평생 안고 살아갈 수는 없다. 이미지 클럽은 조금은 특별한 취향을 가진 이들을 위한 일종의 해방구다. 종로 뒷골목이 게이들의 성지이듯, 혹은 이태원이 트랜스젠더들의 도피처이듯.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지겨운 법이다. 어느 순간 이런 플레이가 지겨워진 후, 그들의 취향은 또 어떻게 변할까?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

페티시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 한국은 살기 힘든 곳이다. 여자가 자신의 발을 핥으라고 명령할 때, 제복을 입은 스튜어디스와의 섹스를 상상하거나 여학생의 흰색 면 팬티에서 야릇한 냄새를 맡아야만 좋다는데, 다들 미친 놈 취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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