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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이 괜찮대

On September 11, 2015

김풍은 망가져도 괜찮다고 했다. 심지어 ‘찌질’한 것도 괜찮다고 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누군가의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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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셔츠는 김서룡 옴므, 블랙 뿔테 안경은 스테판 크리스티앙 제품.

검은색 셔츠는 김서룡 옴므, 블랙 뿔테 안경은 스테판 크리스티앙 제품.

어느 날 김풍을 알게 됐다. 한 살 많아서 형이라고 불렀다. 동네 ‘덕후’ 형 같았다. 형은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요리를 엉뚱하게 만들었다. 채소밭을 캐서 오므라이스를 꺼낼 것 같은 형이었다. 이 형이 신기해서 그가 네이버에 연재하는 웹툰 <찌질의 역사>도 봤다. 나랑 똑같았다. 나처럼 평범했고 나처럼 지질했다. 그런데 그 형이 지금 이렇게 됐다. 분명히 동네 형이었는데.

어느 날 처음 <냉장고를 부탁해>를 봤어. 형이 오두방정을 떨며 뭔가 만들더라고. 그게 요리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 그런데 요리였어.
일단 무대에 올라갔잖아. 내 무대잖아. 15분 동안 무대에서 뭘 하든 간에 어쨌든 결론을 도출해야 해. 요리를 만들어내야 한단 말이야. 요리에 자신이 있으면 뭘 해도 상관없어. 생쇼를 해도 상관이 없고 개지랄을 해도 상관이 없어. 공연을 하는 거지. 결론만 나오면 돼, 그 안에서는. 그리고… 콘텐츠잖아.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건 누군가는 즐거워해야 한다는 거지. 이게 내 진정성이야.

요리 공부를 해?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어?
유튜브를 많이 봐. 예를 들면 티라미수를 만들어. 수많은 요리사들이 자기 방식으로 티라미수를 만들 거 아냐. 유튜브를 보면서 몇 개 따라 하면 배우는 게 있어. 그러고 나서 내 색깔을 넣지. 난 항상 다른 사람들이 한 걸 따라 해. 웹툰 <찌질의 역사>도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고 시작한 거고, 요리도 마찬가지야. 다른 셰프들이 하는 걸 따라 하면서 내 걸 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원래 그런 거 아냐? 따라 하지 않고 뭘 배워?

<찌질의 역사> 말이야, 신경 쓰이진 않았어? 사람들이 <건축학개론> 따라 했다고 할까봐.
신경 쓰면 전략적으로 접근하게 되지. 그럼 재미없어져.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좀 달라! 이렇게 말하고 밀어붙이는 거야. <건축학개론>을 보면서 만화로 만들면 더 재밌겠다는 확신이 들었어. 만화는 영화보다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고, 더 많은 에피소드를 풀어놓을 수 있으니까. 주인공들이 왜 변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더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어.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지질해져. 지질함은 순수한 욕망이야. 아니, 욕망을 채우지 못했을 때 드러나는 투정 같은 거지. 누구나 실수를 해. 원치 않는 행동을 할 때도 있고 이기심 때문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어. 그런데 그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 지질함을 인정해야 해. 그래야 극복할 수 있다고. 사람은 두 가지로 나뉘지. 나는 그런 기억이 없는데? 이런 식으로 부정하는 사람이 있고, 그때는 미안했다, 앞으로 내가 두고두고 사과할게, 그런데 나 많이 변했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지.

형은 어느 쪽이야?
후자지. 그런데 전자는… 마음이 더 무거워. 짐을 안고 사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변해, 인간은…. 나는 모르겠어. 고민이야, 본질이라는 게 있느냐 없느냐. 예를 들면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야. 그런데 도덕적인 사고방식을 교육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게 습관이 됐어. 물론 성격도 작용하겠지. 소심해서 눈치를 보거든. 그러면 나의 본질은 무엇이냐는 거지. 사람들은 나의 굴절된 모습을 보고 있어. 작품도 마찬가지야. 굴절된 내 모습이 작품인 거야.

어떤 만화는 만화가의 정치적 성향이 극명하게 드러나잖아. 형 만화는 그렇지는 않네.
작가의 성향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봐. 나는 명확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 무엇인가 정의 내리는 순간 그 이야기는 매력이 사라져버려. 여지를 둬야 해.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단하는 걸 좋아해. 그래야만 명료해지거든. 쉬워지는 거야. 하지만 두근거리지 않잖아. 이 여자가 나를 사랑하는 거야, 안 사랑하는 거야, 모를 때 두근거리는 거야.

<찌질의 역사>에는 남자 주인공이 있고, 남자인 친구들이 등장하잖아. 각각 성격이 달라. 그들 중 누가 형에 가까워?
다 나야.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형의 여러 욕망들이 등장인물로 나타났을 거야. 결국 이 만화의 배경은 1990년대일 수밖에 없었던 거지. 형에게서 시작된 형 자신의 이야기니까.
<찌질의 역사>는 나한테 의미 깊은 만화야. 인기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이 만화를 통해 성찰한 거 같아, 나에 대해.

그런데 형, 참 이상적이네.
작가는 대부분 이상주의자야. 그러면서도 되게 현실적이야. 나, 방송에서 하는 거 봐. 현실주의자야. 하하. 도대체 내 본질은 뭐니?

책 많이 읽어?
아니.

형의 인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거지?
관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하지? 여기에서 출발해.

형이 몇 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어. <찌질의 역사>를 연재하기 전이었으니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겠네. 많은 사람들이 그 시기에 자기 안에 있는 것들을 쏟아내. 고갈되지.
사유한다는 것은 되게 중요해. 특히 요즘은 디지털 시대잖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어. 나는 그때 ‘멍 때렸어’. 그러다가 작은 실마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멀리 깊이 사라지는 걸 봤다면 봤지. 내 안에서 무엇인가 정리되었으려나.

형의 본질을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본질은 없는 거야. 물처럼 살아야 돼. 그릇이 바뀌면 형체가 바뀌듯이, 그렇게.

형은 어릴 때부터 똑똑했니?
뭐가 똑똑해. 하하. 누구나 이 정도는 생각할 수 있어. 시간이 부족해서 생각을 못하는 거지. 나는 생각할 시간이 많았잖아. 만약 어디 귀향 보내서 강압적으로 ‘너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될걸?

<찌질의 역사> 연재 시작하기 전에 4년 놀았나? 마음 편히 생각만 하진 않았을 거 아냐?
어. 조바심도 났고, 다시 웹툰을 연재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어. 웹툰 작가들하고 모여서 술 마시면 빨리 집에 가고 싶었어. 작가들이 자기 웹툰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 자리에 있고 싶지도 않았어. 진짜 나도 죽이는 작품 하나 해야지, 하는 욕심도 있었는데, 집에 가서는 게을러져서는 다음 날 대낮까지 퍼져 자고, 밤에 또 술 먹고, 현실 도피하기 위해서 SNS 하고…. 잉여 생활을 한 거지.

의미가 있었을 거야.
지금 뭔가 잘되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 시간마저 예쁘게 포장되는 거야. 아직 계속 그러고 있었어봐. 잉여 인간이야. 내일부터 작업해야지, 그런데 다음 날 아무것도 안 해. 나도 속이 터져. 내가 왜 이러나 그러면서 SNS를 해. 그러고 앉아 있는 거야. 그런데 그런 것조차 머릿속에 하나하나 박아놓고 있어야 돼. 직시하고 있어야 한단 말이야. 내가 지금 이런 상황이고, 이렇게 잉여 생활을 하고 있고, 게을러빠졌고, 계획한 거 지키지도 못하고, 내일부터는 무조건 시작하는 거야, 라고 다짐하면서도 또 안 하고. 시동이 안 걸려. 그러다가 우연찮은 기회에 시동이 걸릴 때가 있어. 그러면, 그때가 되면, 직시했던 것들이 머릿속에서 막 반짝반짝해. 벗어나야 돼, 지금이 기회야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 그런데 내가 직시하지 않고 피해봐. 애써 걸린 시동이 꺼지지.

자, 이제 미래 이야기를 합시다. 소림사 갔다 왔다며.
응. SBS 파일럿 예능이야. <정글의 법칙> 같은 거야. 제목은 <주먹쥐고 소림사>. 김병만 형이랑 박철민 형, 육중완, 아, 중완이가 진짜 웃겨. 그리고 온주완, 이정신이 나와.

헐. 그 사람들이 다 무술을 배우나? 재밌겠다.

어, 이 프로그램이 남자들의 로망을 건드린다.  

이너로 입은 베이지 톱은 코스, 흰색 패턴 블랙 코트와 흰색 와이드 팬츠는 김서룡 옴므, 갈색 로퍼는 알프레드 던힐, 갈색 뿔테 안경은 스테판 크리스티앙 제품.

이너로 입은 베이지 톱은 코스, 흰색 패턴 블랙 코트와 흰색 와이드 팬츠는 김서룡 옴므, 갈색 로퍼는 알프레드 던힐, 갈색 뿔테 안경은 스테판 크리스티앙 제품.

이너로 입은 베이지 톱은 코스, 흰색 패턴 블랙 코트와 흰색 와이드 팬츠는 김서룡 옴므, 갈색 로퍼는 알프레드 던힐, 갈색 뿔테 안경은 스테판 크리스티앙 제품.

그런데 소림사가 무술을 정말 잘 가르쳐?
어. 나는 삼절곤을 배웠어. 삼절곤이 발전돼서 쌍절곤이 된 거야. 삼절곤 진짜 어려워. 중완이는 독수리권를 배웠어. 아무튼 봐봐. 기대 이상이야. 9월쯤 방송할 거야

<주먹쥐고 소림사>에서 형은 어떤 캐릭터야?
 
개인적으로는 온주완과 겹친다고 생각을 하지. 
 

정신 차려. 
그래, 결과적으로는 육중완하고 겹쳐! 하하. 내가 하는 행동이 육중완하고 똑같더라고. 올리브 TV에서 하는 <비법>도 첫 녹화를 마쳤어. 나랑 윤종신 형이랑 강남이랑 나와. 이것도 괜찮아. 녹화할 때 재미있었어. 
 

윤종신은 요리 잘하나? 
아니, 전혀. <비법>에서는 내가 거의 최현석 급이야. 하하. 웃겨. 내가 최현석 급이라니. 다 요리를 못해. 8월 중에 방송 시작할 거야. 
 

한동안 만화 못 그리겠네?
아니. <찌질의 역사> 시즌 3 해야지. 그걸로 끝이야. “만화랑 비슷해. 주인공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서브 캐릭터들이 받쳐줘야지. 먼저 죽는 애도 있어야 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애도 있어야 하고, 생각 없는 애도 있어야지. 나는 콘텐츠를 완성하고 싶어.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게 아니야.”
 

바빠서 할 수 있겠어?
방송을 줄여서라도 작품을 마무리해야지. 
 

방송 경험이 만화를 그리는 데 도움이 될까?

도움이 되지. 예를 들어 방송도 연출이잖아. 콘텐츠란 말이지. 방송에서 나는 만화 속의 캐릭터와 같아. 캐릭터가 어떻게 움직이면 좋겠다는 연출자의 의도가 있잖아. 캐릭터가 말을 듣나? 안 들을 때도 많지. 캐릭터로서 움직이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 있단 말이지. 낯선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거기서 다른 캐릭터와 충돌하기도 하고. 연출자 입장에서도 보고, 캐릭터의 입장에서도 보고. 연출자와 캐릭터의 싸움과 고민을 역할 놀이하듯 경험하고 있어. 
 

형을 알고 나서 줄곧 느껴왔던 건데 형은 너무 똑똑해. 나는 그래서 형을 경계해. 물론 형을 좋아하지만, 형은 스스로 매니지먼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전략적이랄까.
전략적인 부분이 없지 않지. 그렇지. 머리 굴리면서 사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 그렇지. 그런데 그건 어쩔 수 없어. 나는 창작자야. 작품을 만드는 연출자가 체스 게임을 할 때 하나의 말이 돼서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어. 
 

아, 그런 생각은 못해봤네.
그런데… 프로그램 연출자나 감독이나 PD나 이런 사람들은 출연자가 망가져주기를 바랄 때가 있단 말이지. 그 얘기를 솔직하게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어. 나는 그걸 잘 파악하는 편이야. 그리고 기꺼이 망가지지. 왜냐면 즐거우니까. 사람들이 나를 영민하게 볼 수도 있고 머리 굴린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즐기는 사람이 머리로 생각하고 행동하지는 않잖아. 즐기는 것에 있어서는 순수해. 여기에 어떤 이물이 들어가지 않아. 재밌어. 
 

방송을 계속하겠네? 웹툰 <찌질의 역사> 댓글을 보면 ‘김풍 작가님 방송 출연하느라 웹툰 그릴 시간이 없나 봐요’라고 아쉬워하는 독자들이 많던데.
이미 어느 정도 선을 넘어버렸어.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했으니까.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건, 타깃이 됐다는 거야. 이거는 뭐냐면… 원하든 원치 않든 주목받는다는 뜻이야. 방송을 안 하면 손해인 거지, 이렇게 된 이상. 
 

야심가다.
야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 그런데 나는 돋보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예를 들어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나는 주인공이 아니야. 감초 역할을 하지. 만화랑 비슷해. 주인공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서브 캐릭터들이 받쳐줘야지. 먼저 죽는 애도 있어야 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애도 있어야 하고, 생각 없는 애도 있어야지. 나는 콘텐츠를 완성하고 싶어.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게 아니야. 
 

사람들이 속고 있어.
뭐가? 하하. 
 

형, 되게 어리바리해 보여.
사실 영리한대. 맞아, 어리바리해. 그런데 나는 만화로 해소하잖아. 무엇인가 주도해야 한다는 욕구가 다른 사람보다는 적겠지. 방송이 나한테는 놀이야. 웹툰을 만드는 건 고돼.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해내야 하는 거야. 외롭고 고통스러운 작업이지. 하지만 그 작업을 통해 창작자로서 충분히 존중받고 있어. 그러니까 다른 걸 할 때는 바보같이 굴어도 괜찮아. 
 

장사할 생각은 없어? 음식 장사.
더 배워야지. 깨작깨작하는 거 가지고 장사하고 싶진 않아. 진지해져야 해. 


런데 형 살 좀 빼. 소림사까지 갔다 온 사람이 왜 살은 더 찌냐? 그러다 병난다.

소림사 갔다 왔을 땐 빠졌지. 요즘 다시 찐 거야. 운동해야지. 너무 많이 먹어, 요즘. 아, 운동해야 돼. 운동해야지. 


마지막 질문. 김풍은 이기적인 사람입니까, 이타적인 사람입니까?

본질은 없어.

김풍은 망가져도 괜찮다고 했다. 심지어 ‘찌질’한 것도 괜찮다고 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누군가의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Credit Info

Photography
이상엽
Editor
이우성

2015년 09월호

이달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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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
Editor
이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