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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

메이저들의 성스러운 에너지, 그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최고의 조력자로, 최고의 스승으로, 최고의 창작물의 원천으로 남아서 보이지 않은 리더의 자리를 꿰차고 있을 뿐이다.<br><br>[2006년 9월호]

UpdatedOn August 23, 2006

Photography 한규종

한량의 일상記, 김세영

‘허영만’을 빼고 설명하기 힘든 스토리 작가. ‘도사’ 같은 겉모습처럼 ‘허허’ 웃으며 사는 그는 공부가 아니, 스토리를 쓰는 게 제일 쉬웠을 뿐이란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출퇴근 거리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사나이. 엎드려서 고개를 들면 출근이고, 고개를 내려 베개에 파묻으면 퇴근이다. 옆에 덩그러니 놓인 밥상 위 컴퓨터는 인터넷 뉴스 검색용이다. 작업은 편히 엎드려 손에 쥔 연필로 이뤄진다. 쉰이 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땀 냄새 범벅의 출퇴근 지하철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최고의 ‘스토리 작가’라 불리는 그의 성공기를 들어보려 했더니 그의 잡다한 일상기가 되어버렸다. 지리산에서 타짜 두어 명과 딱 하루 동안 소주를 마시며 들은 이야기로 그 유명한 <타짜> 1부와 2부를 전부 썼다.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딱히 할 일도 없어서 누이의 아이들을 돌봐주다가 <사랑해>를 기획했다. 결혼을 하고 딸을 낳으면서 <사랑해>는 자전적인 이야기로 바뀌었다. 굳이 힘들여 스토리를 지어낼 필요가 없었다. 두발 단속을 피해 머리를 기르고 다녔던 20대 초반에 객기로 시작한 ‘거리생활’은 그의 작품에 꾸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하룻밤 이야기로 20권 가까이를 쓴 작가니 알 만하다. ‘스토리작가’의 위상이 전혀 세워지지 않았던 1970년대 초반,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김세영은 학창시절 내내 손에서 놓지 않았던 만화를 떠올리며 ‘만화나 해보자’는 심산으로 친구들과 경상도 촌구석에 들어갔다. 한 작가로부터 스토리 초안을 받아온 친구 녀석을 통해 ‘스토리 작가’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자리에서 쓴 스토리가 <새로운 노래>였고 그 작품으로 어렵지 않게 곧바로 데뷔했다. “집이 편하지 않은가. 아직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앞으로도 여권 만들 일은 없을 것 같다. 집에 있는 게 제일 좋다.” 집에서 ‘그냥’ 하는 일상적인 일들. 아이를 돌보고, 강아지를 기르고, 책을 읽고, 바둑을 배우고, 아내와 대화하는 이 모든 일상적인 일들은 그의 작품에서 박진감 넘치면서 세밀한 스토리로 꾸며졌다. <카멜레온의 시>, <오! 한강>, <미스터 Q>, <고독한 기타맨> 등 수많은 그의 작품이 그런 소소한 과정을 거쳤다. “만화니까 그림이 중요하지. 그림을 좀 알아야 스토리 쓰는 게 더 생동감 있기도 하고. 허영만 작품이라고 사람들이 말해도 괜찮아요. 그게 만화의 생리니까.” 현재 하고 있는 스포츠 신문 연재가 끝나면 당분간 연재는 하지 않을 계획이다. 그러면 여행 계획이라도 있느냐고 물으니, 집에서 쉴 계획이란다. 그가 집에서 쉬면 쉴수록 더 좋은 작품들이 쏟아지니, 그의 계획에 또 한 번 기대를 걸어봄 직하지 않을까.

Editor 박인영

최고의 승부사, 주훈

온갖 고난을 헤치고 소속팀 SK T1을 최강팀의 반석에 올린 주훈이 카메라 앞에 섰다. Yes, Sir!

비약해 말하자면 그는 메이저리그의 조 토레 감독이고, 프리미어리그의 무링요 감독쯤 되는 인물이다. 그만큼 그가 진두지휘하고 있는 SK T1팀의 위상은 게임계에서만큼은 막강한 위세를 자랑한다. 훗날 10년 혹은 20년 뒤에도 스타리그가 그의 호언장담처럼 살아남는다면 지금은 SK T1팀의 독주시대라고 사가들은 기록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제국의 수장은 결코 나태하지 않았다. 작은 성공에 대한 만족보다 좀 더 큰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폭발적으로 세가 늘어만 가던 황금알을 낳던 거위, 스타크래프트가 어느덧 대중들의 외면을 받을 시기가 왔다는 위기감…. 하여 이젠 스타크래프트가 ‘하는 스포츠’에서 ‘보는 스포츠’로 진화해야 한다는 말을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그는 정통 스포츠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이 게임 산업에 뛰어든다는 주위의 편견에 당당히 맞서왔고, 이제 게임도 완전한 스포츠임을 알리는 선교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일례로, 사이버틱한 우주 전사를 연상케 하던 초창기 게이머의 유니폼은 이제 완전히 트레이닝복으로 바뀌고 있다. 일종의 쇼에서 진지한 스포츠로 바뀌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그는 아디다스 같은 거대 스포츠 브랜드가 자신의 팀을 후원하고 있는 게 게임을 스포츠로 인정하지 않았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며 기뻐했다. 촬영 내내 그 좁아터진 스키니 팬츠를 입으면서도 불평 한 마디 안하던 주훈. 상관의 명령이라면 러커에게라도 “Yes, Sir” 라는 한 마디와 함께 달려드는 불꽃 머린, 그 자체였다.

Editor 김현태

‘귀로’처럼 돌아온 박선주

‘아무 말도 없이 떠나간 그대가 정말 미웠지만’ 그녀가 다시 ‘화려한 불빛’의 무대로 돌아 왔다.
‘노래 선생’이라는 타이틀로, 최고를 만드는 최고가 되어 돌아왔다.

노래 선생 박선주, 그녀가 돌아왔다. 88올림픽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1989년 여름, 그녀는 당시 신인가수 등용문이었던 강변가요제에서 ‘귀로’를 불렀다. 비록 1등은 하지 못했지만 어린 여자가 지니기에는 믿기지 않은 풍성한 보이스로 스테레오 돌비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던 시절에도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그녀의 재능은 대상을 수상한 이보다 더 많은 무대와 가수활동을 보장했다. 그러나 그녀의 무대가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초는 ‘하이틴 로맨스’가 베스트셀러가 되던 때였다. 대중들은 간지럽고 허황된 공상의 감미로움에 빠져 달콤함에 젖어 있었다. 그녀의 깊고 감성적이고 슬픈 음색보다는 가볍고 통통 뛰는 ‘깃털형 발라드’가 판을 쳤다. 성숙한 음악 그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대중스타의 화려함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떠났다. 1995년 3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뉴욕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10년 넘게 그녀는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그녀를 가수라고 기억하는 사람들의 맥이 끊겼다. 대신 그녀는 노래 선생의 길을 걸었다. 그녀는 손호영, 김범수, 시아준수, 서영은, 리쌍이 최고가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줬다. 음반 기획자들은 신인들을 그녀에게 보여주며 될 성싶은 떡잎인지 묻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왜 그녀는 무대를 떠난 것일까? 그녀가 말했다. “첫사랑은 사람들을 기피하게 했죠. 그리고 인간 박선주로 보기보다는 가수 박선주에 대해 뒤에서 쑥덕거리는 모습이 사람을 못 믿게 했어요. 완벽하게 날 보여주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보여주지 말자고 다짐했죠.” 그 다짐은 그녀를 가수이기보다는 음악가로 성장시켰다. 노래 선생이 되고, 노래를 만들고, 음반의 완성도를 높이는 조력자가 됐다. 4집 앨범으로 다시 무대에 선 그녀, 그러나 그녀는 가수보다는 음악가로 불리길 원한다. “아직도 노래하는 즐거움이 날 더 행복하게 만들어요.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무대는 많지 않아요. 나의 것을 보여주고 들려줄 수 없다면 늦고 더디더라도 내가 만들어가면서 들려주고 싶어요.” 다시 10년이 흐른다면 그녀의 깊고 풍성한 음색을 듣지 못할 수도 있다. 그녀의 노래가 듣고 싶다.

Editor 김영진

액션 히어로, 서범식

경추 1번과 2번이 고장 나 고초를 겪은 선화공주의 호위무사, 서범식이 돌아왔다. Ready, Action!

하나 둘 셋넷, 둘둘 셋넷…. 일발의 옆차기를 위해 두 다리를 찢고 또 찢는 그. 일급 호위무사 서범식이 비적을 향해 쾌도난마의 다리를 높이 들었다. 그의 말처럼 영화 무술, 그러니까 그림이 되는 액션은 체육관에서 수련하는 그것과 좀 다르다. 더 화려하고, 미리 약속된 대로 오차 범위 없이 움직여야 한다. 우리는 감쪽같이 편집된 화면으로 그 현란한 동작을 무릎을 쳐가며 본다. 한두 장면을 위해 온종일 몸을 풀고,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몸을 던지며 스러져간 이름 모를 액션 배우들을 기억할 겨를도 없이. <상도>, <대장금>, <올인>, <서동요> 등을 통해 얼굴이 알려진 서범식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그는 요즘도 한국의 성룡, 한국의 장 끌로드 반담을 꿈꾸며 상경하는 후배들을 여럿 본다. 하지만 대역과 스턴트를 반복하는 상황은 늘 여의치 않다. 마지막에 촬영이 이뤄지는 액션신을 위한 오랜 기다림에도 익숙해졌다. 행여 다치기라도 하면 몇 달은 쉬어야 한다. 서범식 또한 성한 곳보다 성치 않은 곳을 찾기가 더 힘든 지경이지만, 그 흔한 고맙다는 말을 듣기 힘들다. 대역 없이 혼자 다했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 일쑤다.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좋은 그림을 위해 몸을 던지는 내가 부끄럽지 않아요. 난 액션 배우니까요.” 그 엷고 맑은 보이스 컬러가 오늘따라 고결하다.

Editor 정석헌

에이스 메이커, 김시진

김시진이다. 1980년대를 ‘주름’잡았다는 표현이 들어맞는 투수 김시진 말이다. 1993년 업종 변경한 그는 투수코치로 또 다른 세상에서 ‘주름’을 잡고 있다.

투수 김시진은 강했지만 약하기도 했다. 최고였지만, 한국시리즈에서만은 불운했다. 발목을 다치기도 했던, 어쩔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당시 큰 선수였지만, 팬들의 요구가 너무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김시진이 투수코치로 자리 잡은 지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는 또 정점에 올라섰다. 이번엔 어떤 상황에서도 강하다. 팬들이 원한 것 이상의 거대한 사람이 되어 돌아온 거다.
1998년 김수경, 2002년 조용준, 2003년 이동학, 2004년 오재영, 2006년 장원삼, 2년차 손승락은 코치 김시진의 손을 거쳐 탄생한 선수들이다. 현대가 투수왕국이라는 칭호를 받은 건 완벽주의자 김시진 코치 덕분이다. 메이저리그의 투수코치 레오 마조니의 한국판 김시진은 “2군 코치를 하라면 못할 것 같습니다. 2군 코치는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걸 챙겨야 하고 가르쳐야 해요. 하지만 1군 코치는 감별사에 가깝죠. 매번 경기에서 최고의 성적을 낼 것 같은 선수를 골라내면 되니까요.”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몇 명의 선수가 미쳐야 하는 줄 아세요? 2명 정도만 신바람을 내주면 그 경기는 승리하죠. 코치는 내일 어떤 선수가 ‘미칠’지 그런 걸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해요.” 더 어려운 일인 것 같지만 그는 어렵지 않다며 손사래를 친다.
“희생 번트가 있고 선발, 세이브 투수, 원포인트 릴리프가 있어요. 모두 선발 투수를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야구를 하겠어요? 팀을 위해 희생하고 내가 칠 수 있을 것 같아도 감독의 지시가 내려오면 자기를 희생해야 하는 게 야구인 거죠.” 야구의 생리를 알기 때문에 최고가 됐고, 그래서 스포트라이트 뒤에 있는 현재 삶에 불만은 없다. 그가 최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선수들의 일거수를 파악하는 거다. 선수들이 감기약을 먹는 것까지 알고 있어야 직성이 풀린다. 우승이 목표냐는 질문에 스포츠엔 2등은 없다고 되받아친다. 1등을 한 후 변명을 할 순 있어도, 2등은 없다는 거다. 2006년 유니콘스의 선전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현재 현대 유니콘스는 2등이다. 김시진과 함께한 2시간, 유니콘스가 9월 5일 시즌 종료와 함께 변명 없는 1등으로 올라설 것만 같았다. 강렬한 ‘포스’가 느껴졌다.

Editor 성범수

영화 스타일리스트, 강승용

보지 못한 역사의 실타래를 차분한 손동작으로 풀어내는 미술감독 강승용, 그의 History!

몇 자의 사료로 3차원의 무대를 세우기까지 그의 상상력은 수만 리의 먼 길을 달린다. 거짓이 될지도 모를 역사의 현장을 재현하고 여기에 대중의 믿음이 확고히 세워질 때 영화는 비로소 드라마로 거듭난다. 그 믿음에 힘을 실어주는 미술감독 강승용. 카메라 앵글에 잡히는 시각적인 것부터 주인공의 눈동자에나 비칠 법한 소소한 감정의 시발탄들까지, 강승용은 자식의 옷매무시를 매만지듯 한다. <왕의 남자>, <실미도>, <황산벌> 등 역사영화의 디자인 프로덕션을 진두지휘한 그에게 미술은 단순히 역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차분한 말투로 그만의 철학을 설명하는 모습에 철근 같은 강직함이 묻어났다. “<왕의 남자>를 촬영할 때 감독과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로 싸워요. 제가 앵글에 잡히지도 않는 곳에 소품을 놓으려 하면 그는 왜 보이지도 않는 곳까지 그러느냐며 한 마디 하죠. 하지만 그 부분이 중요한 건, 행여 그것이 앵글이 아닌 연기자의 눈에 비치게 된다면 배우는 분명 더욱 몰입된 감정을 보여주죠. 단순한 세트가 아니라 그 속에서 연기할, 영화를 찍어낼 스태프 모두에게 살아 있는 긴장감을 주는 것이어야 해요.” 그 긴장감이 드라마의 완성도에 미치는 영향은 연기자의 진지한 눈빛으로 읽어낼 수 있다. 1993년 테러리스트를 시작으로 그가 만드는 시간의 폭은 점점 넓어지고 공간의 깊이감 또한 다른 이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깊다. 역사가 영원한 숙제라는 그의 말처럼, 대중이 믿을 수 있는 영화미술을 만드는 그의 손이 여전히 바쁘게 움직일 것을 기대한다.

Editor 김민정

파인더 안의 눈동자, 오현제

촬영감독 오현제가 들여다보는 파인더 안의 세상은 영혼들이 노니는 곳이다.

“몸을 벽 쪽으로 더 기대세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쓰윽’하는 느낌으로 카메라를 보세요. 네, 아주 좋습니다” 촬영감독 오현제, 그가 한 말이 아니다. 지금 그는 역지사지의 상황에 놓여 있다. “아니요, 손에 든 필름통을 들고만 계시지 말고 가지고 놀아보세요. 뭐, 비어 있지만 필름이 잘 있는지 없는지.” 그는 잘했을까? <바이준>으로 촬영감독이 된 후 18년 동안 파인더만을 보아온 사람이다. 파인더의 사물 위치와 사람의 움직임과 그들의 감정을 좇아온 삶이다. 그가 지금 그 파인더 안에 들어가 있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파인더 안에 자신이 어떤 피사체로 놓여 있을지, 한 컷의 사진 속에 자신의 내면이 온전히 담길 수 있을지…. 그 역시 자신의 앵글 안에 수없이 많은 세계의 빛을 담고자 했을 것이다. <바이준>에서 김하늘과 유지태의 닿을 듯 말 듯한 감정의 빛을 담으려 했을 테고, <아카시아>에서 나무의 령을 끄집어내려 했을 테다. <사생결단>에서는 사선에 선 두 남자의 철저한 자기 파괴의 과정을 묵묵히 지켜봤을 것이다. 그는 파인더 안에 자신의 어떤 모습이 담기길 원할까? “똑같은 시나리오의 같은 신을 보더라도 그 느낌이 달라요. 내 머릿속에 잡히는 상이 달라진 거죠. 이제야 깊이가 생기는 것 같아요. 멋을 부리기보다 카메라 앵글을 통해 사물에 나의 감성을 더 핍진시키는 거죠.” 시간이 갈수록 그의 눈동자는 카메라 앵글 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흐트러지던 시선이 또렷해졌고 렌즈 표면에 미끄러지던 눈빛이 렌즈의 단층을 투과해왔다. 그는 감정이 사람의 몸 밖에서 어떻게 유영하는지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다루고 싶고 찍고 싶은 것은 사람의 섬세한 감정의 선들과 그 폭이죠.” 그가 모니터에 다가와 자신의 모습을 본다. 어떤 기분일까? 마음으로만 짚어본 자신의 감성, 그는 봤을까? 그의 빛나는 눈동자를 말이다.

Editor 김영진

넥스트 파워, 김세황·데빈·지현수

음악은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 말고도 꼭 해야 하는 거라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Life is just ‘Rock ‘N’roll’!

‘교주’라 불리는 보컬, 신해철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넥스트’는 신해철 밴드로 많이 알려져 있다. 물론 <넥스트> 외에도 <노바소닉>, <투셀>에서 활동했고 수많은 가수들의 세션활동을 한 기타리스트 김세황의 무대 매너와 테크니션 때문에 마니아 팬이 많지만 말이다. 신해철의 뛰어난 말발과 카리스마가 압도적인 것은 사실이며, 신해철과 ‘아이들’은 아닐지라도 ‘신해철’ 밴드라는 인식은 강하다. 이에 대한 멤버들의 반응? “워낙에 삶 자체가 아티스트적인 사람이에요. 그의 카리스마는 엄청나죠. 게다가 밥도 잘 사주기 때문에 별 불만은 없어요.”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고(데빈 리) 키보드를 치는(지현수) 뮤지션들이다. 이들은 음악적 성향과 마음이 맞는 멤버들을 만났다며 그걸로 만족한다고 했다. 그렇더라도 얼굴 없는 밴드 멤버가 되기에 이들은 좀 특별하다. 데빈은 ‘비트겐슈타인’을 결성해 활동한 경력이 있고 문차일드, 김동률, 싸이, 채연, 장우혁 등 여러 가수들의 앨범 크레디트에 올라가 있다. 지현수 역시 뮤지컬 <록키 호러 쇼>에 출연했는가 하면 <패션 70’s>, <해신 장보고>, <결혼이야기> 등 여러 드라마에서 음악을 담당했다. 김세황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 최고의 기타리스트. 이들의 화려한 경력은 보컬이 도드라져 보이는 밴드의 멤버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최고의 뮤지션들과 떠들썩하게 시작한 수다는 역시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끝이 났다. ‘음악’ 이외의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넥스트>의 ‘넥스트’ 앨범에도 고스란히 담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Editor 박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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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 한규종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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