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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물건

On May 21, 2015

주말이면 아버지는 안방에 누워 무협지를 읽거나 홀로 바둑을 두었다. 20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바둑을 둘 줄 모르고, 무협소설의 재미가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바둑판이나 무협지를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때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모르는 아버지의 시간이 무협지와 바둑판에 새겨져 있다. 아버지이기 전, 남자의 생이 묻어 있다.

1 우표 스크랩북

취미가 뭐예요? 하는 질문에 제일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대답은 바로 우표 수집이 아닐까 싶다. 거기다 한 술 더해 스마트한 이 세상에 우표 수집이란 취미는 이제는 사라진 전설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한마디로 ‘아직도 그런 걸 모으는 사람이 있어?’라고 물을 법한 그 취미를 우리 아버지는 즐기신다.

우표만 모으시는 건 아니다. 신문도 모으신다. 폐지를 모아다 파는 경제적인 이유는 아니다. 신문을 스크랩하시는 거다. ‘아직도 신문을 보는 사람이 있어?’란 시대에 심지어 모으기까지 하신다. 환상의 궁합이다. 우표에 신문. <아레나>의 연락이 없었다면, 이렇게 들춰볼 일도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에겐 보물이라 곱게 창고에 모셔두었던 그 아이들을 모처럼 들춰보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들춰보는데 은근 재미있었다.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비의 결혼 기념우표는 화려하고 예쁘다. 뭔가 앤티크하다고 할까?

그와 관련된 기사가 함께 스크랩되어 있는데, ‘결혼식은 말이지 둘이 어떻게 만났냐면’ 이러면서 마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를 기념하는 우표도 있다. 화보 같다고 할까? 다른 책에는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산악인의 이야기와 기념우표가 함께 있다. 문득 아버지는 단순히 우표와 신문을 모으신 게 아니라 지나가는 시간들을 모아둔 게 아닌가 싶다.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놀라웠던 시간들을 우표와 신문 수집을 통해 저장해두셨던 걸까? 아버지가 기억하고 싶던 순간들, 아직 들춰보지 못한 그가 모아놓은 시간들이 문득 궁금해진다.
_이수현(작가) 

 



2 로모 루비텔 2 카메라

루비텔2 후기 모델은 1972년 이후 생산되었다. 이것을 아버지는 20세가 되던 해 구매하셨다. 이유는 딱 하나, 멋져 보여서란다. 흔한 카메라는 싫고 비싸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멋있어 보이는 카메라를 구매하신 거다.

덕분에 그날부터 며칠 밤낮을 영어 사용설명서를 붙잡고 놓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안 렌즈를 사용하고 120mm 필름을 사용하는 중형 카메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들고 주말마다 이곳저곳을 여행하셨다고 한다.

피는 못 속인다 했던가? 역마살은 내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렇게 첫 카메라를 애지중지하며 아버지의 20대 추억을 되새기면서 내가 사진에 관심을 보이자 아버지는 그야말로 ‘장롱 속 카메라’인 루비텔2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나도 젊음을 시작할 나이 20세였다. 지금까지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카메라를 가지고 있던 아버지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루비텔(Lubitel)은 러시아어로 아마추어라는 뜻이다. 그래서였을까? 항상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고 기본에 충실해야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배움에 있어서 기초는 지금 내가 사진가로서 행복한 삶을 묵묵히 지속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_백종선(포토그래퍼)

 

 

3 시노미 휠 낚싯대

아버지는 강원도 주문진으로 바닷가에서 성장해 자연스럽게 낚시와 친해지셨다. 나도 어렸을 적엔 아버지와 낚시를 자주 다닌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을 되새기려 하면 자세히 생각나진 않는다. 어릴 적 사진첩에 낚시터에서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을 뿐이다.

으레 아버지와 아들이 그러하듯 세월이 갈수록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낚시를 가자는 말이 조금씩 줄어들었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날은 서운해하셨다. 커서 내가 낚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는 왠지 모를 거리감에 선뜻 제안을 하기 힘들었다. 이제 와 나도 아빠가 되어 아들과 놀아줄 시간도 없이 바빠지고 나니 당시 아버지가 느꼈을 감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아버지는 아들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추억을 남기려 노력하셨다는 것을.

그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그래도 아버지는 낚시를 가셨다. 아버지는 홀로 바다를 찾으셨고, 작은 바위에 올라가 낚싯줄을 바닷속으로 던지셨을 것이다. 한동안은 바다를 바라보셨을 테지만, 나는 그 순간 아버지의 눈빛이 어떤 색을 띠었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바닷바람과 비린내만이 머물렀을 것이다.
_전근화(뮤지션) 

 



4 매킨토시 1963년형 C22 프리앰프

어느 집이나 그 집만의 소리가 있다. 다른 집에서는 들을 수 없는 그 가정만의 소리다. 이웃집이 낯선 것은 그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생소해서다. 집의 소리는 가족 구성원들의 목소리, 부엌에서 들리는 식용유에 음식 튀기는 소리, 서로 다른 보폭들이 마루를 울리는 소리다. 어릴 적 우리 집의 소리는 조금 특별했다. 아버지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시면 음악을 틀었다.

진공관으로 된 매킨토시 C22 프리앰프에 스피커를 연결해서 음악을 들으셨다. 아버지의 취미 생활이었다. 저녁 밥상이 차려지고, 우리가 젓가락질을 할 때, 쇠와 쇠가 맞닿는 자그만한 소리 뒤로 매킨토시 진공관 앰프의 따뜻한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고 우리가 교양 넘치는 클래식 음악만을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 당시 유행했던 카페 음악을 주로 들었다. 진공관 앰프 앞에서 볼륨을 조절하던 아버지 옆에 앉아 함께 음악을 듣던 시절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시절의 음악은 유독 따뜻했다. 아버지와는 여전히 함께하지만 부자간의 그런 맛을 못 느낀 지는 오래되었다. 그 시절이 오래되었음을 깨닫는다.
_정민석(로이코 마케팅 팀장)

5 미즈노 야구 글러브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할아버지는 1940년대 실업 야구팀 농협에서 등번호 7번 유격수로 뛰셨다. 야구선수의 피가 흐르는 탓인지 우리 삼부자는 모태 야구광이다. 어릴 적 아버지는 주말마다 나를 학교 운동장에 데려가 할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매우 엄격하게 훈련시키셨는데 나의 스윙이나 피칭이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칠 때는 혼쭐이 나기도 했다. 아버지와의 야구는 항상 긴장감이 가득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현재 사회인 야구단 소속 선수로 야구를 계속 하고 있고 무서운 선생님이셨던 아버지는 이제 나와 캐치볼 하기도 버거울 정도가 되셨다. 어느 날 문득 아버지 몸이 불편해지시기 전에 그라운드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함께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의 설득으로 아버지는 내가 속한 야구단에 입단하셨고 젊은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무척 열심히 뛰신다. 단 한 개의 내야 안타. 입단 후 약 2년 동안 아버지가 친 안타의 전부다.

삼진을 당하고 더그아웃을 향하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세월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버지의 자존심에 상처가 될까 아무 말 없이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으로 어색한 순간을 넘긴다. 그라운드에서는 늘 쑥스러운 미소 이외에 내색 없는, 이제는 몸이 따라주지 않는 타율 5푼 이하의 야구광. 집에 돌아오면 아무 말 없이 베란다에서 흙 묻은 스파이크를 손질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때마다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야구를 향한 자신만의 치열한 열정이 있음을 느끼며 늦게나마 아버지와 함께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_김정민(건축가)

 

6 모토로라 2G 휴대폰

1995년에는 삐삐가 갖고 싶었다. 학생이었던 나로서는 돈을 모아 구입해야 하는 최첨단 기기였다. 디자인과 성능을 비교해가며 어떤 제품을 구입해야 하나 고민했었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다. 늘 바쁘게 통화하셨다. 아버지와 함께 휴대폰 대리점에 갔다. 아버지는 최신 휴대폰을 고르고, 나는 삐삐를 골랐다. 내가 살 수 있는 것과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의 괴리는 컸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아버지는 거대해 보였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 치열하게 살아가시는 아버지.

나도 언젠가는 아버지처럼 휴대폰을 사용하는 날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휴대폰 할부 납입이 끝나기도 전에 IMF 사태가 터졌다. 아버지의 사업은 휘청거렸다. 아버지는 더 자주 휴대폰을 붙잡고 계셨다. 더 이상 휴대폰은 아버지에게 장난감이 아니었다. 나는 삐삐를 들고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조차 없다. 시간이 지났다. 지금 나는 새로운 스마트폰을 리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전화나 문자 말고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직 전화만 할 수 있었던 2G 휴대폰으로 우리 가족을 먹여살리셨다.
_최호섭(<블로터닷넷> 기자)

7 야마하 색소폰

아버지는 군인이다. 춥던 시절에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올해로 44년 되셨다. 겪으신 일들이 그간 사용한 탄피보다 많겠지만, 이번 기회에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장난감은 바로 영롱한 금색 금관악기, 색소폰이다. 색소폰을 부는 군인이라니 얼마나 로맨틱한가?

어머니는 성악가시다. 음악을 사랑하시며 어릴 적 아침마다 피아노와 찬양 소리를 들려주시던 어머니는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아버지도 결혼 전 어머니의 그 예술혼에 빠지셨을 터, 그 와중에 피어났을 예술에 대한 동경이 쉽게 이해가 간다.

아버지는 그렇게 동경하던 예술 행위에 동참하고자 수년 전부터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스스로 즐기고 느끼며 아직도 배움과 가르침을 계속 이어 나가신다. 사실 아버지의 색소폰 실력이나 기교는 나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항상 스스로 묻고 답하며 주변인들과 어울려 매일 실천하는 그 모습은 지금도 나에게 강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_고영대(뮤지션)

주말이면 아버지는 안방에 누워 무협지를 읽거나 홀로 바둑을 두었다. 20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바둑을 둘 줄 모르고, 무협소설의 재미가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바둑판이나 무협지를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때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모르는 아버지의 시간이 무협지와 바둑판에 새겨져 있다. 아버지이기 전, 남자의 생이 묻어 있다.

Credit Info

Photography
조성재
Assistant
권승훈
Editor
조진혁

2015년 05월호

이달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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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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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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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