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HOME > REPORTS

올해의 남자

On December 12, 2014

오직 영화. 올해 정우성이 걸어온 길이다. 개봉작 두 편에 출연하고, 단편 영화를 연출하며,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극장에서만 정우성을 본다. 하지만 정우성은 극장에만 있지 않았다. 현장에서, 영화인으로서 뜨겁게 움직였다. 진짜 정우성의 한 해는 치열했다.

▲ 머플러 장식이 있는 카키색 캐시미어 니트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쿠튀르, 39mm 로즈골드 시계는 헤리티지 퍼페추얼 캘린더 몽블랑 제품.

Profile
정우성은 <구미호>로 데뷔했다. 딱 20년 전이었다. 흔들리는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시대가 요구한 청춘의 단면을 그는 본능적으로 품고 있었다. 그 매력을 <아스팔트 사나이>로 재확인하고, <본 투 킬>로 강화했다. 그리고 <비트>에서 발화시켰다. <비트> 이전과 이후로, 반항적인 청춘의 모습은 달라졌다. 그 기준은 정우성이었다. 이후 그는 자신을 몰아붙여 도전하는 걸 즐겼다. <태양은 없다> <무사> <똥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을 통해 그는 끊임없이 가능성을 탐구했다. 그 사이 <내 머릿속의 지우개>에선 로맨티시스트가 되고, <검우강호>에선 검객도 되었다. 수많은 작품 속에서 변하지 않은 건 하나였다. 무엇을 하든 정우성으로서 존재감이 뚜렷했다. 올해 역시. <신의 한 수>와 <마담 뺑덕> 모두 기존 정우성과 같으면서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정우성은 여전히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데뷔 20주년 관련해 올해 이것저것 했나?
별것 안 했다. 20주년 기념 캘린더 만들어서 주변에 조금 돌리고 영진위(영화진흥위원회) 영화 기록보관소에서 20주년 특별 상영회 같은 거 하자고 해서 연초에 한 정도다.

연말에 파티 같은 건 안 하나? 작년에는 배우 이정재 데뷔 20주년 파티가 있었다.
그때 나도 갔는데 정재 씨가 쑥스러워하더라고, 하하. 정재 씨가 새 사무실에 들어간 때여서 사무실에서 마련해준 파티였다. 내 파티는, 모르겠다. 올 한 해 계속 달려와서 아직 놀 여유는 없다. 내가 제작 겸 주연을 맡은 영화의 후반 작업도 해야 하고. 아무래도 신인 감독이니까 옆에서 봐줘야 하는 상황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떤 일을 20년 동안 해왔다는 건 자축할 일이다.
글쎄, 내 20주년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지는 모르겠는데, 나 스스로 돌아보면 지난 20년을 헛되게, 어떻게 보면 명예나 수식어에 얽매이지 않고 영화라는 작업에 대해 많이 습득하고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살아갈 20년을 생각할 때 이제 뭔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된 것 같다. 나름 20년을 기특하게 보냈다고 생각한다. 준비된 신인이 된 거다.

준비된 신인이란 말이 재밌다. 겸손해 보이기도 하면서 스스로 다잡는 느낌도 있다.
욕심이 많은 거다. 경험한 것 안에 내가 있다고 볼 때 아직 못 해본 것들이 더 많다. 지난 작품들을 보면 아쉬움도 꽤 있고. 그러니까 그런 아쉬움을, 그런 오점을 안 남기고자 하는 욕구와 다른 부분에 대한 욕심이 있기에 준비된 신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부분이 욕심 나나?
오랫동안 감독을 하겠다고 프로덕션도 만들어서 시나리오 작업하다가 배우로서 작품에 참여하느라 미뤄둔 영화 속 새로운 꿈도 이뤄야 하고, 이제 얼떨결에 신인 감독을 데리고 제작을 시작했으니 그것도 해내야 한다. 많은 걸 배우면서 자신감도 생긴다. 이제 내 머릿속에 있는 여러 이야기를 영화로 펼칠 신인 감독과 함께 그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선별해 옆에서 견인해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생각만 하던 걸 막상 해보니 다를 듯하다.
대화하면서 서로 충분히 이해했다고 하지만, 각자 이해의 척도라는 게 있잖나. 영화는 그 합일된 이해를 형태적으로, 비주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 안에서 상충하는 부분들이 계속 돌출한다. 아까 나와 대화할 때 얘기한 것과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네? 이런 것들. 또 감독이 그리려는 부분이 이 영화의 장르에 맞고 관객을 이해시킬 수 있는 보편타당한 영상 언어인가 다잡아줘야 하기도 하고. 현장은 수십 명의 스태프가 감독이 그리고자 하는 비주얼을 만들기 위해 기다린다. 그때 혼선이 생기면 카오스에 빠진다. 그런 것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단순히 제작자가 아니라 현장 프로듀서 역할도 했나 보다.
제작자이면서 주연 배우로 현장에 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총괄 프로듀서 역할을 했다. 다행이다. 만약 내가 제작만 하고 현장에서 빠져 있었으면 돌출하는 혼선을 다잡을 수 있는 시간을 겪지 못했을 테니까.

제작자로서 현장에서 혹독하게 경험한 값진 시간이었겠다.
물론이다. 배우로서 내 분량만 촬영하며 현장에 앉아 있을 때와 달랐다. 책임감의 무게가 다르니까. 그런 시간을 통해, 물론 신인 감독도 상업 영화를 알아가는 고된 시간을 보냈겠지만, 나 스스로도 신인 감독을 견인하면서 나름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 일을 즐기고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기에 굉장히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배우로 생활한 시간이 도움이 되던가?
배우이기에 분명히 숏에 대한 감이 있다. 이번에 미디엄 들어갔으니 다음에 바스트 들어가야 하는 기술적인 면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이 부분에선 이런 감성이니까 이 숏이 꼭 필요하다는, 배우이기에 본능적으로 아는 지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유리하다고 본다. 물론 정규 교육으로 연출을 공부하지 않았기에 내가 펼치는 영상 언어가 이론적으로 바른 공식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새로울 수 있는 거 같다.

제작자로서도 현장에 있었으니 자신은 물론 스태프도 색다른 느낌이었겠다.
예산을 운용할 때도 내가 현장에서 보이는 대로 얘기했다. ‘왜 돈을 여기 이렇게 쓸데없이 쓰니?’ ‘왜 보조 출연 열 명 부르면 될 걸 서른 명 불러서 이런 낭비를 하니?’ 이런 말을 내게 듣는 친구들은 배우 정우성만 알아서 새로웠겠지만, 난 예전부터 현장에서 저렇게 안 해도 될 텐데, 하고 늘 생각해왔다. 20년 동안 배우로서만 현장에 오가지 않았으니까. 배우가 되고부터 모든 현장이 내겐 호기심거리였다. 모든 작품을 다 그런 시선으로 봤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 속에 감독이라는 꿈도 생긴 거고.

올해 영화 두 편에 출연하고, 단편 영화를 연출하고, 아시아나단편영화제 심사위원도 하고, 제작도 하는 등 알차다. 20주년이란 특별한 의미도 있는 해니까 더.
글쎄, 하하. 의도치는 않았는데 그렇게 됐다. 40대라는 나이가 일할 때 갈구하는 정도나 에너지가 제일 큰 거 같다. <신의 한 수> 촬영을 끝내고 바로 <마담 뺑덕> 촬영을 준비했다. 그때 마침 홍콩국제영화제에서 배우 출신 감독이 단편을 연출하는 섹션이 있으니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그때 다음에 하지, 하기보다는 시간이 없더라도 쪼개서 좀 해야지, 했다. 어릴 때는 다음에 하면 돼, 하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으면 지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더라. 40대에 접어들면서 그랬다.

예전에 하던 건 재미없으니 새로운 걸 해볼까 하는 용기나 의욕이 생겨서 그런가?
그렇진 않다. 그보다 30대는 시간 여유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간에 대한 자만이랄까. 다음에 하면 되잖아, 이랬는데 40대가 되니까 내 앞에 있는 건 할 수 있는 이 시간에 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짙은 회색 코트·회색 체크무늬 수트·검은색 터틀넥 니트는
    모두 구찌 제품.
  • 검은색 송치 코트·회색 니트·회색 팬츠는 모두 보테가 베네타
    검은색 송치머플러는 마르니by 쿤 제품.

올해 두 작품을 보고 원하는 역할을 맘껏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의 한 수>의 태석은 무협지의 주인공 같고, <마담 뺑덕>의 학규는 허물어지는 남자다. 둘 다 남자가 애착을 느낄 만한 배역이다. 배우로서 배불렀겠다.
후배들이 필모그래피를, 어떤 형태적으로 쌓고자 하는 욕심에 장르와 장르를 급하게 뛰어넘는 경우가 보이더라. 스스로 선택했다면 영화와 영화 사이의 간격이 짧아도 맡은 캐릭터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는 집중도를 보여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 저 영화 자신의 이름을 팔고 다니는 후배들이 보인다. 그런 방식은 굉장히 주의해야 한다. 요새 한국 영화가 1천7백만이 드는 흥행작이 나올 정도로 호황이다 보니 이때 안 하면 언제 하겠냐며 여러 작품을 한다. 다작, 물론 좋다. 하지만 작품마다 본질에 다가서려는 충실함은 보여야 한다. 흉내 내는 정도로 연기하는, 형태적으로 연기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한다. 조금이나마 자극을 줄 수 있는 선배가 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올해 작품 이면에 담겨 있다.

그런 면에서 올해 만족하나?
<마담 뺑덕> 끝내고 아직 가제인 <나를 잊지 말아요>를 바로 촬영했다. 올해 세 작품을 이어 붙여보면 사람들이 어떻게 1년 안에 저렇게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지? 할 정도로 스스로 자신할 수 있을 만큼 노력한 한 해였다.

올해 <인간중독>과 <마담 뺑덕>의 섹스 신이 신선했다. 30대 후반 넘은 남자 스타 배우가 다 벗고 연기하는 모습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30대 후반을 넘으니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각오가 생긴 건가?
그렇진 않다. 30대 때 나를 자극한 베드 신이 있는 시나리오가 없었기 때문에 안 한 거다. 30대 때 하면 멋을 부리긴 했을 거다. 섹시하게 잘 보여야 해, 하면서. 어찌 되었든 40대가 되어 <마담 뺑덕>에서 베드 신을 찍게 되자 보여주기 위한 베드 신이 아니라 진짜 캐릭터가 그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여주고 싶어 더 노골적이고 치열하게, 타협하지 않고 촬영했다.

이런 점도 신선했다. 예전에는 정우성이란 배우는 멋있는데 정우성의 연기는 좀 덜 멋있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엔 덜 멋있는 부분, 어색한 느낌도 그냥 그 캐릭터로 보일 정도로 역할에 붙더라. 그게 관록이고 경력인가?
아무래도 어릴 때는 외모가 더 주목받는 배우로 사람들이 인식했으니까. 나 스스로도 외모와 상관없이 그 캐릭터에 맞는 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외모와 연기에 일치점이 있는지 없는지 상관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러다가 어떤 연기를 할 때 내 외모에 맞는, 외모와 연기를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을 찾으려는 시간도 보냈다. 또 시간이 흐르면서 힘이 많이 풀리기도 했고. 관객 입장에선 스크린에서 연기하는 정우성 말고 다른 모습도 무의식으로 인식하고 있을 테니까, 그런 점들이 발전된 내 연기와 만나 소통하는 지점이 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40대 배우인데도 <신의 한 수>의 만화 주인공 같은 역할이 어울린다. 그건 분명히 장점이다.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지금까지 갖고 있는 외형적인 장점이겠다. 그런 장르에 잘 맞긴 하니까. 하지만 반대 경우로, 일상적인 캐릭터는 연기하긴 하는데 착 달라붙지 않는 지점이 있다. 일장일단이 있다.

2년 전에 만나 인터뷰할 때 영화인으로서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이제 연출과 제작 등 다른 식으로 영화를 만들며 현실로 구현하고 있다.
꿈을 품는 게 중요하다. 꿈을 품고 있어야 실행할 수 있다. 외국은 배우가 감독이나 프로듀서로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 좋다. 자본력도 풍부하고, 배우가 연출이나 제작을 했을 때 파급 효과가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 그걸 이용할 줄도 알고. 하지만 한국 영화계는 그렇지 않다. 시장이 확장된 것도 근 몇 년 사이니까. 그러다 보니까 영화계에서 각 파트별로 아직 여유가 없다. 배우가 연출이나 제작을 하면 업계 내에서, 예전보다는 많이 풀어졌지만, 어떤 경계 의식이 아직까지는 있다. 이제는 연륜도 있으니 그런 시선을 더 용기 있게 받아내면서 나갈 수 있다.

정우성과 함께 일한 배우나 스태프, 현장에서 만난 선배 기자도 정우성의 부드러움을 칭찬한다. 사람을 대할 때 자상함이, 부드러움이 진실로 느껴진다고.
그런가? 하하. 원래 성격이 그랬다. 어릴 적부터 상대 배우와 연기할 때 상대의 연기를 잡아먹는 리액션을 하지 않았다. 그 배우의 연기를 그냥 받아주는 리액션을 했다. 어릴 적부터 주인공을 하다 보니까 내 연기가 주인공이어야 해, 하면서 연기하지 않아도 되어서 그런지 많이 받아줬다. 어떨 땐 너무 쉽게 받아줬나?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번에 <마담 뺑덕>에서 만난 이솜 씨처럼 긴 롤을 맡은 적 없는 동료 배우에게는 내가 편안하고 포근한 안내자가 되어줄 수 있는 거다. 남을 알아보고 남의 얘기를 포용하고 흡수하는 자세는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스타여서 대중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몸에 배어서 그런가 싶었다.
일부러 그런 자세를 몸에 익히려고 할 수도 없고, 전략적이라기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진심을 전달하려고 한 거다. 배우는 캐릭터를 표현해서 연기로 관객에게 전달하지 않나. 혹은 인터뷰할 때도 자기 속내를 전달해야 한다. 그러니까 진심으로 해야 한다.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진지해야 하고.

삶을 예의 바르게 대한다고 해야 할까?
자기 삶에 예의 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남에게도, 세상에게도 그렇지 않나. 자기 삶에 예의 바르지 않으면서 남에게 예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 벌키한 니트·체크무늬 팬츠·체크무늬 머플러는 모두 톰 포드
    제품.
  • 나뭇잎 무늬의 낙낙한 나일론 코트·회색 수트는 모두
    버버리 프로섬, 첼시 부츠는 벨루티 제품.

지난번에 인터뷰하면서 단편 영화를 먼저 찍어보라고 얘기했다. 결국 단편 영화를 찍었다. 제목이 <킬러 앞에 노인>이다. 킬러나 요인 역할을 많이 맡아서 킬러를 소재로 썼나? 하는 실없는 생각도 했다.
<킬러 앞에 노인>은 킬러보다 노인이 주인공이다. 50대 후반의 킬러가 건들지 않아도 죽을 듯한 비실비실한 노인을 죽여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 그 노인을 바라보는 50대 킬러는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그걸 모티브로 만들었다. 킬러는 짧은 시간에 극단적인 상황을 표현하기 좋아서 선택했을 뿐이다. 흥미로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첫 단편 영화를 찍은 소감을 안 물을 수 없다.
뭐, 그냥 찍은 거다. 단편 영화이기 때문에 장편 상업 영화처럼 거창한 서식 같은 게 필요 없었다. 단편은 단편다워야 하니까. 내가 생각한 소재 안에서 단편다운 행위는 다 했다. 단편 찍었다고 연출이 이런 맛이구나, 편집이 이런 느낌이야! 이런 건 아니었다. 워낙 그런 부분이 익숙하기 때문에 그냥 한 거다, 하하.

확실히 올해가 전환점이기는 하다. 연출에, 제작에, 영화인으로서 두근거리는 행보다.
사실 신난다. 이번에 영화를 제작하면서 망하지만 말자는 간절한 마음은 있었지만, 이걸로 뭐 남들에게 보란 듯이 난 이렇게 해냈어, 하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작품 한 편 끝내서 로또 맞듯이 대박 터뜨리고 말 것도 아니니까. 지금도 신인 감독이랑 계약해서 진행하는 영화도 있고, 내 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기성 감독과 함께할 시나리오도 쓰는 등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한 편 때문에 두근거리고 혹은 스트레스 받으면 앞으로 가야 할 많은 길을 어떻게 가겠나. 다 이겨내고 해나가야 하는 이 길 자체가 신난다. 물론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즐기고 있다.

걱정거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무서울 거 없다는 자세가 느껴진다.
무섭다… 세상이 무섭거나, 일이 무섭다는 생각이나 단어를 개입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가족이 돌봐주거나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지도 않고, 그렇다고 학교에서 잘 배운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 혼자 세상에 튀어나와 살아왔다. 최선을 다하다가 지갑을 잃어버리면 그때의 운이지 그렇다고 내가 죽을 일은 아니니 어떤 일이 닥쳐도 하나씩 받아들이고 가면 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살다 보면 쉽지는 않잖나.
마음가짐은 내가 마음을 어디다 두느냐 하는 차이다. 쉽지 않다는 건 핑계다. 마음을 그쪽에 더 두고 싶기 때문인 거다.

런던한국영화제에서 특별전이 열린다(인터뷰 다음 날 런던으로 그는 떠났다). 외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배우 정우성의 특별전. 연말을 장식하는 행사로 그럴듯하다.
사실 좀 웃기다, 하하. 이번 특별전과 하와이국제영화제에서 특별 공로상 받은 것도. 지금 내가 갈 길이 먼데 (벌써 이 나이에) 무슨 특별전이야, 이런 생각이 든다, 하하. 예전부터 얘기해서 가긴 가는데 걱정되기도 한다. 1990년대 초부터 후반까지 필름 보관 상태가 상당히 나쁘다. 보관 상태가 좋지 않은 영화들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아무튼 가서 봐야지. 재미있을 거 같긴 하다.

최근에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로 네팔에도 다녀오고 런던에도 가고 바쁘게 보낸다.
어릴 적부터 그런 활동에 관심이 있었다. 물론 어릴 적엔 유엔난민기구와 함께할 거란 생각을 하진 못했지만. 이것 역시 난민기구에서 제안했을 때 자꾸 미루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하자는 마음에 수락했다. 세계적으로 크게 난민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 기구니까 같이 하면 좋겠다 싶었다.

지금 시기에 연락만 하면 섭외든 뭐든 다 하는 건가? ‘미루지 말고’ 마음으로.
30대 때는 패션 사업이다 뭐다 나랑 상관없는 것들을 고민하며 하고 싶으니 해보자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것들은 딱 거절한다. 내가 속해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려는 거다.

그런 마음을 확장하면 한국 영화계의 문제점을 공론화해 영향력을 미치는 역할까지 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정치적인 영향력.
그런가? 내부에서 개혁하거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건 좀 더 선배가 되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소위 정치적인 이슈를 앞세워 세상 사람에게 떠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

굿 다운로더 캠페인이라든가 여러 활동을 하는 배우 안성기처럼 할 수 있지 않나.
지금 안 선배님이 그런 식으로 가장 좋은 영향력이 있는 분이니까. 소란스럽지 않게 조용히, 게다가 본인이 먼저 실천하시니까 선배님이 어떤 마음으로 실천하는지 볼 줄 아는 후배들이 따라갈 만한 분이시다.

그 바통을 이으면?
에이, 바통은 뭐, 하하. 아직 선배님도 건재하신데 내가 뭐. 아무튼 잘해야 한다. 좋은 선배가 되는 게 내 꿈이다. 업계에서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 그렇다고 조급하게 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구력이다.

지난번 인터뷰에서 멋진 남자를 통솔력 있는 남자라 했다. 2년 정도 지난 지금, 멋진 남자로 살아온 듯한가?
그런 것 같은데? 하하.

ARENA Says
정우성은 올해 영화 두 편에 출연했다. <신의 한 수>는 3백만 명 넘게 봤다. <마담 뺑덕>은 흥행보다 파격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두 작품은 정우성의 현재를 나타낸다. 그는 여전히 만화 주인공 같은 역할이 어울린다. 그러면서 40대 배우로서 한계를 짓지 않는다. 배우로서 그는 올해 충실했다. 언론에선 ‘제2의 전성기’라는 수식어도 붙였다. 정우성에게 제2의 전성기 라는 단어가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2막이 펼쳐지는 건 맞다. 사실 개봉작 두 편만으로 그의 한 해를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연출의 꿈을 오래 품어왔다. 그 첫발로 단편 영화를 찍었다. 영화도 제작하고 있다. 예전부터 준비해온 그의 제작사를 가동시킨 거다. 신인 감독을 이끌며 제작과 주연을 겸해 현장을 조율했다. 이 모든 일을 마침 그의 데뷔 20주년인 올해 해냈다. 정우성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한 해를 보냈다. 그 열정을 높이 산다

Editor: 김종훈
photography: 김영준
STYLIST: 정윤기, 김혜정(인트렌드)
HAIR: 임해경
MAKE-UP: 배경란
ASSISTANT: 박예은

오직 영화. 올해 정우성이 걸어온 길이다. 개봉작 두 편에 출연하고, 단편 영화를 연출하며,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극장에서만 정우성을 본다. 하지만 정우성은 극장에만 있지 않았다. 현장에서, 영화인으로서 뜨겁게 움직였다. 진짜 정우성의 한 해는 치열했다.

Credit Info

Editor
김종훈
Photography
김영준
Stylist
정윤기, 김혜정
Hair
임해경
Make-up
배경란
Assistant
박예은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