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투브 네이버포스트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REPORTS

시인 강정

On November 20, 2014

강정이 다섯 번째 시집 <귀신>을 출간했다.

점퍼는 라이풀 미니멀 가먼츠 제품.

강정을 7년째 보고 있다. 내가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부터였다. 그는 문단의 불이었다. 헝클어진 머리, 목선 늘어진 티셔츠, 찢어진 청바지는 그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는 드물게도 시로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거침없고 타오르며 우울하며 낯설다. 그는 스물두 살에 등단했고 대학생 신분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첫 시집을 출간했다. 그와 비슷한 연배의 시인들이 등단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강정은 그 시간을 무료하게 보냈다. 그래서 아무도 그가 겪은 10년을 경험하지 못했다. 나는 강정의 10년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그 10년 동안 강정은 시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소중한 것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도. 이런 판단이 곡해일 수도 있다. 상관없다. 그 어떤 훌륭한 시인과 비교한다고 해도 나는 누구도 강정은 아니라고 믿는 사람이다. 거듭, 누구도 강정이 아니다. 강정의 시를 읽는 건 이 시대 지성인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지금 강정은 마흔네 살이고, 당연히 살아 있다. 인터뷰 마지막 질문에 그가 답했을 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형 건강하게 오래 살아요. 죽지 말아요. 형의 시를 읽는 기쁨을 더 많은 사람한테 주세요. 그리고 그 영예를 반드시 다 누려요.’

사인 바꿨어요? 왜 다른 이름을 적어요.
개명했어. 奇林. 강정이 안 좋은 이름이야. 어릴 때부터 바꾸려고 했었어. 근데 옛날에는 개명이 어려웠잖아. 강정은 이제 필명으로만 쓸 거야.

새 시집 <귀신>이 문학동네에서 나왔어요.
시 쓰는 (김)민정이가 자꾸 찔러서 낸 거지. 문예중앙에서 시집 낼 때도 그랬어. 문학평론가 조광석이 내자고 해서 냈어. 나는 내자고 하면 내. 어렸을 때는 출판사에 연연했는데 그런 것들이 이 판에 너무 고질화되니까 재미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그냥 어지럽히고 다니는 기분으로 여기저기에서 내고 있어. 큰 뜻은 아니고.

나는 형이 문학과지성사랑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문학동네에서 나온 시집을 봤는데, 뭐지, 형 시가 또 다르게 읽히더라고요.
문학과지성사에서는 두 번 냈잖아. 하하. 앞으로 또 내게 되면 내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고. 다들 똑같이 한두 군데 출판사만 바라보고 있는 게 지겹기는 해. 이 판을 어떻게 해보겠어, 이런 건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형을 알게 된 건 산문집 <나쁜 취향>이라는 책을 통해서였어요. 잡지 에디터로 일을 시작했을 때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이런저런 책을 찾다가 발견한 거죠. 열 번도 더 읽었어요. 그 글이 나에게 자꾸 무엇인가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문에 연재한 글이었는데 그 당시에 하여튼 잡지와 인터뷰를 많이 했어. 너처럼 잡지 기자 일 하는 친구들이 봤더라고.
내 멋대로 누구에 대해 쓴 게 인상적이었나봐.

당시로서는 읽기 힘든, 어떻게 보면 가장 동시대적인 글이었던 것 같아요. 대부분의 글이 실제로는 전혀 동시대적이지 않거든요. 그땐 다들 너무 글을 못 썼다고요. 고루하고 ‘스탠더드’하고.
근데 그것도 웃긴 게, <한국일보>에 1년 넘게 연재한 건데, 편집부에서 연재하는 내내 중단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었어. 대중적이지 않다는 거였지. 거기 기자들도 모르는 사람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까. 말들이 많았던 것 같아.
그러다가 1년이 가버린 거야.

그 책 꽤 팔리지 않았어요?
다들 의아해하는데 그 책 진짜… 우리나라 문화가 그래. 깊이 있게 얘기하면 듣기 싫어해. 하여튼 그것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생겼었지. 그 무렵의 나를 먹여 살려준 책이긴 해.

그런 글을 다시 써보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글만 쓴 게 아니라 방송에도 나갔어. 뭐, 그런 주제로 여러 일을 했어. 누가 나한테, 너는 그쪽으로 평론을 써도 좋아 보일 텐데, 이런 얘길 하더라고. 음악평론가나 무슨 무슨 평론가 있잖아. 그런데 나랑 안 맞는 거 같아. 내 글이 객관적인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내 느낌대로 가는 경향이 있어서. 그리고 결국 소비되는 거잖아. 소비되는 짓이라도 돈이 들어오면 아쉬워서라도 하게 될 때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일부러 하겠다, 이런 생각은 없어. 내가 좋고 내가 쓰고 싶고 내가 쓸 수 있는 거 쓰고 싶은 거지.

<나쁜 취향>에 ‘젊은 바퀴벌레 시인들의 은밀한 사생활’이라는 글이 있어요. 당시 황병승, 이민하, 김민정, 김근과 같은 소위 젊은 시인들의 등장에 대한 인상을 적은 글이었어요. 누군가 미래파라고 부른 시인들이요. 그 글을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번 읽었는데 형한테는 그 작가들의 등장이 형을 의식하게 만든 큰 사건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극이 많이 됐지. 첫 시집을 내고 10년 다 되어가던 때였고 문단에 내 또래가 거의 없었거든. 또래라고 해봤자 소설 쓰는 친구들이었어. 김연수같이. 그러니까 나도 시집 낸 지 오래되었고 생각도 시들해진 상태였고, 또 이래저래 돈 버느라 바쁘기도 했고. 그런 차였는데 병승이, (김)행숙이부터 해서 (김)민정이 (김)경주 같은 후배들이 문단에 쫙 나오는데, 시를 보니까 잘 쓰더라고. 느낌이 옛날에는 그렇게 쓰면 사람들이 뭐라고 했는데, 어? 이렇게 쓰네, 얘들이? 그래서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 얘들이랑 나도 놀고 싶네, 이런 생각을 했었지. 그렇다면 나도 이제 더 써보자, 그렇게 해서 시를 더 쓰게 된 거야. 그 시인들을 만나면 사이가 좋든 안 좋든 형제 같아. 핏줄 당기는 느낌. 그때 그랬었어. 더 오래 혼자 있었으면 아예 다른 일을 해버리거나 시를 안 쓸 수도 있었을 거야.

선점당했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그러니까 형도 선배 시인들보다 굉장히 다른 지점의 시를 썼잖아요. 그런데 그런 지위를 당시 등장한 후배들이 독차지한 게 됐잖아요.
그런 얘기 많이 물어보거든. 당신은 너무 일찍 해서 손해 본 거 아니냐고. 그런데 내가 별 욕심이 없어서 그런지 그런 생각은 안 들었고, 오 이 새끼들 봐라? 이런 거지 뭐. (김)경주의 시에 대해 내가 글을 쓰게 됐는데, 잘생긴 놈이 하나 있다더라는 얘기만 들은 상태였어. 그래서 만났는데 놀랐어. 이렇게 생긴 놈이 뭐하러 시를 쓰나, 그러고 나서 원고를 받았는데 이 새끼 졸라 잘 쓰는 거야. 하하. 신기하기도 하고. 그리고 또래 시인들이 내 첫 시집을 많이 읽었다고 하니까, 아 그런 것도 읽는 놈들이 있었구나, 반가웠지. 동생 만난 것처럼 한 대 까고 싶기도 했고.

형처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거잖아요. 나는 내가 시인이라 누구보다 잘 알아요. 어려운 거.
나는 살면서 누굴 이기고 싶고 큰 걸 받고 싶고 이런 게 별로 없어. 그냥 나 재미있고 나 안 아팠으면 좋겠어. 이게 문제일 수도 있어. 사람은 욕심이 없으면 게을러지거든. 만날 술이나 먹고. 나도 어떤 것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 같은데, 별로 노력을 안 하는 것 같고. 시는 근데 노력을 안 해도 써지면 쓸 수 있는 거니까.

이건 결례지만, 가끔 내 또래 시인들끼리 있으면 이런 얘기해요. 정이 형 저렇게 살다가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결혼도 하고 술 담배도 줄여야 할 텐데.
당신들이나 잘 사세요. 하하. 그런데 술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어. 나를 술자리에서만 보니까 내가 만날 술 마시는 걸로 아는 거야.

아니었어요?
만날 안 먹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대신 폭음을 하니까 사람들은 내가 만날 저렇게 마시나 보다, 생각을 하는 거야.

형 본 지 7년 정도 돼가는데 요즘 얼굴이 가장 좋아요.
올 초에 이사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몸이 좋아졌다가 여름부터 더우니까 운동 안 하고 이래서 다시 나빠지는 상태인데. 그래도 옛날보단 좋아졌지. 옛날에는 어우, 괴물이었지. 서른아홉 살 무렵부터 마흔두세 살까지 한 4~5년 동안 인생 막장 가는 기분이었거든. 돈벌이도 없어지고 몸도 망가지고. 너도 조심해. 사람이 마흔 살 정도 되면 이상해져.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다 그래. 호르몬 문제인 것 같은데 그때 나는 완전히 미친 놈이었지. 그야말로 죽는 게 힘들어서 살아 있는. 근데 그렇게 한 번 뚝 떨어져보는 것도 괜찮아. 죽지 않으면 또 어떻게 꾸역꾸역 일어나서 사니까.

형이 시 같고 시가 형 같아요. 새삼 느낀 건 아니지만 <귀신>을 보고 또 한 번, 아, 이 형은 멋대로 쓰는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이거라도 내 마음대로 해야 할 거 아냐.

부러워요. 왜냐면 서너 걸음 물러나서 보면 요즘 시가 대체로 비슷하잖아요. 모두가 시를 너무 잘 쓰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써야 할지 아는 거죠. 그런데 형 시는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바른 전개 방식을 안 따르니까 완결성이 떨어진다는 거죠. 하지만 그 미완의 에너지가 엄청나게 눈부시다는 걸 나는 알아요.
나는 시나 사는 거나 그냥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거든. 내가 잘났든 못났든 어떻든 나 자신이라는 걸 가져야지, 그렇지 않으면 시를 쓰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시를 잘 만들어서 상을 받고, 소위 잘나가면 좋겠지만, 나는 그런 인간은 아닌 것 같아. 시 쓰는 것은 그냥 나를 풀어놓는 하나의 방법이니까. 문예창작과를 나왔지만 시 쓰는 법을 배워본 적은 없어. 학교 다닐 때 만날 딴짓만 하고, 미래 계획이나 뭐 이런 게 전혀 없었던 거지.

형은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된 거예요? 잠재된 동기가 있을 거 아니에요?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근데 나이가 마흔다섯 살씩 먹었잖아. 이 나이에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마누라도 없고. 그게 안 창피해. 불편하고 힘든 건 있는데, 창피한 건 아니야. 꿀릴 것도 없고. 어떤 면에서 나 자신이 싫을 수도 있는데 나는 그냥 떳떳한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형 시에 대해 평론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건 신경 안 써요?
칭찬이랍시고 빤하게 지껄여놓은 걸 보면, 뭐야, 이런 생각이 들고, 누가 비판을 했는데 들을 만하면 오히려 반갑고 그렇지 뭐.

다행스러운 것은, 형은 맘대로 쓰고 있다고 말했지만, 시가 굉장히 좋고 어찌되었든 계속 시집을 낼 수 있을 만큼 인정받고 있다는 거예요.
자신감이 있으니까 계속 쓰는 거겠지.

형처럼 당당하기가 쉽지 않아요.
병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하면 병에 걸리는 거야.

신경을 안 쓰고 사는 게 좋은 건가?
신경 쓸 것은 써야지. 근데 네가 네 안에서 더 단단하게 있어야지. 네가 주먹이 약하다 싶으면 다 무서워 보이잖아.
근데 반대로 주먹에 자신 있어서, 덤벼봐, 이러면 아무도 안 덤비잖아.

형은 등단했을 때도 자신이 있었어요?
등단하기 직전에 발표되는 시나 시집을 많이 보게 되잖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 이 정도는 생각했어.
응모했는데 바로 딱 됐어. 아, 되네? 생각했지. 스물두 살 때였어.

등단하고 나서는 한 번이라도 아, 나 이러다가 잊히겠다, 라고 걱정해본 적이 없어요?
첫 시집 내고 나서, 그 당시 오만이었을 텐데, 나는 시집 한 권 냈으니까 다른 거 할 거야, 라고 배짱을 튕겼어. 그래서 그런지 정말 시는 안 써지더라고. 나 이제 시 못 쓰나 보다 하는 생각을 했었고. 시를 못 쓴다는 위기 의식보다는 뭐하고 살지? 내가 뭘 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지. 학교 다닐 때였잖아. 문예창작학과 다니면서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집 냈으면 할 거 다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 그랬지 뭐.

형 시의 교과서는 뭐예요? 수업도 잘 안 들었다면서요.
교과서가 나지. 내 시니까 교과서는 나야. 그 외에 레퍼런스들도 있지. 좋아했던 시인들도 있고. 그런데 시는 내가 나를 밝히는 거야. 어릴 때는 시가 안 써지면 밤길이 무서웠어. 잘 써지면 시발, 다 덤벼, 이러고. 하하. 그랬었어. 그 기운을 계속 가지고 있는 거 같아. 그래서 이 꼬라지로 살면서도 뻔뻔할 수 있는 거지.

내 시에는 ‘나’가 정말 많이 나오는데, 고백이지만, 그 ‘나’가 뜬구름만 잡아요. 용감하지 않은 거죠. 그런데 형은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나’에 대해 규정해요. 그게 가능하다는 게 저로서는 굉장히 놀랍고 부러워요.
어, 그거 허세일 수도 있는데, 그거 없으면 시 못 쓰잖아. 내가 틀리더라도 한번 그렇게 해야, 그래야지 나오는 것들이 있으니까.
물론 그 말에 내가 당하기도 하지.

당한다는 게 뭐예요?
시가 무서운 게, 내 시가 밝고 건전하진 않잖아. 쓸 때는 뭣도 모르고 질렀는데 나중엔 인생이 정말 그렇게 돼.
인생 좆같이 사는 거지. 무서워 진짜.

훗날 누군가 문학사를 쓴다면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 즈음까지 시단의 변화에 대해 굉장히 집중적으로 조명할 게 분명한데, 형에 대한 이야기도 반드시 들어갈 거예요. 형도 그렇게 될 걸 느껴요? 그러니까 내 말은 형이 더 시를 안 써도 될 거라는….
그렇지. 안 써도 되고 사실 시 쓰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굴레인 것 같기도 해. 쓰더라도 예전과 다른 거 쓰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

형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더 시를 쓰지 않아도 이미 형은 문학사의 한 부분이라는 얘기예요.
무슨 얘기인지 알아. 그리고 시를 계속 쓰는… 연배 있는 시인들 중에 추한 사람도 많아.

형은 그분들과 달라요.
만약 시 말고도 내가 나를 확인할 수 있는,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시 쓰는 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 같아. 그러면 문학이라는 것에 대해 예전만큼 진지해지지 않겠지.

형은 지금도 시를 진지하게 다루지는 않는 것 같아요. 시인인데 주변인으로서 시를 바라보는 것 같아요. 나쁜 의미로 말하는 거 아니에요. 많은 시인들이 시를 보고 있다가 시를 못 쓰잖아요.
그런 느낌이 나한테 있다면 되게 좋은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뭐냐면 미녀를 꼬실 때 어떻게 해? 그냥 덤벼? 나는 모른 체하거든. 그러면 그쪽에서 안테나가 서니까. 시도 비슷한 것 같아. 그러니까 이것은 나도 모르게 습득이 된 거 같아. 첫 시집 내고 한동안 시가 안 써질 때 억지로 쓰려고 하니까 안 되더라고. 농담 삼아 나는 한 손으로 쓴다고 생각을 하거든. 정색하고 쓰는 게 아니라, 날라리가 쓰듯이.

형이 예전에 나한테 이랬어요. 반은 내가 쓰고 반은 귀신이 쓴다고.
그렇지. 귀신이 나를 불러오는 거지. 사람들이 나에 대해 확신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걸 놔버릴 때 시가 써지는 거지.
그럴 때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

그래서 제목이 ‘귀신’인가? 누가 지었어요?
내가. 시집 원고를 정리할 무렵에 약간 귀신 쓰인 거 같은 상태였거든. 시를 보니까 귀신이 지껄이는구나 싶었고.
그래서 처음엔 반 장난으로 ‘귀신’이 제목이라고 말했는데 다른 제목이 안 떠오르는 거야.

요즘 즐겨 읽는 책은 어떤 거예요?
책을 여러 개 깔아놓고 아무거나 집어서 두세 페이지씩 봐. 오래 붙잡고 있는 게 없는데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책이 재밌더라고.
일제강점기, 해방, 빨치산 이런 내용에 대한 거. 역사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사는 게 지금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러다 형 도인 되겠다.
나는 그럴 생각 없는데, 남들이 보기에 나는….

이미 도인이에요.
도 닦나, 이런 느낌을 줄 수는 있을 것 같아. 그런 얘기도 들었고. 언제 한번 술자리에서 취해서 이런저런 막말을 했어. 근데 그게 정말 도인이나 할 법한 얘기였더라고. 나도 싫더라고. 도 닦는 사람은 잘 죽거든. 최근에 내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죽었어. 도 닦는 사람이었어. 나이도 나랑 비슷한데 죽었어. 갑자기. 자살한 것 같아. 수련하는 사람들은 자기 호흡을 조절할 줄 알거든, 죽으려고 호흡을 멈춰버린 거지. 도사들은 어느 순간 살 이유가 없어. 사나 죽으나 똑같으니까.

혹시 그럴 마음은 없죠?
모르는 거지. 내가 계획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살다가 삶이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는 거지. 일상적인 욕망도 다 넘어서버리면. 근데 그렇게 되면 시 쓸 이유도 없어. 시는 뭔가 부대끼니까 나오는 거잖아. 나는 심지어 마흔네 살인데 사십몇 년 동안 여러 번 반복해서 죽었다가 살았던 것 같기도 해. 이 삶이 이 삶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지. 불교식으로 말하면 허깨비 장난이구나. 이건 좀 다른 얘긴데 랑시에르 같은 철학자들이 유행하잖아. 걔들이 하는 말이 불교에 다 나와 있어. 유럽 새끼들이 말장난을 너무 세련되게 친 것뿐이야.

형, 하하, 이거 조금 위험한데.
아까 나이 마흔이 되면 다 이상해진다고 그랬잖아. 마흔 살 넘어가서도 문학을 하는 새끼들은 잘 미쳐야 돼. 나이 먹으면 남자들 추해지잖아. 잘 미치는 수밖에 방법이 없어.

그래서 마흔 넘으면 시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가 되는 건가.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살긴 살아야 하는데. 그때부터 마누라가 악마가 되고, 애 때문에 살아야 하고 그렇잖아. 그걸 잘 견뎌내면 더 좋은 사람 되는 거 같고 안 그러면…. 근데 나보다 선배 시인들 보면 한심한 사람 많거든. 잘나가는 놈이든 못 나가는 놈이든 돈 잘 버는 놈이든 못 버는 놈이든 하나같이 병신들 같아.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어. 조심해야지, 뭐.

시인이 아저씨에게 좋은 직업은 아니에요.
그런데 김정환 시인은 멋있잖아. 철없는 듯 아이처럼 사는 건 또 괜찮은 것 같아. 다들 꼰대는 싫어하잖아. 그러면서 자기는 꼰대가 되고. 그런데 김정환 시인은 같이 있으면 재밌어. 친구 같고. 그런 선배가 있으니까 나도 살맛이 나는 거지. 김정환 시인 만나면 뭔가 뚫리는 느낌이 들어.

그 선생님은 볼 때마다 웃고 계셔서 좋아요.
그런데 또 놀라운 게, 타고난 무엇이 있는 거야. 책 내는 거 봐봐. 만날 노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책을 써내는지 몰라.
번역도 하고. 괴물이야. 진정한 괴물.

<귀신> 뒤에 붙은 해설을 철학자 김진석 선생이 썼는데 직접 부탁한 거예요?
진석이 형 글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거든. 내 또래들은 다 좋아했어. 우리나라에도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있나, 했었지. 평소에 마주치면 인사만 하는 정도였는데 올해 조금 친해져서 부탁했어. 워낙 이 형도 이런 글을 안 쓴 지 오래돼서 꺼리다가 써줬어.
고마웠지.

김진석 선생이 글을 다 쓸 때까지 형은 아무 말도 안 하고 기다렸어요?
그것도 웃겼어. 이 형이 <귀신> 해설 쓰려고 내 책을 다 사서 봤나봐, 산문집까지. 그러더니 갑자기 만나자는 거야. 아, 해설 못 쓰겠다고 말하려고 그러는구나, 느낌이 딱 드는 거야. 그래서 만났는데, 너는 어떻게 살기에 시를 그 따위로 쓰냐, 내가 힘들어 죽겠다, 이놈아, 이러는 거야. 그래서 왜?라고 물었더니, 너 예쁜 여자 안 좋아하지, 이래. 시만 보면 예쁜 여자 안 좋아할 것 같대.
하여튼 이러다가 써준 거야.

예쁜 여자 안 좋아하지, 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 형 시를 읽으면, 특히 <귀신>은 더 그런데, 시를 쓴 사람의 미적 취향이 일반적인 사람의 미적 취향과 다를 것 같다는 인상을 줘요.
그런가? 그런 얘기는 너무 생각지도 못한 거야.

형, 상복이 너무 없다는 생각 안 해요?
나는 어릴 때 개근상도 못 받아봤어. 몸이 약해가지고. 상은 사람들을 연연하게 만들어. 누가 상을 준다고 하면 거절하고 싶은데, 상금을 주니까 생큐 하고 받아야지. 그런데 상 받으려고 시 쓰는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상은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어.

받는 사람도 못 받는 사람도 어차피 같이 병신 될 바에는 받고 병신 되는 게….
웃긴 짓이라니까. 후보는 여러 번 돼봤는데 결정적으로 본심은 노인네들이 심사하잖아. 나를 안 좋아해. 시를 떠나서 인간으로서 나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경우가 많아.

형은 상 안 받아도 괜찮다고 말하지만, 후배들이나 독자 입장에서는 싫다고요. 가끔 보면 엉뚱한 사람이 여러 상을 독차지할 때가 있잖아요. 상이 평가의 잣대가 되는 시대니까 더 화가 나죠.
상금을 1억 정도로 정해서, 2년에 딱 한 명한테만 상을 주는 게 나을 것 같아. 잡다하게 여러 상을 둘 게 아니라. 그러면 별로 신경 안 쓰고 살 거 같은데.

형은 내가 알고 있는 시인 중에 가장 시인 같아요.
뭐, 그렇게 보이겠지 뭐. 욕망도 없고, 헤헤, 이러고 있고.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거든. 나야, 뭐, 이렇게 혼자 살다 가면 되는데 부모님 생각하면 미안한 것도 있지. 부모님 생각하면 암담해.

<귀신>까지 다섯 권의 시집을 냈잖아요. <아레나> 독자들이 형 시에 관심을 가져서 <귀신>을 읽는다면, 형의 어떤 시집을 같이 보면 좋겠어요?
이런 생각은 해. 시집을 낼 때마다 내가 첫 시집 <처형극장>에서 했던 것들을 다르게 하고 있구나, 결국 옛날에 다 했었구나, 그때 뭐가 뭔지도 모른 상태에서 해버린 것들이 있었구나….

photography: 이상엽
editor: 이우성

강정이 다섯 번째 시집 &lt;귀신&gt;을 출간했다.

Credit Info

Photography
이상엽
Editor
이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