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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 海 戀 歌

그곳을 찾기 전까지 수백 가지 상상을 했다.행여 검은 파도와 메스꺼운 기름 냄새에 마음이 울컥할까봐 노심초사였다. 기우였다. 서쪽 바다는 본연의 모습을 간직한 곳도 되찾은 곳도 있었다.다시 찾은 서해가 건재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br><Br>[2008년 3월호]

UpdatedOn February 24, 2008

Photography 김지태 Editor 이현상

깍아내린 듯한 절경을 자랑하지도, 그렇다고 푸르다 못해 시퍼런 기운을 감싸안은 바다 빛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평소 보던 서해안 풍경은 이렇다. 갈매기가 사방에서 먹잇감을 찾아 고공비행을 하며, 그 아래 조그만 낚싯배가 사방으로 구부러진 작은 포구를 드나든다. 또 얕은 수심 덕에 포구 근처에는 립스틱보다 더 진한 빨강을 입은 등대가 마을을 내려다본다. 어디 그뿐인가. 속살을 드러낸 갯벌을 유유히 지나가는 아낙들의 모습과 누가 볼세라 숨어버리는 손가락 두 마디만 한 게, 그 위로 부리를 조아리는 철새들까지. 겨울의 끝자락과 봄의 경계선이 놓일 즈음 서해를 찾았다. 지난 2007년 겨울, 기름 유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맑은 바다와 그 위를 유유히 흐르는 구름, 아직은 시베리아의 기운을 머금어 세찬 바람. 내가 서쪽 바다를 바라본 첫 느낌이었다. 가슴 아픈 그 모습을 바라보기 싫어서인지, 아니면 취재의 실패를 두려워해서인지 몰라도 기름 유출 사고가 있던 현장에는 갈 수 없었다. 대신 직접적인 상처는 없지만, 그 여파로 가슴앓이 중인 충청남도 태안군의 안면도와 서천의 마량포구, 전라북도 군산을 찾았다.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두 시간 반 남짓 달렸을 즈음, 안면도에 도착했다. 평소 주말 같았으면 왕복 4차선의 안면대교를 가득 채웠을 자동차들은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를 잡겠다며, 볼륨을 한껏 키운 <원스>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유난히도 창밖 배경과 궤를 같이 했다. 해안도로를 누비기 위해 백사장항으로 들어섰다. 싱싱한 횟감과 잘 말린 생선 자반들, 그리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육젓. 보는 순간 입에 침이 돌았다. “어이, 총각들 점심 먹고 가. 회가 얼마나 신선한지 몰라.” 횟집 입구에서 곱게 화장을 한 아주머니들이 손짓을 한다. “요즘 많이 힘드시죠?” “그래도 여긴 괜찮아. 직접 피해 입은 태안 쪽 사람들은 어떻겠어. 죽을 맛이겠지. 우리도 곧 좋아지겠거니 생각하고, 매일 나와서 일하는 거야.” 백사장해수욕장을 거쳐, 삼봉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해안을 빽빽이 메운 소나무들과 그 사이로 파고드는 상쾌한 바닷바람. 멀리 보이는 등대와 떠다니는 낚싯배가 한 폭의 그림 같다. 안면도는 원래 해수욕장으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북쪽의 백사장해수욕장을 시작으로 삼봉·기지포·안면·두여·밧개로 이어지는 첫 번째 해수욕장군과 할미, 할아비바위 아래로 꽃지·샛별·장삼·장돌·바람아래해수욕장까지 수많은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서해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안면도의 해수욕장들은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계절 특성상 사람이 없어 을씨년스럽긴 하지만 봄을 재촉하는 모래 위의 새싹을 보니 괜스레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서쪽으로 이어진 해수욕장의 끝에선 영목항이 고개를 쳐든다. 항구 앞에는 포장마차가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있는데, 바다를 바라보며 맛보는 조개구이와 회는 천하일미. 갓 잡아 올린 꽃게는 그 기운이 엄청나다. 안면도에 오면 양손에 무겁게 들고 돌아가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호박고구마. 모닥불에 구워야 제 맛이지만, 여의치 않다면 밥솥에 넣고 쪄도 좋다. 껍질을 돌돌 돌려 벗기면, 샛노란 속살이 고개를 내민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구마를 한 입 베어 혀로 굴리면 연두부 같다. 씨알 굵기에 따라 1만~2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안면도를 나와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로 향했다. 이곳은 천수만을 사이에 두고 안면도와 마주하는 곳이라 하루 코스로 무난히 다녀올 수 있는 곳. 남당리에서 홍성방조제를 건너면 90여 개의 식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번듯한 건물도 최신 시설을 갖춘 것은 아니나, 넉넉한 인심과 충청도 아주머니들의 넉살 좋은 말솜씨 덕에 서해안의 정취를 느끼며 제대로 된 굴 맛을 볼 수 있다. “요즘 손님이 부쩍 줄었어.
이 동네는 전혀 기름 피해가 없어서 먹어도 걱정 없는데도… 자, 들여다봐. 속이 얼마나 알차고 깨끗해?” 파도 굴집의 주민은 그 자리에서 유려한 칼질로 속살을 보여준다. 10월부터 4월까지가 굴구이 제철. 속이 꽉 찬 굴을 세숫대야에 넘치도록 가져다주면, 화롯불 위에 올려놓고 지칠 때까지 까먹는다. 껍데기 속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다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입을 쩍쩍 벌린다. 생굴로 먹을 때와는 전혀 다른 맛. 찬이라고는 송송 썰어놓은 배추김치와 초장에 찍어 먹는 마늘과 풋고추가 전부지만 그마저도 필요 없다. 평소 굴을 먹지 못하는 사람도 반할 정도니 꼭 한번 먹어보도록. 8kg에 2만5천원으로 성인 3~4명이 먹기에 충분하다. 보령시와 맞닿은 서천군에는 아주 특이한 곳이 있다. 바로 뜨는 해와 지는 해를 한자리에 볼 수 있는 마량포구. 육지가 바다를 향해 튀어나오다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곳이다. 그 덕에 일출과 일몰의 광경을 동시에 지켜볼 수 있다. 아직은 이른 봄이라 아침 7시가 되어야 군산 앞바다 쪽에서 해가 떠오르는데, 그 광경은 마치 긴긴밤 아이를 품었다 내놓은 형상이다. 마량포구에는 50여 척의 배들이 옹기종기 모여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주꾸미가 이 곳의 명물. 3월에는 주꾸미축제, 9월에는 전어축제가 열려 문전성시를 이룬다. 서천 읍내엔 상설 해산물시장이 있다. 특이한 점은 포구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 장이 형성되었다는 것. 마량포구와 인근에 위치한 홍원항을 통해 들어오는 싱싱한 해산물들이 집결된다. 이곳 역시 부쩍 손님이 줄어든 눈치나, 보석함의 보석을 진열해놓듯 신선한 해산물들을 가게마다 펼쳐놨다. “어이, 듬직한 총각. 뭐 사려고 왔어?” 대하를 손질하던 할머니가 지나가던 에디터에게 말을 건넨다. “서천 장터 해산물은 아무 문제 없이 신선한 것을 사람들한테 소개하려고, 사진 찍으러 왔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펄펄 뛰는 생선을 번쩍 들어 올린다. 서천은 한산세모시와 갈대밭으로 유명하다. 특히 신성리 갈대밭은 국내 최대의 갈대숲으로 영화 의 촬영장으로 유명하다. 금강과 맞닿아 있어 겨울을 나고 떠나는 철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금강을 따라 하구 둑을 건너면 바로 ‘문학 작품’의 도시 군산으로 이어진다. 채만식의 <탁류>로 유명한 군산항은 사실 뼈아픈 일제 수탈 기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군산항을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의 애환과 슬픔이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군산 내항은 1980년대 이후 상업항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고 이제는 행정선과 대학 실습선 그리고 연안 여객선터미널 정도로 활용되고 있다. 내항에는 지금은 운항하지 않는 군함 한 척이 당당한 자태를 드러낸다. 마치 군산을 지키는 장군처럼 늠름하다. 군산 시내는 70~80년대의 한국 모습을 그대로 남겨두었다. 도시와 농촌의 묘한 결합, 어딘가 모르게 고풍적인 느낌이 들어 친근하다. 특히 역사를 간직한 유적이 많은데, 황량하게 변해버린 옛 조선은행은 독특한 일본식 건축양식을 여실히 드러내고, 옛 군산 세관은 벨기에산 핑크빛 벽돌로 지어진 유럽식 건물로 일제 강점기의 참혹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해 가치 있는 사적이다. 항구 도시답게 신선한 활어회와 각종 해산물이 유명한데, 특히 꽃게로 담근 간장게장이 유명하다. 암케의 속을 가르면 그 안에 노란 알이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각종 내장과 정성스레 달인 장맛이 어우러진 게장 껍질에 밥 두어 숟갈 넣어 비비면 씹기도 전에 식도를 타고 위로 넘어간다. 이곳 게장의 특징은 짜지 않은 것이 특징. 직화한 김에 밥을 넣고, 게장 간장을 찍어 먹어도 맛있다. 간장게장 정식은 1인분 1만7천원.
더 이상 검은 기름때도, 기름을 뒤집어쓴 어린 철새도, 죽은 조개도 없다. 적어도 내가 찾은 이곳에는 말이다. 점차 서해는 예전의 그 활기찼던 모습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문제는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치유책. 시간이 해결해줄 거란 생각 대신, 이번 주말 가까운 서해를 찾아 맛있는 굴 한 소쿠리, 살이 오른 통통한 육젓, 선홍빛 회 한 젓가락 맛보는 게 그들을 위한 명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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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Photography 김지태
Editor 이현상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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