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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디자이너 어디로 갔을까

On January 24, 2008

실내 건축가들의 달라진 행보. 그리고 달라진 행보에 발맞춘 상업 공간들. <br><Br>[2008년 2월호]

Editor 이민정

10여 년 전 ‘리빙지(紙)’라고 불리는, 그러니까 집을 포함한 공간을 주로 다루는 잡지를 만들고 있을 때, 내 책상 위에는 새로 나온 컬러의 노루표 페인트와 포름알데하이드가 방출되지 않는다는 벽지, 핀란드산 최고급 바닥재 샘플들과 함께 실내 건축가들이 작업한 공간의 필름들이 뒤엉켜 있었다. 잡지 이름에 ‘집’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어서 그런지, 지문 하나 묻지 않은 빠닥빠닥한 필름은 거의 ‘집’을 담고 있었다. 성북동 A씨 주택, 연희동 K씨 빌라, 양수리 전원주택, 현대아파트 58평형 리노베이션…. 그럴듯한 이름에 외국에서 공수한 재료로 완성한 집들은 한결같이 주부들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럭셔리’ 그 자체였다. 공간을 빛나게 해주는 실내 건축가들은 달변이었다. “거실과 부엌의 면적을 동일하게 설계하여 분열된 가족을 한데 모았지요. 부엌 면적이 커지면 조리대를 거실 방향으로 놓을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엄마는 거실에 있는 가족을 바라보며 밥을 지을 수 있거든요.” “전 세계적인 인테리어 경향은 미니멀리즘입니다. 가구와 홈시어터는 원격 조종장치를 통해 벽면에 넣을 수 있고 자질구레한 모든 소품 역시 눈에 띄지 않게 수납장에 숨길 수 있죠.”
그 시절 우리들은 방대한 사고와 빽빽한 콘셉트로 무장한 필름들을 형광등에 비춰보며 인테리어 트렌드를 논했고 집의 내부만을 가지고 미니멀리즘, 젠, 레트로, 클래식 따위로 구분 짓기도 했다. 집을 고친 연예인들은 아침 방송에 나와 예쁜 집을 뽐내기 일쑤였고 행여 그들이 근사한 집 사진을 공개한 책을 펴내면 그 출판사 직원은 두둑한 인센티브를 챙길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집을 고치려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가구회사와 패브릭 회사, 조명회사는 늘어났고, 패션 피플들이 컬렉션을 위해 일년에 두어 차례 비행기를 타듯 인테리어 좀 안다는 이들은 프랑스의 ‘메종 오브제’나 밀라노 ‘가구 페어’에 가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다. 동네 커튼집 아줌마도 ‘패브릭 스타일리스트’라는 명함을 건넬 정도로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코디네이터는 덩달아 유망 직종으로 떠올랐다. 그야말로 헌 집 뜯고 새집 짓는 실내 건축의 전성시대였다. 아이러니한 건 거의 모든 실내 건축가들이 ‘이 집은 그럼에도 주인을 닮아 있어요’라고 이구동성 외쳤지만 정작 가족 구성원은 독특한 집 구조와 새로운 스타일에 적응하기 위해 몹시 애쓰고 있었다는 점이다.
시간은 흘렀고 이제 내 책상에는 페인트 붓, 친환경 벽지 하나 없다. 연예인들은 더 이상 소란스럽게 집 안을 뽐내지 않으며 인테리어 트렌드를 얘기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인테리어 경향이 클래식이라고 혹은 에스닉이라고, 어떻게 옷과 액세서리를 고르듯 집 안 스타일을 단번에 바꿀 수 있겠는가. 실내 건축가를 찾아가 “우리 집 좀 어떻게 해주세요” 하는 사람도 드물다. 왜 그렇게 변한 걸까. “간단해요. 주상복합이 그 이유죠. 이미 겉도 안도 멋지게 완성되어 있는 있는데 굳이 디자인을 바꿀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평당 1백만원 이상 들여 집을 고치느니 차라리 조금 더 보태 평수를 늘리거나 새 아파트로 이사 가는 방법을 택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니까요.” 디자이너 노정석의 얘기다. 그런가 하면 오랫동안 인테리어 전문지에 몸담았던 스타일리스트 이정민 실장은 ‘눈높이의 변화’를 예로 들었다. “디자이너를 100% 믿을 수 없을 만큼 일반인의 눈이 한층 높아지고 까다로워졌어요. ‘난 이런 스타일이 좋아요’ 하는 등 개성과 취향도 분명해졌지요. 디자이너를 들들 볶느니 차라리 인부 몇 명 불러다놓고 ‘이렇게 해주세요’ 지시하는 게 속 편한 거죠. 게다가 고집 센 디자이너와 개성 강한 클라이언트(집주인)가 만났다간 나중에 등 돌리기 십상이에요. 디자이너는 자신이 지닌 철학이 실현되지 않아 답답하고, 집주인은 내가 살 곳을 왜 작품으로 만드느냐며 난리치고…. 물론 처음부터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 경우지만, 실제로 집주인의 끊임없는 불평과 투정에 지치는 디자이너를 저는 많이 보았어요.” 그녀는 또한 주거 공간 인테리어가 붐인 1990년대 말, 개조를 위한 모든 재료의 가격이 거품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그 많고 많은 집을 개조하던 실내 건축가들은 어디로 간 걸까. 10년 전 한창 실내 건축가의 위상을 드러내던 몇몇은 현재 아파트 건설회사의 디자인 고문으로(직함도 ‘소장님’에서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다. 연예인 집은 물론 청담동의 대형 카페와 레스토랑 인테리어로 유명세를 탄 실내 건축가 M은 전국의 모든 D아파트의 디자인을, 모던하면서 직선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던 실내 건축가 P는 S아파트를 총괄한다. 마치 거대 패션 기업이 참신한 디자이너의 철학과 감성, 브랜드 네임을 사는 것처럼. 실내 건축가들이 건설회사에서 맡긴 평수의 아파트 내부를 서너 가지 스타일로 디자인하면(시쳇말로 ‘와꾸’를 짠다고 한다) 건설회사의 디자인팀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이때 자신의 회사에 가구 제작팀을 따로 꾸려, 아파트 실내에 들어가는 모든 가구를 납품하는 약삭빠른 실내 건축가도 있다. 하긴 인천공항을 설계한 건축가 빌모트도 본인의 가구회사를 가지고 있으니 어쩌면 선진국형의 지혜로운 시스템으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건설회사의 디자인 고문, 혹은 본업에 충실하면서 프리츠 한센, 비트라, 카르텔 등 세계적 디자이너의 가구와 조명을 위탁 판매하는 디자이너는 극히 일부분이다. 그럼 나머지 실내 건축가들은? 이전보다 다채로운 상업 공간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상업 공간 디자인이 꼭 최근 경향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카페와 레스토랑은 물론 사무 공간과 미용실, 심지어 병원에서까지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어하는 대중의 심리가 연기처럼 사회에 퍼지게 되었다는 거다. 부티크 같은 피부과, 갤러리 같은 성형외과가 얼마나 많은가. VIP 마케팅에 충실한 백화점은 화장실이나 슈퍼마켓 등 부분적인 개조를 진행하고 패션 디자이너의 숍과 더불어 전국 체인망을 가진 패션 매장도 한몫 거든다. 회사 이름 앞에 ‘사무실 전문’ ‘병원 전문’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디자인 사무실이 늘어났다. 퍽 다행스러운 건 청담동의 으리으리한 레스토랑을 작업하든 10평짜리 선술집을 만들든 디자이너는 나름의 철학과 개념을 어떻게든 집어넣으려 하지, 더 이상 세계의 유행을 발 빠르게 좇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재미있고 독창적이며 사려 깊다. 그래서 <아레나>는 재기발랄한 실내 건축가들이 작업한 최근 프로젝트를 모은 뒤 각각의 공간 콘셉트에 귀 기울여보았다. 모두 당신 생활의 일부인 곳이다.
집 짓는 실내 건축가는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그들의 영역에는 한계가 없어졌다. 안타깝지만 우리 주위엔 여전히 눈살 찌푸리게 하는 공간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실내 건축가들의 달라진 행보. 그리고 달라진 행보에 발맞춘 상업 공간들. &lt;br&gt;&lt;Br&gt;[200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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