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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탈스러운 `턱시도`님

On November 24, 2007

라펠엔 반드시 꽃을 꽂을 수 있는 구멍이 있어야 하고, 허리춤의 포켓엔 뚜껑이 없어야 하며, 받쳐 입는 셔츠는 화이트 컬러에 윙칼라거나 턴다운 칼라여야만 한다. 팬츠엔 커프스가 없어야 하며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해가 진 이후에만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까탈스런 옷이 바로 시대의 예복 턱시도다. <br><br>[200년 12월호]

WORDS 남훈(란스미어브랜드 매니저) COOPERATION 란스미어 EDITOR 박만현

남성복에서 수트는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복잡다단한 라이프스타일을 적절히 커버할 수 있는 무적의 품목이다. 하지만 때로 남자들도 화려한 행사나 파티에 참석할 기회가 생긴다. 정통 복식 역사에서 포멀 웨어(Formal Wear)로 분류되는 예복은 엄격함이 바탕에 깔린 클래식의 세계에서도 입는 방법과 형식이 더욱 까다롭기 때문에 원래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유럽 상류층의 전유물이자 소수만의 표식과도 같았던 연미복(White Tie; 정통 야회복에 흰 보타이를 매는 복식, 제비 꼬리 같은 뒤태가 특징)은 현대까지 디너재킷 (Dinner Jacket; 약식 야회복 상의) 형태로 계승되고 있는데, 아직 대한민국에서는 적절한 디너재킷을 입은 남자를 볼 기회가 흔하진 않다. 사실 대부분 남성들은 일반적인 수트와 디너재킷의 차이점을 모르지만, 한마디로 연미복의 진지함에서 조금 힘을 뺀 약식 야회복이 바로 디너재킷이고 다른 말로는 턱시도 (Black Tie)라고 이해하면 된다.
원래 디너재킷은 상류층에서 자택이나 클럽에서 가까운 지인들과 사적인 모임을 가질 때 입었던 드레스 코드였다.
최초의 디너재킷은 19세기 중반 영국의 에드워드 7세에 의해 선보였는데, 그는 외교적 행사처럼 엄숙한 자리가 아닌, 사적인 정찬에서 굳이 참석자들 모두 숙연해질 연미복을 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남성 복식의 세계에 첫 등장한 디너재킷은 롤칼라(Rolled Collar)의 블랙 더블브레스트 수트와 비슷한 형태였는데, 당시 익숙하지 않은 턱시도의 출현은 많은 원칙론자들에게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남자들도 숨막 히는 진지함만이 높은 자긍심의 원천은 아니라고 믿었던지, 19세기 후반부터 1920년대까지, 턱시도를 유행처럼 입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 왕세자였던 데이비드는 남성복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변형해 입는 걸로 유명했는데, 훗날 사랑을 택하면서 왕위에서 물러난 후에는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 윈저 공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졌다. 그는 패션에 조예가 깊었으며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했기 때문에, 귀족들이 이전 세대의 딱딱한 형식을 벗어던지고 자연스럽게 입을 수 있는 턱시도의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남성복에서 포멀이란 연미복과 디너재킷만을 말하고, 수트는 예복에서 기인한 일종의 캐주얼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남성 복식의 역사는 시대의 흐름을 이겨낼 수 있는 거대한 원칙들과 그 바탕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연한 재해석의 교감이 아닐까 생각된다.

턱시도를 입을 때 신경 써야 할 6가지 원칙
모름지기 모든 남성복은 자신의 몸을 적절하게 반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선을 타고 흘러야 하지만, 턱시도라면 이것은 권장사항 정도가 아니라 율법이 된다. 치수나 체형, 몸무게와 상관없이 모든 턱시도는 한치의 틈도 없이 착용자의 몸에 맞게 재단되어야 하며, 마치 모든 맞춤복 매뉴얼을 보듯 단 한 군데도 허술한 부분이 허용되지 않는다. 수트나 턱시도 모두 장소와 상황에 맞게 간택되어야 하는 남자의 의사 표현이겠지만, 다사다난한 일상을 함께 겪는 수트와 달리 턱시도란 결국 즐거운 저녁 자리를 위한 옷 아니던가. 그러므로 수트와 또 다른 차원의, 까다롭지만 은밀한 즐거움이 있는 턱시도만의 원칙이 존재한다.
1 Button 수트를 입을 때에는 앉아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상의 버튼은 반드시 채워야 하지만, 싱글브레스트 턱시도를 입을 땐 오히려 버튼을 채우지 않는 것이 정석이다. 이 때문에 허리 부분은 일종의 복대와도 같은 커머번드(Cummerbund)와 베스트로 가려야 하며, 때로는 여러 액세서리로 장식되기도 한다. 상상하건대, 턱시도의 버튼이 열려 있는 것은 샴페인이나 와인이 함께하는 정찬에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여성을 향한 열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더블브레스트 턱시도라면, 이 같은 부속물로 허리 부분을 장식할 필요가 없지만.
2 Lapel 수트의 기본이 되는 노치트라펠 (Notched Lapel)과는 달리 턱시도엔 둥근 모양의 숄라펠(Shawl Lapel)과 끝이 뾰족해서 날카롭지만 세련돼 보이는 피크트라펠(Peaked Lapel)만이 허용된다. 턱시도 라펠이라면 꽃을 꽂을 수 있는 버튼홀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예복이 빛을 발하는 결혼식이나 파티에서 안내 역할을 하는 남성들이 그곳에 꽃을 꽂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턱시도의 품격을 완벽하게 떨어뜨리고 싶다면 라펠에 핀을 사용해서 꽃을 꽂으면 된다. 정말 좋은 수제 맞춤 턱시도라면, 라펠의 버튼홀에 꽃줄기를 고정해주는 고리가 달려 있을 것이니, 직접 확인해보시라.
3 Pocket 턱시도에 어울리는 포켓도 개성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 가능한 수트와 달리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이중 테두리 장식이 들어간 제티드 포켓(Jetted Pocket), 다른 말로는 더블 비좀 포켓(Double Besom Pocket)이 그것이다. 테두리를 덧대는 이 디테일은 재킷의 겉감이나 라펠에 덧댄 실크와 같은 소재를 사용하는데, 트위드 소재의 스포츠코트에 피크트라펠이 어울리지 않고 예복용 팬츠에 커프스(밑단, 턴업)를 하지 않는 것처럼, 턱시도 포켓이라면 플랩이 달려 있어선 안 된다.
4 Collar 격식을 갖춘 턱시도를 입기로 작정했다면 두 가지 종류의 드레스 셔츠를 구비해두는 것이 좋은데, 먼저 새가 날개를 편 것처럼 날렵하게 떠 있는 윙칼라(Wing Collar)고, 다른 하나는 윈저 공이 처음 소개한 턴다운 칼라(Turndown Collar)다. 이 두 셔츠는 모든 스타일의 디너재킷과 어울리긴 하지만, 윙칼라 셔츠라면 피크트라펠의 싱글브레스트 턱시도가 현명한 선택이다. 윙칼라가 뾰족한 끝부분이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과도 같은 피크트라펠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셔츠들은 턱시도와 함께 가장 클래식한 스타일이지만, 블랙 타이로 드레스 코드를 지정해둔 행사가 아니라면 정결한 무늬의 화이트 드레스 셔츠도 옵션이 될 수 있다. 노파심에서 말하는 것이지만, 버튼다운 칼라(Button-down Collar)는 턱시도와는 불구대천의 관계이니 전혀 생각도 마시라.
5 Bow Tie 턱시도에 빠질 수 없는 디테일인 보타이는 재킷의 라펠 소재를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 좋다. 만약 새틴으로 마무리된 턱시도라면 새틴 보타이를, 독특한 소재감의 그로그랭(Grosgrain)일 경우 거기에 어울리는 무늬가 들어간 옷감의 보타이를 매준다면 높은 안목을 드러내줄 것이다. 이처럼 소재는 엄격하게 선택해야 하지만, 보타이를 엉겅퀴(Thistle) 매듭이나 박쥐 날개(Bat’s Wing) 매듭으로 착용할지는 개인 취향에 따른다. 아무리 엄격한 형식에 맞게 성장해야 하는 예복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을 숨막히게 할 순 없는 법이니, 보타이와 포켓스퀘어를 사용하여 그날의 유니크한 기분을 표현하는 것도 좋다.
6 Shoes & Socks 턱시도를 훌륭하게 마무리해주는 구두를 선택해야 하는데, 클래식 수트에는 브라운 구두를 신으란 대원칙을 백만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지만, 턱시도는 기본적으로 블랙이므로 아무 걱정 없이 블랙 에나멜 구두를 신으면 된다. 다만 예복용 구두이므로 옥스포드가 좋고, 단화 형태의 오페라 펌프스라면 구하긴 어렵겠지만 정통 클래식 턱시도와 남다른 룩을 완성할 것이다. 이때 사소하지만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발목을 가장 이상적으로 감싸주는 블랙 실크 양말을 고르되, 항상 종아리를 덮는 정도의 길이여야 한다.

턱시도를 입는 순간
끊임없는 믹스 매치로 무정형적으로 변화하는 여성복과 달리, 남성 복식은 놀랍도록 정교한 최초의 원칙이 존재하며, 각각 아이템들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클래식을 바탕으로 시대의 흐름과 정서를 적절히 반영해가며 디테일을 변화시켜온 것이 남성복의 역사이므로, 턱시도를 갖는 것은 크레디트카드를 용감히 휘두르는 럭셔리 쇼핑과는 다르다. 턱시도를 입는다는 건 오래전 클래식 복식을 만들어낸 유럽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과 명망 높던 고집쟁이 테일러들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만나보는 소중한 경험이며, 연미복과 수트로 이어지는 복식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이 시대의 수트를 더 멋지게 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PS. 턱시도는 저녁에 입는 예복이므로, 낮에 진행되는 결혼식에 입는 우를 범하지 말 것을 강권한다.

라펠엔 반드시 꽃을 꽂을 수 있는 구멍이 있어야 하고, 허리춤의 포켓엔 뚜껑이 없어야 하며, 받쳐 입는 셔츠는 화이트 컬러에 윙칼라거나 턴다운 칼라여야만 한다. 팬츠엔 커프스가 없어야 하며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해가 진 이후에만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까탈스런 옷이 바로 시대의 예복 턱시도다. <br><br>[20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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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남훈(란스미어브랜드 매니저
COOPERATION
란스미어
EDITOR
박만현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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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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