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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되기

빌 게이츠는 자기 재산으로 재단을 만들어 자선사업을 해왔을 뿐 아니라 자신이 낸 돈이 효율적으로 쓰이도록 관리하는 데에도 큰 관심을 가졌고, 모범이 될 만한 성과를 얻었다.<br><br>[2006년 8월호]

UpdatedOn July 18, 2006

Photography 전재호, 유로포토/AFP Words 복거일(소설가) Editor 정석헌

17세기 영국 시인 프랜시스 콸스(Francis Quarles)의 “현명하게 세속적이어라, 세속적으로 현명하지 말고 (Be wisely worldly, be not worldly wise)”라는 구절은 깊이 새길 만하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세속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세속적 처신으로 시종하면, 무언가 근본적 중요성을 지닌 것을 놓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이 추구하는 삶에 맞는 방식과 정도로 세속적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모두 세속적 성공을 열망한다. 사람이 사회를 이루어 살기 시작한 뒤, 사회적 위계에서 높은 자리들을 차지한 사람들은 생식에서 유리했고, 낮은 자리를 차지한 개인들은 생식에 불리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과 다투어 사회적 위계에서 높은 자리들을 차지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이다. 당연히, 우리는 모두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가족에서든 직장에서든 정치계에서든,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에 늘 민감하고 보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애쓴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는 모두 세속적 성공에 대해 약간의, 그러나 진정한 경멸을 품는다. 세속적 성공의 전형인 정치 지도자들은 부러움을 많이 사지만 존경은 별로 받지 못하고, 가난한 예술가가 되라고 자식에게 권하는 부모는 없지만 모두 가난한 예술가들을 높이 평가한다. 그런 사정의 큰 부분은 세속적 성공의 대상인 ‘사회적 위계에서의 높은 자리들’이 본질적으로 ‘위치재(Positional Goods)’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위치재는 가치의 큰 부분이 특수한 위치 덕분에 생긴 재화를 가리킨다. 모든 면들에서 똑같은 땅인데, 한 곳에 지하철역이 생기면 다른 곳들보다 가치가 부쩍 높아진다. 진품들도 모사품들에 대해 그런 이점을 누린다. 사회적 위계에서 높은 자리들은 전형적 위치재들이다. 위치재의 본질적 특질은 더 생산될 수 없고 재분배될 수만 있다는 것이다. 높은 자리들이나 훈장들을 더 만들 수는 없다. 더 만들면 가치가 희석되어 가치의 재분배가 이루어질 따름이다. 모두 귀족인 사회에서 귀족의 가치는 거의 없다. 당연히, 위치재들에 대한 다툼은 치열하다. 늘 치열하고 사회적 비용도 무척 크지만, 그런 다툼은 그저 존재하는 위치재들을 재분배할 따름이고 그 과정에서 창출되는 가치는 거의 없다. 사람들이 그런 위치재들의 재분배에 참여하는 정치 지도자들을 부러워하면서도 약간의, 그러나 진정한 경멸을 품으며,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을 높이 평가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 있다.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현대는 넓은 터전을 마련했다. 바로 상업 활동이다. 사람은 상업 활동을 통해서 많은 돈을 많이 벌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일 수 있다. 아울러 물질적 가치를 창출해서 사회에 공헌한다. 이 점에서 상업 활동은 본질적으로 위치재의 재분배를 놓고 다투는 정치 활동과 다르다. 모두가 돈을 많이 벌면 사회적 위치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도, 물질적 풍요의 절대적 수준은 높아지므로 가치는 창출된다.
현대 사회가 빠르게 발전하고 그런 발전에서 기업가들이 그리도 큰 역할을 한 것은 상업 활동이 위치재를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덕분이다. 상업 활동은 물질적 가치의 창출을 겨냥하고, 사회적 지위는 그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얻어진다. 반면, 위치재를 직접 겨냥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얻는 과정에서 가치를 비교적 작게 창출한다. 번영한 사회에서 기업가들이 두드러진 역할을 하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린다는 점은 우리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훌륭한 기업가들은 ‘현명하게 세속적인’ 사람의 전형이다. 젊은이들이 기업가보다는 관료나 정치가를 선망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것은 모두가 깊이 새겨야 할 화두다.
현대 사회에서 상업 활동을 통해 큰 재산을 모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 현상과 관련하여, 우리는 두 가지를 관찰하게 된다. 하나는 부의 축적 과정이 점점 정당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산업이 원시적이었던 고대 사회에서 거대한 부의 원천은 주로 정복, 약탈 또는 몰수였다. 산업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는 거대한 부의 원천은 주로 상업 활동이다. 따라서 부의 도덕적 기반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아울러, 재산의 형성이 수많은 거래들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재산이 본질적으로 깨끗하고 정당하다. 자발적 거래는 양 당사자들이 그것에서 이득을 봄으로써 이루어진다. 당연히 정의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 우리 사회의 통념과는 달리 이제 거대한 재산은 대체로 정의롭고 깨끗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또 하나는, 한 사람이 모을 수 있는 재산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현대의 시장 경제는 모든 분야에서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에게 보상을 몰아주는 성향이 있다. 이런 성향은 단숨에 역사상 가장 큰 재산을 모은 빌 게이츠(Bill Gates)가 잘 상징한다.
큰 재산을 모은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지면서, 그 재산을 어떻게 쓰는지가 사회적 관심사가 되었다. 아쉽게도, 지금 큰 재산은 현명하게 쓰이고 있지 않다. 큰 재산은 주로 자선에 쓰이는데, 자선의 효율은 매우 낮다. 먼저, 자선이 다루려는 문제들은 모두 풀기 어려운 것들이다. 시장과 정부가 제대로 풀지 못한 문제들이니 당연하다. 다음엔, 자선의 효율을 측정할 기준이 마땅치 않아서 자선 활동들을 관리하기 어렵다. 그래서 근년에는 자선의 효율을 높이려는 시도들이 나왔다. 이런 움직임에서도 선구자는 빌 게이츠다. 그는 자기 재산으로 재단을 만들어 자선사업을 해왔을 뿐 아니라 자신이 낸 돈이 효율적으로 쓰이도록 관리하는 데에도 큰 관심을 가졌고 모범이 될 만한 성과를 얻었다. 그의 자선은 아주 야심차서, 자선의 전통적 분야들을 훌쩍 넘어 개발도상국들의 질병과 가난을 없애는 사업들을 포함한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돈을 쓸 뿐 아니라 더 많은 자금을 함께 동원하고 관련된 정책들을 다듬는 데도 공헌하고 있다. 그런 혁신에 힘을 보탠 사람이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이다. 그는 뛰어난 인재들을 가진 좋은 조직을 찾아내 지원하는 ‘가치투자(Value Investment)’로 큰 재산을 모은 사람인데, 그는 자선에도 그런 방식을 적용한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자선 활동을 하는 대신 자선을 가장 효율적으로 하는 빌 게이츠의 ‘빌과 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에 자금을 기부하기로 했다. 이런 태도는 많은 자선가가 본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기업가들의 자선이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자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논의가 활발해졌다. 눈에 이내 들어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자선이 빈약하다는 점이다. 미국은 원래 자선이 유난히 활발한 사회였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자선의 전통이 미약했다. 주목을 덜 받지만 정작 중요한 점은, 외국의 기업가들은 자신들의 재산으로 자선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경영하며 대주주로 있는 기업들의 자산으로 자선을 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외국의 자선가들과 우리 자선가들이 뚜렷이 대비된다.
지배적 주주들도, 최고 경영자들도 기업의 자산을 자선에 쓸 도덕적 권위를 지닐 수 없다. 기업의 목적은 주주들을 위해 이윤을 되도록, 즉 법과 도덕에 어긋나지 않는 방식으로 많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윤은 주주들에게 배당이나 청산을 통해 돌아가야 한다. 자선은 그렇게 투자에 대한 보상을 받은 주주들이 자기 돈으로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자선만이 정당할 뿐 아니라 원래 자선의 뜻에 맞는다. 남의 돈으로 하는 자선은 어쩔 수 없이 자선의 뜻을 덜어낸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명분 아래 행해지는 기업 자산의 외부 유출이 정당화되기 어렵고 기업 자산의 효율을 낮추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살필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본주의사회에서만 자선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중앙 권력이 충분한 정보들을 가지고 처리해서 사회의 움직임을 모두 통제하는 사회주의사회에서는 개인들의 판단에 의한 자선은 원천적으로 들어설 틈이 없다. 만일 자선이 나온다면, 그것은 중앙 권력의 계획이 틀려서 자원이 남는 개인들과 모자란 개인들이 나왔다는 사실을 뜻한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자선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과 자본주의를 가장 충실히 따르는 미국에서 자선이 가장 왕성하다는 사실은 맥락이 통한다.

시장이 발전한 현대사회는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에게 너른 무대와 다양한 기회들을 내놓는다. 특히 상업 활동을 통해 정당한 방식으로 깨끗한 재산을 모으고 그 재산을 자신의 가치 체계에 맞는 방식으로 쓸 터전을 마련해놓았다. 빌 게이츠는 자신의 재단에 3백10억 달러를 내놓았고, 워렌 버핏은 3백60억 달러를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자선의 역사에서 두드러진 인물들인 존 D. 록펠러(John D. Rockefeller)와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는 2006년의 달러로 환산해서 각각 76억 달러와 41억 달러를 자선에 썼다. 큰돈을 모아서 좋은 일을 할 기회는 그렇게 늘어나고 있다.
상업 활동을 통해 큰 재산을 모으고 쓰면서 가치를 창출하는 삶에 비기면, ‘위치재’들을 추구하는 삶이 가치에서 빈곤하다는 점은 이내 드러난다. 비록 우리의 천성이 사회적 위계를 크게 의식하고 그 위계 안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데 모든 힘을 쏟도록 되어 있지만, 우리는 의식적 노력을 통해 그런 천성을 다스릴 수 있다. 유난히 ‘세속적으로 현명한’ 삶이 추구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할 필요가 특히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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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 전재호, 유로포토/AFP
Words 복거일(소설가)
Editor 정석헌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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