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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On May 28, 2014

한 번도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돌아보면 김창완은 늘, 거기에 있었다. 뜨겁다. 젊다. ‘여전히’라는 말은 쓰지 않기로 한다. 저런 눈빛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던가. 퇴적된 시간의 무게를 매 순간 털어내는 그가 가볍게 나는 법을 가르쳐줬다.

유난히 힘에 부치는 한 달이었다. 누군들 안 그랬을까.
손발은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마음은 시꺼먼 바닷속에 가 있었다. 바람과 파도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 것처럼 아프고 시렸다. 어떤 노래도, 들을 수도 부를 수도 없었다. 그때 김창완이 ‘노란 리본’을 들려줬다. 라디오 프로그램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다. 까치집 머리에 낡은 티셔츠를 걸치고 기타를 툭 메고 앉아 ‘노란 리본’을 부르는 영상을 봤다. 흐느끼며 지은 노래를 애써 마음 가라앉히며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이상했다.

10년이 넘도록 매일 아침 9시에 그의 목소리는 거기 있었는데, 40년 가까이 그의 노래가 거기 있었는데, 그날만큼 김창완이라는 존재가 절실하게 다행인 적은 처음이었다. 한참 울고 난 후 부어오른 벌겋고 따가운 눈처럼 아프고 또 고마웠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마련해야 할 건 희망이고, 이 곡은 희망가여야만 한다고. 그를 만나고 싶어졌다. 티끌만큼의 빛도 없는 지금, 대체 어디에 희망이 있느냐고 따져 물으려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물으려는 것도 아니라, 그저 함께 울고, 이야기하고, 또 아프게 웃고 싶었다.




산울림과 김창완 밴드의 앨범 수십 장이 쌓인 시간을 생각했어요. 35년이 넘도록… 저는 단 몇 년도 힘든데….
어… 사실 뭐, 계속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좀 더 알아가겠지, 알아지겠지, 35년 세월이 쌓이겠지 하겠지만, 사실 모든 건 그 순간에 비상하기 때문에 감정이라는 건 그야말로 먼지 쌓이는 거나 마찬가지지. 사람의 경험 같은 게 누적된다고 하는데 그 경험이라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순간에 날아가버리는 거라 그걸 잡아내기 쉽지 않아요. 해도 늘 새롭고 해도 늘 부족하고 해도 늘 모르고 그래요. 그게 삼십 몇 년 세월 동안 이 일을 지겹지 않게 만든 힘이지. 1 더하기 1이 2가 되고, 3이 쌓이고,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아. 세월 흘러 어떻게 되겠지, 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월이 자신을 키우는 걸 믿을 게 아니라 자기 모습, 자기 감정,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 그 순간에 집중해서 그걸 포착하는 데 전력을 다할 일이라고.

선생님도 지금 전력을 다하고 계시는 거죠?
지금 이 순간, 기자님이랑 대화하는 데 올인하고 있어요.

몸은 여기, 마음은 저기 있는 사람들도 많아요. 순간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세상이에요.
사람들이 많은 정보와 데이터를 갈구해요. 어쩌면 부질없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이 세상에 정보가 얼마나 많아. 어떤 사건에 자기의 온 마음과 몸이 합치돼서 감동하고 그 순간에 동화되고 하나가 되는 것, 그 순간 확실히 각성하는 것이 중요하지. 페이스북 친구가 몇 명이고, 오늘 뭐하고, 내일 뭐하고, 또 기다리고, 그런 건 의미가 없지.

연기하실 때, 라디오 디제잉 하실 때, 음악 하실 때 모두 그 순간에 집중하시는 거예요?
그럼요. 나 여기 올 때까지 아무 생각 없었어요.

하하하.
올인, 올인!

음악만 하기에도 힘들지 않으세요?
글쎄? 그런 건 모르겠고. 대신 난 너무 잘 잊어버려. 난 너무 잘 잊어. (그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그게 좋다 나쁘다, 가치 판단으로 생각하진 않아요. 그게 중요할까? 그냥 순간에 집중하는 거야.

요즘은 예술가의 작업물이나 작업 방식에 대한 선택권이 예술가 자신이 아닌 대중에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으려고 해요. 산울림도 당시 트렌드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어요. 어떤 경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우릴 특징 지을 수 있겠지.

클래식한 개버딘 트렌치코트는 바나나 리퍼블릭, 흰색 셔츠는 지오 송지오 제품.

경향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우선 그 경향부터 파악해야 하는 건가요?
음… 경향을 알긴 알아야지. 대중의 요구로부터 좀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대중과 소통이 잘된다면… 좋은 건가요?
글쎄… 지금 시대, 모든 예술을 비롯해 남녀 사이, 부모 자식 간, 아니면 국가 간의 소통을 무슨 만병통치같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소통이라는 게 일시에, 아니면 어떤 의도에 의해서 화학적인 작용이 일어난다는 건 너무 단순한 생각이에요. 소통이 잘 안 이뤄져서 세대 간 불통이 있을 수도 있고, 남녀 간 외계인 같은 만남이 있을 수도 있지. 그런 것에 대한 이해나 용서, 아니면 이해 불통에 대한 이해가 소통의 전문이 될 수도 있고. 한 예술가를 이해했어, 저 남자가 맞아, 이 여자가 맞아, 그런 것이 아니라, 어? 우리 못 만나네, 그런 걸 깨닫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소통의 일종이 아닐까. 예술이라는 것이 꼭 대중적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어요. 그 당시에는 대중과 소통이 안 됐어도 먼 훗날 보면 또 다른 거지. 이런 작품들이 워낙 많으니까.
지금 우리가 잘 맞는다고, 소통한다고 하는 것들도 나중에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도 있지.

불통의 순간마저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거네요.
그렇지. 예술가는 답답해 땅을 치고 가슴을 잡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자기 예술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뤄가는 소통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이지.

산울림은 어땠어요? 1970~1980년대 당시에.
우리는요. 1977년엔 가요의 중심에 어른들이 있었어요. 어린이들 노래는 동요, 어른들이 듣는 노래는 가요, 이렇게 딱 나뉘어 있었지. 그땐 나라에서 지정한, 이건 들어야 한다고 하는 건전 가요도 있었으니까. 우리는 변방의 음악이었어요. 처음부터 이단아였지. 그러다 대학 가요가 활성화되고 그러면서 점점 가요의 중심축이 젊은이들로 옮겨간 거예요.

그럼 변방에 있던 사람들이 산울림 노래를 들었겠네요?
그렇지.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가 가요의 중심으로 오면서 오래 활동하는 밴드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 변방의 음악이었던 우리가 가요의 중심을 점령했다 체감했을 때가 7집 때. 그때 우리가 큰 상을 받아요. 산울림 1집부터 7집까지… 우리가 중심축으로 옮겨가는 시기였던 거지.

환경 탓하면서 좌절한 친구들도 많아요.
우리 때도 음악 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어요. 늘 아니었지. 지금 젊은 사람들의 환경, 그들의 무력감, 그들이 안고 있는 문화적 피폐, 자화상, 여러 가지 사회적인 압력을 행사하고 그걸 어디론가 분출하려는 에너지. 그게 부정적이더라도 에너지가 될 수 있어요. 늘 하는 이야기지만 나쁜 환경도 환경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나중에 그 환경이 또 힘으로 작용할 거예요.

세월호 침몰 이후, 예술가가 과연 예술로 세상에 이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담론이 생겼어요.
지금 사회 전반의 신뢰나 시스템이 다 무너졌어요. 거기서 예술가들이 선택하든가, 대중이 선택하는 것이 분명 있다고 봐요. 이런 황당한 세상에 예술이 있다면 그건 상당히 아방가르드할 거라 생각을 해요.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향유했던 것들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에 세상은 분명 다른 문화를 요구할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 등장할 후배들이 저지르는 예술적 행위가 상당히 전위적일 거라고 예측할 수 있어요. 이게 맞을지 아닐진 모르겠지만 전 그렇게 봐요.

음악 하는 환경도 즉각적이고 기계적이고 데이터로 변하다 보니 소리의 질감 같은 것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은데… 본질적인 거요.
그런 시도들을 지금 조금씩 하고 있어요. 젊은 친구들 중에요, 앵거스 앤드 줄리아 스톤 들어봤어요? (그는 직접 스마트폰 유튜브로 이들의 라이브 영상을 보여줬다.) 이 음악이 지금까지 있던 노래와 왜 다르지? 가만히 들어보면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요소들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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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 프린트가 돋보이는 네오프렌 소재 스웨트 셔츠 77만원 캘빈클라인 컬렉션, 무릎 부분이 찢어진 흰색 데님 팬츠 12만8천원 리바이스 제품.

왼쪽 베이지 리넨 더블브레스트 재킷은 닥스, 흰색 톱은 시리즈 에피그램, 가죽 밴드 시계 ‘듀오미터 퀀템 루너 그랑 퓨’는 예거 르꿀뜨르, 안경테는 톰 포드 by 세원 ITC 제품.
오른쪽 셔츠는 오리앙 by 분더샵 클래식, 케이블 니트는 폴로 랄프 로렌, 팬츠는 PT01 by 분더샵 클래식, 크록스는 본인 소장품, 가죽 밴드 시계 ‘그랑 리베르소 울트라 씬 1946’ 예거 르꿀뜨르, 안경테는 톰 포드 by 세원 ITC 제품.

선생님 음악도 그렇잖아요.
물론, 내 것도 그렇기는 하지.(웃음)

세상의 음악적인 흐름이 기계적이고 차가워질수록 그 반대의 기운을 가진 음악이 등장한다, 이 말씀이시네요? 세상의 이치 같은 거네요. 어둡고 나쁜 기운이 세상을 덮어버릴 것 같다가도 자연적으로 미약하나마 반대의 힘이 생기잖아요.
아까 말했잖아요.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피폐함이라는 것이 에너지가 될 거라고.

자연스럽게 세상의 이치가 균형을 맞춰가는 걸 믿으시는군요.
그렇지.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거대하고 훨씬 더 다이내믹해요.
나는 그런 세상의 힘이 우릴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선생님은 여전히 아이 같고 청년 같고, 필드에서 뛰고 있는 플레이어인데 저도 지금 ‘선생님’이라 부르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배’ ‘멘토’로 선생님을 바라보잖아요.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우신가요?
우리가 자유롭다고 말할 때, 본인이 느끼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기보다는 자신이 상상하는 세계나 이상향이 있다면 그 상상으로부터 자기가 얼마나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바람과 함께 날고 있을 때, 중력을 갖고 있지 않을 때가 진정한 자유인 건데 우리의 자유에 대한 생각은 중력 자체가 없으면 오히려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중력의 실체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기준이에요. 그게 없으면 자유의 기준조차 없겠죠. 그래서 우리는 언제까지나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요. 죽을 때까지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속박이고, 여러 가지 예술을 통해서도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 것이 예술의 근원이지. 나는 어쩌면 이 굴레를 즐기는지도 몰라요.

선생님 만날 준비하면서 산울림이랑 김창완 밴드 앨범을 몇 날 며칠 들었어요. 한결 마음이 가라앉더라고요. 음악이 안아주는 것 같아서… 이번에 발표되는 신곡 ‘괴로워’와 ‘E메이저를 치면’도 그렇고. 이런 감성이 끊임없이 샘솟나요?
사람이 보통 그래요. 누구나 마음이 흔들리잖아. 배가 풍랑에 일렁이듯, 늘 마음이라는 것이 흔들흔들하고 변덕스럽지 않아요? 작은 진동, 하나의 가치와 또 다른 가치 사이에서 갈등도 하고.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그런 거에 무뎌진다고 하잖아요. 아니면 스스로 흔들림을 자제하거나. 근데 나는 반대해요. 늘 진동에 나를 맡기고 그런 진동을 즐기며 살아요. 젊었을 때는 이렇게 불안하고 흔들리는 게 청춘의 특권이라고 했어요.

근데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서른 갓 넘은 지인에게 “결혼하니 좋아요?” 물으니 더 이상 ‘밀당’ 할 일이 없어서, 감정 낭비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철딱서니 없어도 좋아요. 내가 이렇게 산다는데 누가 동전 한 닢이라도 던져줬나.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부침이나 여러 가치들이 나에게 주는 흔들림이나 이런 것들이, 나를 저기 북해에서 잡은 청어가 런던에 갈 때까지 펄펄하게 살아 있는 상어 같게 하는 거예요. 상어가 늘 마음에 있는 거예요. 내 마음에 상어가 한 마리 있어요.

photography: 유영규
editor: 조하나
STYLIST: 서정은
HAIR&MAKE-UP: 박슬기

한 번도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돌아보면 김창완은 늘, 거기에 있었다. 뜨겁다. 젊다. ‘여전히’라는 말은 쓰지 않기로 한다. 저런 눈빛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던가. 퇴적된 시간의 무게를 매 순간 털어내는 그가 가볍게 나는 법을 가르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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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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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나
Sty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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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ir&Make-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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